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잔소리만 하려는 엄마

파리아줌마 2010. 4. 29. 21:57

얼마전 큰아이가 유치원에서 사회실습을 받을때, 원장 선생님은 마지막날 증명사진을 가지고 올것을 부탁했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한 일을 적고 사진 붙이는 아이들 공책에 실습생이었던 딸의 모습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딸은 집에 있는 사진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일부러 사진 기계가 있는 기차역까지 가서 다시 찍는 정성을 들였다.

 

마지막날 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학교로 가면서 딸은 사진을 넣어둔 가방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화들짝 놀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오니 그때 가지고 가면 되지 않을까하여 단념했다. 그리고 나는 "혹여 아침에 필요한거면 문자 보내 엄마가 가져다주마"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학교로 갔고, 학교 앞에 있는 슈퍼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딸에게서 문자가 온다. 선생님은 사진을 복사해서 아이들 공책에 붙이려면 아침시간에 필요했던 것이다.

 

장 본것을 집에 가져다 놓고 아이 가방을 들고 다시 학교로 가서 전해주었다. 해야될 일들이 있어 그리 한가하지 않은 날이었는데, 아침시간을 부산하게 보내었다. 가방을 전해주고 숨을 고르며 걸어나오면서 별것은 아니지만 "오늘 왜 이리 생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날 아침의 일들이 주르륵 떠오르며 하나하나 연결되면서 부끄러워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날 아침 딸은 머리모양 만드느라 애를 썼다. 일명 똥머리라하여 지난 여름 한국가서 아이의 이모가 자주 산뜻하게 해주던 머리였다. 긴 머리카락을 똥[?]모양처럼 배배꼬이게 감아 머리 꼭대기에 올려붙이는 것인데, 혼자하니 잘안되나보나. 목욕탕에서 똥[?]을 쓰더니 책상으로 와서는 앉아 인상팍~쓰고 얼굴은 시벌개져서는 몇번이고 머리를 풀었다 묶었다 난리가 아니었다. 손재주없는 내가 해줄수도 없거니와 딸은 원하지도 않는다.

 

그광경을 보고 있자니 지청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꿀컥~삼켰다. 그리고 든생각, "저러다 오늘 중요한것 놓치고 가지" 싶었다.

그 중요한 것, 그냥 막연히 중요한 것이었다.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으면 다른 한쪽을 못보는 것처럼, 또한 별것 아닌데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을 놓칠수 있는 것이니까.

시간에 맞게 어떻게 머리모양이 정리가 되었나 보다. 나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있는 딸 바로 옆, 쇼파 머리에 놓여진 아이의 핸드폰이 눈에 띄었고, 바로 옆 딸아이의 아이보리빛 가방이 유독 눈에 들어왔지만 핸드폰만 들고 나가길래 아무 생각없이 따라나섰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딸의 뒤를 대여섯 발자국 차이로 따라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단촐한 딸의 뒷모습.

눈으로 아이의 왼쪽 옆구리, 오른쪽 옆구리까지 훓었다. 뭔가 감지만 되고 구체적으로 알수없는 이 모호한 상황!

 

학교를 걸어나오는데 그날 아침의 일들이 구체적으로 연상된다.

어째 하나도 결부시키지 못했을까? 머리모양 만드느라 애를 쓰는 딸아이를 보았고, 중요한 것을 놓치고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면 "사진 잊지 말고 챙겼니?"하는 말한마디는 할수 있었을텐데 어떻게 다시 학교까지 가져다 주는 시간 낭비를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바로 나무랄 생각만 하는 엄마는 딸아이가 놓친 것을 잡아주지 못했다.

 

15살 사춘기 아이가 머리모양 신경쓰다 중요한 것을 놓칠수 있는 일인데, 그런 광경을 일일이 목격[?]하고 막연한 느낌만을 가진 40살 넘은 엄마. 문제가 될수 있겠다 싶으면 엄마로서 해줄수 있는 행동이 있었을텐데 그저 한소리할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으니 중요한 것으로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니 딸이나 엄마나 별반 다를게 없다.

 

이게 어디 딸과의 관계에만 국한되겠는가?

아직도 사람들의 문제를 보고 비난만하고 있는 나자신을 보는듯해 많이 씁쓸했다.

문제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단지 없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있겠지.

이해해 보려고 하고, 더 나아가 함께 해결점을 찾아나갈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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