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다가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고,,

파리아줌마 2009. 9. 26. 17:30

 

 

 잔인한 현실

 

여름 한국행에서 한창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고 있던 공지영님의 도가니를 인터넷 주문으로 구입해 이곳으로 들고 왔다.

 

이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이라고는 "다음" 에 연재했었다는 것 외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펼쳤다.

 

무진의 안개로부터 시작하는 이소설을 접하며,, 예전 어린 시절 TV 문학관에서 본 "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무진의 안개,, 그리고 김승옥님의 "무진기행"과 오버랩되면서,,아주 서정적인 내용일수도 있겠다는 설레임을 가지고

첫구절부터 작가가 풀어내는 주인공 강인호의 심리묘사를 흥미진진해하며 보고 있었다.

 

몇페이지 지나지 않아,,

서정적일거라는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고,,

장애아들에 대한 성폭력을 다룬 아주 불편한 소설임을 알수 있었다.

 

이 작가가 어쩌다 이번에는 이런 주제를 다루었을까?

그동안 내가 접한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여성 문제들을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인간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온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작가가 사회의 병폐와 부조리에 정면 돌파하고 나섰다. 

이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며 건드렸다.

 

 

소설은 사업에 실패하고 기간제 교사직으로 무진의 농아 학교,"자애학원"에 발령 받고 온 주인공,,강인호의 도착부터 시작된다.

학교에 오자 마자 "학교 발전 기금" 명목으로 오천만원을 강제로 지불해야하는 굴욕을 당하는 복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농아들의 연이은 자살이 그 학교의 교장과 행정실장, 기숙사 생활지도 교사가 농아들을 여자아이, 남자아이 가리지 않고 처절히 성폭행하는 사실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인권운동 센터"에서 일하는 그의 선배,, 서유진과 함께, 법에 그들의 잔인함을 고발하며 바위에 계란 던지기식 싸움의 과정과 그결과를 그린 작품이다.

영광제일교회의 장로로 있는 자애학원의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은 쌍둥이 형제다.

선친때부터 정부로부터 받은 복지사업금을 다른 곳에 투자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집안이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지도 교사 박보현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장애아들 상대로 추악한 악행을 저지른 쌍둥이 형제는 유능한[?] 변호사 선임으로 집행유예로 금방 풀려나게되고,

돈이 없어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수 밖에 없었던 박보현은 같은 죄를 저지르고도 실형을 살게된다.

그리고 불의에 맞서 장애아들편이 되어 싸웠던 주인공, 강인호는 갈등끝에 무진을 떠나 소시민적인의 삶에 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답답했었다.

농아들을 상대로한 성폭력에 말도 할수 없이 불편했고,

알고도 본인들의 밥줄에 문제가 생길까봐 함구로 일삼아 온 자애학원의 선생들,,

당한 아이들 가족들이 어쩔수 없이 현실에 굴복하며 합의하게 되고,,,

영광제일교회의 장로들의 악행을 무진의 유지이고,, 같은 교인이라는 이유로 "할렐루야", "아멘" 으로 그들의 추악한 행위들을

감싸고 도는것에 답답했었다..

무엇보다 숨이 멎을 것 만큼 답답했던 것은 불의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주인공 강인호 선생의 과거 티끌을 끄집어 내어 역공격해올때였다.

 

법정 공방이 계속되고 어떻게 판결이 날까 잠시 궁금했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책 페이지 수를 보고 결론을 짐작할수 있었다. 권선징악으로 그들의 추악한 만행이 온세상에 드러나고 철저히 법의 심판으로 받는 것으로 끝이 났으면,, 잠시 카타르시스는 될수 있을 망정 난 더한 답답함을 느꼈을것이다.. 그리고 마치 동화를 읽고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론으로 주인공, 강인호가 무진의 안개에 묻혀 비관 자살[?]하는 것도 상상해 보았다.

그랬더라면 인간을 그린 한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데 아내와 딸이 있는 강인호는 소시민적인 삶에 안주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다만,,, "창밖을 응시하는 강인호의 눈이 어룽지면서 잔디밭에 앉은 흰 와이셔츠들이 그의 시야에서 뿌옇게 번져갔다.

그것은 안개 같았다." 

이것으로 이루지 못한 헛된 꿈[?]의 회한을 남긴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징글맞게도 현실적이다.

 

싸움의 의도와 과정

 

무진의 인권운동센타의 서유진은 어느정도 하고는 그만두는게 좋을 것 같다는 장경사의 권유에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 같은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이미 그녀는 힘있는 그들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그녀는 현실적으로 힘없고 나약한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있었으며 판결이 어떻게 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권의 이름으로 그들을 고발하고 싸우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그들이 서유진을 바꾸지 못하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결과 위주의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시험 점수도 좋아야하고, 무엇이든 좋은 결과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다.

하지만 과정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는 일들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의 악행을 알고도 묵인했던 자애학원의 선생들이 본 그들이나,,,고발하고 싸웠던 강인호, 서유진이 본 그들,, 

결과는,,, 그들은 예나 다름 없는 모습으로 자애학원을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악행을 알고 묵인했던 선생들,,,

함께 맞서 싸웠던 강인호와 서유진,, 두 입장들의 과정은 엄청난 차이다.

 

진실이 불편한 이유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이 아닌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면서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현실에 비춰진 진실의 불편함과 교만성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진실이라는 맨몸뚱이 하나만으로 치기어린 공격을 해오던 나의 지난 날들이 생각이 나서 이 구절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더군다나 내가 원하는 결과들을 끌어내려고까지 했으니..

또한 이 세상에는 " 언제나 모호한 말로 상대를 유인하고 다중의 의미로 번역될수 있는 말을 흘림으로써 순진한 상대의 해석을 오류로 몰아붙이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노희경 작가가 이야기했다.

"사람을 미워하는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이고, 세상을 원망하는 자는 세상에 무지한 사람이라고,

 

이 책을 덮으며 참 심란했었다. 한권의 책을 다보고 난뒤 이렇게 불편하고 심란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일이 흐르고 난뒤, "아! 이게 현실이지." 싶은게,,

이제는 이 현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나마 조금 편안해졌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에서 계란의 노른자가 바위를 상하게 한다고 들었다.

계란 노른자의 황 성분이 바위를 약하게 한다고..

비록 수많은 계란이 깨어지겠지만...바위치기는 멈출수 없을 것이다.

멈추어서는 안될 것이다.

 

외면하고,, 보고 싶지 않고,,,때때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진실들은 이사회 도처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 그 진실이 사람들의 양심을 성가시게 하겠지.

하지만 진실은 외면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어려움을 감수하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 싸워나가는 과정속에서 이미 그빛을 발하고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진실이니까....

 

이책에서 공지영 작가는 조직을 이끌어가고 있는 힘[?]있는 자들이 그들의 입지에 위험이 오고,

비리가 드러났을때 어떤 방법들을 써서 무마하는지 신랄하게 드러내 주었다.

힘없고 그들의 편에 서지 않는 사람들을 나쁜 사람을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주 쉬웠다.

 

하지만 밥을 먹고 돈을 버는 것 외에 우리들의 삶에는 또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것을 위한 자신과의 싸움의 과정을 지금도 지나고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