"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춘기때 친구들이랑 깔깔대며 농담삼아 자주했던 이야기인데.
상황 파악 제대로 하지못하고 잘하고픈 욕심과 열성만이 앞선다면,
몸이 힘든 것은 물론이고, 나도 모르게 상대방은 생각도 없는 마네킹으로 만들고, "꼭 내가 해야만 하고",
"나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이상한 정열로 나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일을 해나갈때가 있다.,
내가 나서야될 때와 함께 해나갈때를 구분할수 있는 지혜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알아서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주위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자 배려이기에
애착심이 동하더라도 때로는 절제해나갈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삶을 이어갈수 있을까 싶다.
나의 집착이 가미된 암탉같은 모성 근성이 빚어낸, 어제 아침 잠시 고생한 이야기를 하자면,,,
어제 아침 아빠랑 학교로 향하며 둘째딸, 서진이는 "엄마, 조금있다 수영가방 가지고 학교로 와"라며
아주 명랑하게 이야기한다. 그날 수영장에 내가 따라가기로 되어서 딸이 수영가방을 가지고 갈 필요는 없었기에,
"엄마가 가지고 가마"고 그전날부터 이야기해놓았다.
수영장 가는게 신나는지 어느날보다 쾌활하게 집을 나서는 딸을 보며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학교에서 오전 시간에는 수영장을 가는데,, 얼마전 학교에서 발목을 약간 접지른 서진이가
접착붕대로 발목을 감고 있어,,지난주는 수영장을 가지 못했다.
첫날 수영하고 온 친구들의 자랑이 많이 부러웠던지 자기도 수영장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때마침 접착 붕대로 인해 가려움증이 있었고, 수영장 가고 싶다고 하기에 바로 정형기구를 구입해 붕대 풀고
착용하면서 목욕도 쉬워졌고, 수영장에도 갈수 있게 되었다.
기구로 인해 옷입고 벗기가 불편할것 같아 내가 동행하기로 담임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해 놓은 상태였다.
10시 출발인데, 시간에 딱 맞추어 가는 것보다는 조금일찍 도착해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집안 정리를 서두르고 즐거워할 딸아이의 모습에 흐뭇해하며, 수영장 가방 챙겨 집을 막 나가려고하는 순간
전화 벨이 울린다.
생소한 전화 번호네,,하고 받아보니,, 서진이 학교 교장이었다..
오늘 수영장 못간다는 이야기를 한다..
무슨 수영장 환기 작업이라나,,암튼 아이들을 받을 수 없다는 메일을 아침에 받았다고 한다,,
내가 동행하는줄 알고 취소 연락까지 해준것에, 알겠다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딸이 많이 실망하겠네,, 싶었지만...어쩔수 없었다..
외출하려던 참이라 그대로 장을 보러 나갔다..
설마~ 다시 가는 일은 없겠지,,슈퍼로 향하는 동안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워낙 이런 것들이 철두철미한 학교라 괜한 기우라고 일축했다..
가는 와중에 서진이 같은 반 친구 엄마의 전화를 받았고,, 오늘 수영장에 못간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었다.
학교앞에 있는 슈퍼로 들어가며 아이들 태울 버스는 당연히 없겠지 싶었지만,, 한번 기웃거리며 들어갔다.
장을 다보고 계산대에 물건 하나를 놓는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요상한 번호가 찍혀있다...
아까 유선으로 전화 했었던 교장은 내가 집에 없는 것을 알고 무선으로 전화를 해서는 수영장 작업은
저녁에 하는 것이라 아이들을 받을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지금 수영장 가려고 버스타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하실려냐"고 한다.
드디어 약간 염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만것이다..
문제는 내가 동행하지 않더라도 서진이는 내가 수영가방을 가져가려고 했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딸이 너무 걱정이 되었다..다시 집으로 가서 수영가방 가지고 올시간은 없었다.
많이 기다렸던 수영장인데,,,
이 시점에서부터 나의 바보스러움은 발동되었던 것 같다.
일단 서진이에게 이사실을 설명해주고 엄마가 약속을 안지킨게 아니라는 걸 알려야 되겠기에,
교장에게 곤란한 상황을 설명하고는 학교로 가겠다고 하고 장본 것들 비닐백에 마구집어 넣고는 뛰었다.
엄마를 애타게 기다릴 딸의 모습과 꼭 온다던 엄마가 오지않아 수영을 할수 없었던 실망감과,
상실감을 가지고 오후 4시 반까지 학교에 있을 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아침에 일어난 모든 상황을 꼭 알려야만 했다..
장본 물건들이 비닐백에 모두 들어가지 않기에,
한손에는 장본 것들로 가득찬 비닐백, 다른 손에 들어가지 않았던 티슈 각을 들고..
