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운동화

파리아줌마 2008. 2. 16. 22:44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보니 온 몸이 쑤신다.

특히 등쪽에,,,,

그동안 퍼져 있던 근육들이 느닷없는 움직임에 군데군데 수축해져,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통증을 유발하고 있다.

 

어제 아침,

애들 학교 가고, 남편도 나가고, 항상 그렇듯이 폭탄 맞은 듯한 집안을 정리하고 있는데 신발장에 큰딸의 묵직한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금요일, 체육이 있는 날이라 운동복도 따로 챙겨가는 걸 보았는데, 신발은 운동화 대신 긴 부츠를 신고 간 것이다.

 

어머, 애 좀 봐, 운동화 신고 가는 것 잊었네. 그러면서, 조금전 찌뿌둥한 얼굴을 하고서 긴부츠 신고 있었던 딸의 모습이 상기되었다. 정신없이 있다가 나가야 되니 아무거나 신었나 보다.

 

어떡하지? 선생님에게 혼나고 정신 차리게 내버려둬? 아님 내가 운동화 가지고 학교로 찾아가?

아이 그냥 내버려두자, 자기 일인데 뭐, 한두살 애도 아니고,,,

운동화 없이하는 체육일수도 있겠지,,,,하지만 그럴 일은 천지 없을 것 같았다.

 

운동화 신고 오는 것 잊은 줄 알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과 선생님에게 한소리 듣는 딸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내가 하루 종일 힘들어 못견딜 것 같아, 돌리고 있던 진공 청소기 끄고, 책상에 있는 시간표를 보았다.

마침 오후 1부터 체육이었다. 머리에 말고 있던 롤들 빨리 풀고, 운동화 두겹으로 싸고, 학교 수위에게 맡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봉지에 앞뒤로 이름, 학급을 굵은 매직으로 힘차게 눌러쓰고 급한 마음에 뛰면서 학교로 향했다.

 

빨리 운동화를 가져다 주어 딸을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딸의 학교는, 파리 및 그 외곽 지역을 다니고 있는 고속 전철 RER로 두 정거장을 가야한다.

아무리 급해도 기차안에서는 뛸수 없는 노릇이고 기차에서 내려 학교까지 또 뛰었다.

 

 2007년 8월 프랑스 서해안 라볼에서

 

마침 학교 수위가 딸의 교실까지 갈수 있게 허락해주었다.

빨리 딸의 손에 쥐어주고 싶어 학교 안에서도 뛰었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서야 딸의 교실이 있었는데, 교실 앞뒤 문은 굳건히 닫혀 있고, 옆반에 딸의 친한 친구인 줄리가 나를 보고는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왔다. 딸의 반아이들은 현재 음악실에 있다고..,

 

그래서 줄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딸의 곤란한 상황을 이 엄마가 막아준 듯해, 내가 직장 다니지 않은 것에 감사했고, 운동화를 전해 받은 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 엄마에게 끔찍한 감사를 할 생각에 부풀어져 있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그냥 딸에게 너무 생색내지도 말고, 너무 다그치지도 말아야지 하며 한나절을 보냈다.

 

어제는 딸의 안경 한쪽 알이 금이 가서 바꾸려고 같이 안경점에 가기 위해 학교 마치고, 그옆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둘째를 학교에서 찾아 부랴 부랴 기차로, 같은 날 두 번째로 그 학교 근처로 향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맥도날드에서 나를 기다리던 딸이 엄마 어디쯤이야? 한다. 응 다왔어, 너 근데 줄리에게 운동화 받았니?, , 받았어, 근데 엄마 학교에는 왜 왔어? 오늘 체조하느라 운동화 필요없었는데.

 

쉬이익......,  내 안의 뭔가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맥도날드에서 딸을 만났다. 아침에 내가 싸서 간 묵직한 운동화 봉지가

딸옆에 내려져 있었다. 어느 누구도 웃지도 인상 쓰지도 않고,,,

그럼 너 오늘 뭐 신고 운동했니?

양말. 우리 지난주부터 마루운동해

으응., 잊은 게 아니고 알고 안신고 간거구나,,

그럼,,,

 

딸에게 아침의 상황을 설명했다.

딸은 뭔가 안스러운 표정과 함께 여러 감정이 섞여있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고는.....,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엄마인 내가 가서 햄버거를 사가지고 오는데, 기운이 빠져 딸에게 시켰다.

그리고 더이상 우리는 이를 언급하지 않고 볼일을 다 보고 집에 왔다.

 

저녁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니,

내가 그사람이랑 살면서 이렇게 나의 이야기에 흐뭇해 하며,

관심있게 듣는 것은 처음인 듯했다.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오늘 한 일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한다.

 

결론은 내가 생각하고,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간은 씁쓸했지만, 자신의 할 일을 잘 챙기고 있는 딸에게 안심도 되었고, 그런 딸을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잘 믿지 못하고 있는 엄마가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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