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연말에 인터넷으로 연결해서 보던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회사에 연락해서 시키는대로 해보았는데도 소용없으니 기술자를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화요일] 아침으로 약속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벨이 울리더군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들어보는 기술자를 보고 깜놀했던게 너무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마~싶었던게, 본능적으로는 알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판단이 틀릴수 있음에 대한 신중함으로 누르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한국 사람이죠? 하며 들어서는 그는, 나도 한국사람인데 한국말은 못해요 라고 합니다. 바로 입양인이라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름을 보고 한국 사람임을 알수 있었다고 합니다. 엄청 반갑더군요. 

 

반가웠던 이유들 중의 하나는 인터넷 설치나 접속에 문제가 생기면 며칠동안 불편할 각오하며 기다려야되는 이곳에서 피가 통하는 한국인을 기술자로 만났다는게, 그동안 블로깅하는데 혹여 인터넷에 문제 생기면 어쩌나하고 다소 불안하기만 했던것에 종지부를 찍는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야기하느라 고쳐야될 텔레비전은 일단 뒷전이었습니다. 1983년에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의 고아원으로 왔다가 프랑스로 입양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리 이곳에서 자라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프랑스인이 될수 없으며, 되고 싶지도 않다고 합니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외국인, 아시아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어쨌든 영원한 한국인이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름다운 눈매를 가진 그는 어찌나 성격이 시원스러운지 쉽지 않은 본인의 이야기를 별 어려움 없이 술술~엮어냅니다. 한국와 프랑스의 역사와 삶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텔레비젼을 고치는데 들었던 시간은 불과 10분 정도였고, 2시간을 서서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한국은 아직 가보지 않았고, 다녀갈 계획이 있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프랑스 회사에서 일할 생각도 가지고 있더군요. 독학으로 한국어를 약간 공부했다고 합니다. 모음과 자음 정도 아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한반도 분단과 통일에 대한 의식이 있었고, 남한은 미국 문화의 영향을 너무 받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더군요.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한국 부모님을 찾고 싶지 않냐고 물었더니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던것이랍니다.

그래서 한국에 갈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그가 건넨 말들중 잊혀지지 않는게, 당신은 한국이 왜 그 많은 아이들을 프랑스로 입양을 보내야만 했다고 생각하냐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이 알제리인으로 곧 아빠가 된다는 청년 같은 아저씨인 그는 예민한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내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그런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눌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질문을 받고는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감정 이입이 약간된 상태에서,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나라에서 책임질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했더니, 그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그의 환경과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는거겠지요.

 

부모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고, 국가가 지원해줄수 없어서 선택한 최선이 해외입양이었겠지만요, 경제적인 문제는 차지하고, 미혼모를 보는 사회적인 편견이 한 이유였다는것에 또 다시 분노가 일더군요.

 

국가 보건부 통계에 의하면 1953년에서 2005년까지 158,116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이 되었답니다. 그중 104,718명이 미국으로, 그리고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11,124명으로 가장 많은 한국 아이들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입양된 아이들의 엄마 83%가 미혼모였답니다. 그리고 55%가 정상아동, 44%가 의료장애아동이었답니다.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장애아를 입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한국 입양인들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어쩔수 없는 상황으로 외국에서 자라 성인이 되어 한국을 찾았을때는 입양인에 대한 차디찬 시선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비자 연장도 받을수 없는 처지여서 프랑스로 돌아와야했던 사연을 가진 이도 있습니다.

얼마전 프랑스에 있는 입양인 협회인 한국의 뿌리 페이스 북을 통해 안 어떤 입양인은 1996년에서 98년까지 한국에 머물렀는데 더 있으려해도 비자 연장이 안되어 다시 돌아와야했답니다. 당시 입양인들과 함께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루어진게 1999년 12월에 국외 입양인과 재외동포들에게도 적용되는 2년 간 한국에서 체류, 취업할 수 있으며, 연장이 가능한 비자인 F-4 VISA(재외동포증)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15년전에 있었던 옛날 일이라고 하면서,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다른 세계에 살다온 느낌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미국에 한살때 입양되어 현재 입양인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로스 오크[한국이름 박수웅]씨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입양인으로서 강한 차별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혹자는 한국에 있느니 그렇게 외국으로 입양된게 다행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해외 입양은 다릅니다. 만약에 국내에 입양되었다면 적어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는 없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늘 영원히 한국인이고 싶어 하지만 한국말을 할수 없고, 한국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으로 저에게 많은것을 물어오는 벤쟈멩[한국 이름 김우석]씨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지더군요.

 

지금으로선 한국어 배우는게 중요하다는 벤쟈멩에게 파리의 한류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니 원하면 함께 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합니다. 앞서 그는 텔레비젼이 고장난 이유를 알려주고 앞으로 인터넷에 문제 있으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주었습니다. 더이상 인터넷 회사로 전화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게된 것에 정말 감사했답니다. 

Posted by 파리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