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좌우의 개념

파리아줌마 2009. 10. 8. 00:40

 

 

9월에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 둘째 딸,,

유치원때와 큰 차이없이 놀기만 했던 초등 1학년을 보냈으니 이제는 공부에 신경을 좀 써야될 때인듯하다.

 

학교에서 공부한 것들을 점검하는데, 산수 노트인데 마치 불어 노트 같은 느낌을 주는 이것은 무엇인가 하고 살펴보니,

"묶은 머리 왼쪽은 파란색을 칠하고, 오른쪽은 초록색을 칠하시요" 라는 문제에..일단 내가 보기에는

딸은 잘했기에,, "잘 했네"라고 이야기하니 딸은 "아니 내가 거꾸로 했어 그래서 선생님이 빨간 볼펜으로

반대 화살표를 그려놓았잖아" 라고 한다.

 

어~ 잘 했는데,,왜 그랬지?

느닷없이 내가 알고 있던 왼쪽과 오른쪽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딸아 이게 어떻게 된거니?"

"나도 모르겠어"

 

바로 노트를 들고 큰아이에게 달려갔다.

"큰 딸아 이게 어떻게 된거니?"

대충 본 큰 아이는 "엄마가 아니고 이 소녀의 왼편과 오른편을 가르키는거잖아"

 

순간적으로 너무 놀랐다. 그리고 다시 문제를 보니 분명히 "소녀의" 왼쪽 오른쪽이 표시되어있었다.

어쩜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르고 왼쪽, 오른쪽이 헷갈린다고 잠시 아우성을 부렸나 싶었다.

 

둘째 딸의 어줍잖은 실수는 계속 이어졌다.

 

 

두번째 문제에서,, 이제 큰아이에게 나도 배워[?] 눈이 좀 넓어졌는지 문제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ㅎㅎ

집의 오른쪽에 나무 2그루와 꽃 3송이를 그려라고 되어있는데  딸은 여지없이 자기의 오른쪽에다가 그려놓아

빨간 반대 화살표를 받았다.

 

둘째는 친한 친구인 멜루안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자기와 같은 실수를 했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과목도 아닌 산수 과목에 왼쪽, 오른쪽 방향 감각을 익히게 하기 위한 과정이 있었다.

 

내가 아는 좌우 방향에 대한 것은 항상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거였다.

요즘 우리나라도 이런 부분을 교육 과정에서 가르치는지 알수 없지만 적어도 나의 어린시절에 이런 서로의 입장에서

정확한 좌우 방향 감각을 익힌 기억은 없었다. 

 

그날밤 내가 겪었던 좌우의 헷갈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어떻게 보면 불어라는 언어 자체의 정교함을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런 정교함 또한 나의 중심이 아닌 상대의 중심에서도

바라볼수 있는 시선을 길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그러고 보니 불어에는 그냥 왼쪽, 오른쪽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당신의 왼쪽, 당신의 오른쪽"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이제서야 떠오른다.  

 

알고 나면 너무나 쉬운 것인데,, 나 또한 이것을 처음 대했을 때는 딸과 똑 같은 실수를 했을 것이다.

 

아주 쉬운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웠던 좌우 방향을 보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프랑스의 한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오른쪽과 왼쪽이 중요하듯,, 상대방의 좌우도 눈여겨 잘 보아야하는 것을 가르치는듯하다.

나의 중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상대의 중심도 귀중히 생각하는 개인주의,,

개개인의 의견과 그들의 방향조차도 중요시 여기는,, 프랑스인들이 삶을 대하는 겸허한 자세가 엿보이는듯했다.

 

아주 오래전 한국 패션업계에서 이곳, 프랑스 섬유업계로 연수를 나온 분들의 통역을 맡은적이 있다.

프랑스 섬유업계의 담당자의 이야기가,,

"우리는 우리와 맞지 않은 의견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단 채택해서 점검해봅니다."

 

모든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생각나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것 ,,

이것이 아이들의 무한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항상 나의 중심에서 보아왔던 좌우 감각은 나의 고정관념이자, 모든 사물을 나의 편에서만 관찰하는 편견이었다.

 

한갖 그림속의 머리묶은 소녀 중심의 방향 따위는 나와는 별 상관없이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비록 그림이지만 좌우 방향 감각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나의 한 상대인 것이다. 

이와 맞닥뜨렸을때 내 중심을 버리고 상대의 중심에서 바라볼수 있다면 보다 객관적인 방향 감각을 기를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객관적인 방향 감각을 어린 시절부터 심어줌으로써 나중에 사물을 보거나 어떤 현상을 볼때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길러주려는 프랑스인들의 교육관은 아닐지 생각해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