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떠나보내며...

파리아줌마 2009. 5. 30. 18:13

 

 

중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쌀쌀했던 가을의 어느날, 나는 지각을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 혼날 각오로 가슴이 콩닥콩닥거리며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선생님은 지각했다고 혼내키기는 커녕,,당신의 책상에 앉아계시면서,, 나즈막한 소리로

자습하라고 하십니다..

 

일단 선생님께 혼나지 않아 좋았지만,, 그날 교실 전체에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는 정말 싫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계시던 선생님은 훌쩍 거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십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고난 그다음날 내가 접한 풍경이었습니다. 

 

그이후 계속되었던 나라의 혼란과 그다음해 따스한 봄날,  

TV를 통해 본 고 최규하 전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중학교 2학년 소녀에게는 우울하고 지겨운 봄날들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채 막연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그런 어지러움들이 그저 성가시게만 다가왔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또 다른 대통령 서거 소식을 한국인으로서 한국밖에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중학생이었던 나는 여고생을 거쳐, 대학생이 되면서, 18년 동안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수 있었고, 그다음해 비상 계엄령이 선포되고 나서 나라의 한 도시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서 일어난 일을 진압한,,정치계에서 한번도 들은적도 없고 본적도 없었던 어떤 군인이 정권을 장악했다는 사실도요,,

 

무엇보다 대학교때,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을 읽고 내가 태어난 이나라 지배층에 대한 분노와

피지배층에 대한 연민으로 몸서리쳤었습니다..

 

막연하고 무모한 정의감 하나만으로 1987년 6월, 대구 시내 곳곳을 다녔습니다..

두려워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항상 빠져나갈수 있는 뒷대열에 있었지만요,,

하지만 변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신념은 내가 가지고 있었고, 누릴수 있는 것들에 의해 묻혀버렸습니다....

 

 

지난 1주일 내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밀려 드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떨쳐버릴수 없었습니다.

시장을 다녀오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조금이라도 한가한 시간이 나면 나 스스로를 성가시게 했습니다.

그분이 왜 그렇게 떠날수 밖에 없었는지,,,

그이유들을 찾아내고 싶어 안달난 사람 같았습니다..

 

자꾸만 밀려드는 생각은 단순한 비관 자살이 아닌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파옵니다..

수구 기득권층에 정면 대항한 댓가가 너무 크네요, 더이상 말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그 모든 것을 보여주고 가셨습니다.

 

우리나라의 검찰이 어떤지 너무 잘알고 계셨겠지요,,검찰의 공격 목표는 오로지 "노무현" 한사람이었습니다.. 

없는 죄도 그들은 필요하면 만들어 낼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나 하나만 없어지면 주위 사람들이 그나마 편안해질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노무현" 이라는 한 사람을 잡기 위해 또 다른 제2, 제3의 희생자들을 만들어 내리라는 것을 아셨겠지요,,

그렇다고 자살을 미화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고인은 당신이 없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희생이 있으리란 것을 아셨기에 스스로를 희생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의 충격이후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슴이 저려옵니다.

 

일주일 내내 뉴스를 접하며 찔끔찔끔 거렸던 눈물은 어제 고인의 장례식을 보며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학생시절 비록 막연했지만,, 내가 가졌던 꿈과 이상들은 간데 없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닌것인줄 알면서 외면하고 싶었고, 편안하고 싶어 비굴하게 타협하며 갔던 것들에 대한

회한의 눈물들을 함께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슴깊이 아파했었던 내나라를 떠나  어떻게 이먼곳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올수 있었나 싶은 비애감까지

합해져 오후내내,, 저녁내내 울었습니다.. 

 

고인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잘살수 있는 세상"을 외치셨던 것처럼 나의 딸들에게 그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비록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았지만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세상은 오리라 믿습니다..

고인처럼 불의에 정면으로 맞설 용기도 능력도 없지만 나의 방법으로 지혜롭게 싸워나갈 것입니다.

지난날 막연하기만 했던 꿈과 이상을 더욱 구체화 시켜 실현해 나가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국민들의 추모 열기를 대하며,, "참 잘~~ 살으셨다"는 생각이 들고,

외롭지 않게 고인을 보낼수 있어 다행이라 여겨졌습니다.. 

 

고인의 희생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정착되는데 또 다른 초석이 될것입니다.

절대로 헛되지 않을것입니다.

이는 또한 남은 자들의 몫이기도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