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독일 탄광 박물관에서

파리아줌마 2011. 8. 20. 07:39

도르트문드의 졸렌[Zollern II/IV] 탄광 박물관에서

 

지난 7월 독일, 도르트문드의 탄광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며 블로그에

포스팅할만한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안내문들이 독일어와

화란어로만 되어 있었기에 마치 눈가리고 벽 짚어가며 다닌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녀온지 꽤 되었지만 탄광 박물관의 모습은 아직도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당시 차가웠던 날씨와 암울한 분위기와 함께 가끔 떠오르곤 합니다.

마치 어린시절 감명 깊은, 슬픈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동안 잊지 못하고 있는것과

같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넉넉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탄광 박물관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독일 산업 발전의 젓줄이라기보다는 그옛날 어두운 갱도안에서 밝은 희망을 품었던

파독 광부들의 숨결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관련글 :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의 혼이 서려있는 독일 루르 지방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자랑스러운 독일의 탄광, 그리고 그곳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우리 아버지, 삼촌들의 땀과 눈물이

맺혀있는 탄광이 함께 얼버무려져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듯합니다.

 

그날 날씨가 화창했더라면, 독일 관광의 중심지로 많은 방문객들이 있었다면,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았다면 금방 기억속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비가 간간히 뿌리는 차가운 잿빛 하늘은 탄광의 암울한 분위기를 가중시켰습니다.

 

감정의 넋두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독일 산업 혁명과 라인강의 기적의 발원지였던 루르 지방은 19세기 중반부터 방대한 탄광지대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60, 70년대 독일의 경제를 꽉 잡고 있었던 루르 지방은 라인강의 지류인 루르강에 접혀있는 도시들, 보훔, 에센, 뒤스부르그, 도르트문드 등입니다.  사람들은 부를 불러온 이지역의 석탄을 "검은 황금"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석탄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자 탄광은 문화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그중 하나가 도르트문드 서쪽 외곽지역에 있는 졸렌 탄광 박물관으로 꽤 유명한 독일 산업 유적지라고 합니다.

 

이곳은 1898년부터 1904년사이에 지어진 탄광으로, 건물이 아름다워 <노동의 성>이라고 불리웠다는데요,

오른쪽 건물을 보면 바로크 양식으로 지붕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이곳에서 받은 인상은 저 높이 솟아있는 컨베이어벨트가 없다면 수도원인줄 알았을겁니다.

방문객도 얼마되지 않았고 무척 고요했습니다. 

 

우리나라 탄광은 산을 뚫어 만들어 광산이라고 하지만, 독일은 지하 1천에서 2천미터까지 파낸것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갱도안에서 석탄가루를 마시며 일하는 광부들이라

건강체크는 필수였겠지요.

 

이곳은 원래는 철거하려고 했었는데 폐광된지 3년후인 1969년에 역사 건축물 보존 협회에서 마지막 순간에 막았다고 합니다.

1981년 웨스트팔리[Westphalie] 산업 박물관안에 통합되면서 여러해 동안 박물관으로 보수작업을 했답니다.

 

석탄 덩어리

 

1960년대에는 이지역에서 빨래를 널면 석탄가루가 묻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회복하고 라인강의 기적을 위해 광부들은  열심히 석탄을 파내었던것입니다.

 

당시 광부들의 생활상이 나와있는 사진과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영화, <양철북>이 떠오르는 소품

 

 

 

 

 

 

이곳은 탈의실인가 봅니다.

 

저렇게 광부들의 옷과 소지품들은 천장에 매달아 놓고,

 

이렇게 내려서 입었나 봅니다.

 

갱도안의 모습을 찍은 사진

 

 

 

 

 

거대하게 솟아있는 컨베이어벨트에 올라가보았습니다.

 

 

 

 

출석[?] 체크한 곳인듯~

 

1936년의 광부들의 모습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상한게 히틀러 사진이 있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했는지 어쨌는지 식사하는 테이블에서 똘똘해 보이는 어린아이와 미소 지으며 찍은 사진이더군요.

제가 과민한지는 모르겠지만 왜 독일 산업 유적지에 히틀러 사진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더군요,

설명서를 읽어보려고 해도 까막눈이라 알수가 없었습니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라가서 본 탄광건물인데요, 정말 성같습니다.

 

다른쪽은 철로가 연결되어 캐낸 석탄을 바로 운송했나 봅니다.

 

컨베이어벨트 모형이 있어 시험해 보면서 원리를 이해할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사진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석탄가루로 검게 그을린 광부의 모습에서 삶의 치열함이 전해져옵니다.

 

그리고 광부의 옷에 구멍이 보입니다.

중학교때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독일인들은 성냥불 하나 켜는데도 세사람이 모이기를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그정도로 검소하다는것이겠지요. 

 

그리고 독일에서 지갑을 흘리면 나중에 가도 그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정신이 건강하다는것이겠지요.

 

탄광 산업의 발전으로 전후 독일을 회복시키고, 

부를 가져다준것은 독일인들의 근면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나치 치하에서 전쟁으로 피폐된 독일은 분단의 아픔까지 겪었지만 지금은 통일 독일을 이루었고,

이미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지난번 네델란드 풍차마을이나 독일에서 느꼈던것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며 맞부딪혀서 이겨냈다는것입니다.

 

그 원동력은 도전 정신이었겠지요.

그리고 그 도전 정신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탈피해야만 가질수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옳다"는 것을 버릴수 있어야만 가능할겁니다.

 

그와중에 감당해야될 희생은 있었겠지요. 독일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중에는 진폐증으로 죽어간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른 선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천미터 지하에서 지열과 싸워가며 석탄을 캐낸 광부들 덕분에 오늘날의 독일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석탄가루에 향수의 눈물을 떨어뜨리며 희망을 캐내던, 7천여명의 한국 광부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노고 또한 한국 경제 발전의 주춧돌이 되었지요.

 

기적은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켜 일어나는것이겠지요

 

나가면서 뒤돌아서서 한번 더 훓어보았습니다.

지난날 삶의 치열했던 현장이었던 탄광의 고풍스러운 건물을 바라보며,

비록 날씨도 좋지 않았고, 암울한 분위기에 눌려 있었지만,

 이제는 문화 공간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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