신용카드는 어떻게 지갑에 넣은듯한데 영수증들은 정리도 못한채 손가락에 끼고는 나부끼며 뛰었다..
교장이 서두르라고, 곧 버스가 떠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블로그에 올렸던 글, "운동화"에서도 나는 아이 위한답시고 마구 뛰었다.
그러고 보니 적어도 나의 삶에 "뛴다"는 상황에는 분명히 함정이 있는듯하다.
교장이 뛰어오는 나를 보고 학교 문을 열어 주고는 주차장으로 빨리 가보라고 한다.
버스가 떠났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학교앞으로는 버스가 못다니지,,, 그것도 기억 못한채 버스 없나 조금전 학교앞만을 기웃거린
나를 참 한심스러워하며 주차장으로 뛰었다..
버스앞문으로 아이들이 둘씩 손잡고 오르고 있는중이었다...
다른아이들은 가방 하나씩 매고 있는데 단촐한 행색의 서진이가
어떤 친구와 손을 잡고는 어기뚱한 표정을 짓고 버스에 오르려던 참이었다..
"서진아 서진아",
엄마를 보고 잠시 반가워하던 딸,,,
하지만 엄마 손에는 수영가방이 아니라 저에게는 별의미 없는 장본 비닐백이 들려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이랬다 저랬다 한다며 투덜거리며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있었다.
서진이를 데리고 있다가 점심시간 지나 오후에 학교로 보낼까도 생각하다,
그래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아 선생님에게 데리고 가줄 것을 부탁하고는
1분만 시간을 달라고 해서 선생님앞에서 딸에게 한국말로 아침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서진이는 설명을 듣고는 전혀 생소해하지 않았고 기다렸다는듯이 바로 버스로 올라탔다.
27명 아이들을 태우는 버스치고는 아주 육중했고 손을 흔들며 딸을 배웅했고, 이제는 천천히 걸어도 되겠구나 싶어서
그때서야 슈퍼에서 물건값 지불한 신용카드가 지갑에 잘있는지 확인하고 손가락 사이에 끼여있던 영수증도 정리했다.
수영장을 기다려왔던 딸이 계속 눈에 밟혀,,
집에가서 수영가방 챙겨 수영장으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머리 흔들며,,"그만 좀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직은 겨울기운이 완연한데 뜀박질했다고 땀이 났다..
집에와 쉬고있는데 아까 전화 왔던 딸의 친구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온다..
"아침에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갔는데 수영장을 가지 않기에 하루종일 수영복 입고 있어야 될 딸이
걱정"이 되어서 온 전화였다.
이럴때 비키니 수영복이었으면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텐데,,,
참!! 난리긴 난리다..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 다시 수영장 같다고 안심시켰다.
돌발 상황에 지혜롭고 냉철하게 대처해나가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때 나의 본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겠지..
이미 40대인데,, 언제까지 폭풍속이었다고 변명만 할수 있을까?
비데오 테입이라 생각하고 거꾸로 돌려본다..
슈퍼에서 교장의 전화를 받았을때 나는 장을 보고 있는 현상황을 설명하고는 실망할 아이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해줄 것을 부탁하고 유유히 하던 일을 계속하며 집으로 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이후 고슴도치 엄마의 산란해질 마음은 스스로 다독일수 밖에 없는 일거고,,어쩔수없는 상황이니까
이같은 정리를 더욱 확신시켜준게,,,
그날 방과후 수영장에서 심심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서진이에게 물어 보았다.
엄마가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마지막 순간까지 오지 않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딸은 취소된 적이 있었기에 엄마가 안올수도 있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나의 설명에 별관심도 없이 버스에 오르던 딸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느닷없이 헉헉~~ 거리며, 수영가방도 안가지고 와서 왜 이러는거냐는 암시였다.
그날 나는 뛰어서 버스앞까지 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딸은 약간의 실망감은 있을법해도 약속어긴 엄마에 대한 상실감 같은 것은 전혀없이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것이었다.
교장도 있었고, 담임 선생님도 있었고, 더군다나 잠시 취소의 통보를 받았을 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앞의 이 세 사람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린듯하다.
오로지 딸을 향한 애끓는 나,,나의 모성[?]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알고 깨달은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어제의 일을 오늘 정리하고 내일 똑딱~~ 변하리란 생각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돌아보고 노력하리라..
조금씩 이런 부끄러운 일들을 줄여갈수 있었으면 좋겠다.
딸과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두가지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엄마가 동행해도 수영가방은 등교시 서진이가 꼭 가지고 갈 것과,
절대로 편하게 한다고 집에서부터 수영복 입고 가지말 것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결론들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