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프랑스 귀부인들이 머물렀던 르와르 강변의 고성, 쉬농소

파리아줌마 2011. 11. 12. 09:21

르와르 강변의 고성, 쉬농소[Chenonceau]에서

 

파리에서 남쪽으로 이백킬로 정도 가면 비옥한 땅으로 포도주 생산을

많이하고, 중세 프랑스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할수 있는

르와르 지방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왕의 고성들이 즐비하게 있어 프랑스를 여행하는 이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하지요. 왕정이 없어진지는 오래 되었지만 

역사의 흔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화려한 고성들을 돌아보는것도

프랑스를 알고 이해할수 있는 한 방법일겁니다.

 

지금의 프랑스가 있기 위해 거쳐왔던 과정들중의 하나이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그간 자주 언급했던 시민 혁명의 개념은 살짝~ 뒤로

물린채 그옛날 왕과 왕비, 그리고 귀족들의 화려한 삶을 엿보겠습니다.

 

쉐르[Cher] 강의 고요한 계곡을 따라 세워진 수많은 영주들의 성은 르와르 시대의 왕과 왕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인 쉬농소[Chenonceau]성은 고상한 르네상스 성으로 수세기 동안 여성이 성주로 군림했던 성이라, 귀부인들의 성이라 했답니다. 강을 가로 지르며 과감하게 띄운 건축은 물과 빛의 섬세한 조화를 이루며 귀족적인 평온함을 느끼게 합니다.

 

플라타나스가 즐비하게 서있는 긴 숲길을 거치고 나니 성이 윤곽을 드러냅니다.

여름철이라 관광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지겹지 않은 긴 오솔길이 지나 성이 가까와지니 오른편에 휴식감을 주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팔고, 식당이 있는 로랑저리는 녹색정원을 연상케 했습니다.  

 

쉬농소 성은 샤를르 8세때 재무 담당을 지냈고, 루이 12세 밀라노 공국 재정 수입 관리를 맡았으며,

프랑스와 1세당시 금융업자였던 보이에[Bohier]가 1512년 중세 성채를 구입,

그의 부인 까뜨린느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성이랍니다.

 

플로베르는 이 성을 가르켜 물위의 허공에 세운 성이라고 했답니다.

 

1535년에 보이에의 아들 앙뜨린느가 세금 추징으로 성을 양도하게 되어 프랑스와 1세는 이 성을 사냥할때

만남의 장소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다음왕인 앙리 2세가 까뜨린느 드 메디치와 결혼하면서 왕궁으로 사용,

프랑소와 1세 서거후 앙리 2세의 애인인 디안느 드 쁘와띠에에게 성을 선사했으며,

그이후 앙리 2세가 사망한뒤 까뜨린느 드 메디치가 회수했답니다.

 

앙리 3세가 루이즈 드 로렌과 결혼하고 왕궁으로 쓰이다가 그가 죽자 일명 백색의 여왕이라고 불리웠던 루이즈는 왕을 추도해 천장을 검은색으로 다시 칠했다고 합니다. 혁명 당시 소유주였던 뒤팽 부인은 귀족과 차별화된 활동이 많아 성의 피해를 모면할수 있었답니다. 현재는 초콜렛 제조업자인 므니에 가문 소유라는군요,

 

성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있는 이 방은 왕의 경호를 담당하는 근위병들이 대기하고 있던곳이랍니다.

 

예배실로 보이는 색 유리창은 2차 대전때 파괴되었다가 1954년에 복원되었답니다.

 

국왕인 앙리 2세의 애인이었던 디안 드 뿌아티에의 침실입니다.

왕은 이여인을 너무 총애한 나머지 이성을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이성의 침실들은 대부분 타피스리와 고급 미술 작품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디안느 드 뿌아티에가 만든 화랑인데요,

 

1차 세계대전때는 부상당한 병사들의 병실로 쓰였다고 합니다.

 

화랑에서 본 쉐르[cher]강, 아주 평온해보입니다. 

 

 

그 유명한 루이 14세의 살롱입니다. 어째 초상화만 찍었습니다.

1650년 7월 14일에 이곳을 방문한 루이 14세는 나중에 본인의 초상화와 오뷔송 타피스리로 장식된 가구들과

유명한 세공가의 다리긴 탁자를 이곳에 선물했다고 합니다.

 

앙리 2세가 죽고 섭정 왕비가 되었던 까뜨린느 드 메디치의 침실입니다.

그녀는 이 성에서 프랑스 국정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여기는 다섯 왕비의 침실로

까뜨린느 드 메디치가 두 딸과 세명의 며느리를 기념하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여긴 앙리 4세가 사랑했던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방입니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세자르 공작은 1624년에 이 성의 주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루이즈 드 로렌 왕비의 침실입니다.

남편인 앙리 3세가 수도승 자끄 클레망에 의해 암살되고 난후 그녀는 이 성에 칩거하며

기도로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방이 아주 어두웠습니다.

 

주방으로 내려가 봅니다.

왕과 왕비의 삶을 엿볼수 있는 침실과 장식들을 보는것도 흥미롭지만

시 주방의 모습과 어떤 기구들을 사용하여 요리를 했는지 보는 것 또한 재미있습니다.

 

빵을 구웠던 화덕인데 꽤 깊더군요.

 

                                                         이건 백설공주에서 보았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쉬농소 성의 주방

 

 

 

                                                                                                                                                                    쉬농소 성의 주방

 

 

 

디안느 드 뿌와티에 정원입니다. 성의 반대편에는 까뜨리느 드 메디치 정원이 있는데

사중이라 사진으로 담지 않았습니다.

 

 

                                       성의 괄목할만한 프랑스식 정원은 계절에 따라 항상 관리를 하고 있답니다.

              성에 키우는 식물과 계절별로 교체하기 위한 꽃나무 묘목은 1십 3만여종에 이른다고 합니다.

 

 

16세기의 농가가 있는쪽으로 가봅니다.

마치 왕과 왕비가 살았던때부터 자라고 있었던듯한 오래된 나무들입니다.

 

16세기의 농가들이 있는 곳입니다.

 

포도주 통과 짜는 기계가 보입니다.

쉬농소라는 이름의 포도주가 있습니다.

아마 이성에서 재배, 생산하는 포도주일겁니다.

 

16세기의 농가들입니다.

    꽃과 식물들로 잘 장식해서 그런지 아주 운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그 옛날 프랑스 귀족 문화의 한면을 본듯합니다.

화려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은 왕비와 귀부인들이 드레스 자락 나붓끼며 이 성을 거닐며 정원을 산책했겠지요.

많은 시간이 흘러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런 귀족 문화는 프랑스 사회 한쪽에서 면면히 내려오고 있을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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