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발렌타인데이, 엄마에게 짝사랑 고백하는 어린딸

파리아줌마 2011. 2. 14. 09:16

지난 금요일[11일], 파리날씨는 봄처럼 포근했습니다.

아직은 남은 겨울이 있는것 같은데 왜 이리 포근할까 싶어 날을 헤아려보니 벌써 2월 중순에 와 있더군요.

 

보름만 지나면 꽃피고 새 울지도 모를 3월이 오게됩니다.

이쯤에서 식상한 말한마디하고 넘어가렵니다.<시간 정말 빨리 갑니다!> 

 

지난 12월 폭설과 한파로 파리 시민들이 무척 당황했었지요.

그래서 저는 올 겨울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답니다. 더한 강추위가 닥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제가 느낀 파리는 그리 춥지 않았습니다.

허나 정말 춥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춥게 여기지지 않은것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

이럴때는 객관적인 기온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저는 지금까지 따스하고 감사한 겨울을 보낸것만은 틀림없으니까요.

 

사람일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게 맞는말인가 봅니다.

바람이 불것 같으면 옷깃 여미고, 비가 올것 같으면 우산 준비하고 있으면 인간의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일들도

너끈히 이기고 견뎌낼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당황하고 힘들어할때는 예측하지 못했던것이 닥쳤을때일겁니다.

하지만 워낙 변덕이 심한 이곳 날씨라 언제, 어떻게 이런 단상이 경솔하고 성급한것이 되어 버릴지는 모를일입니다.

 

불과 두달전의 폭설과 한파가 먼 전설같이 여겨지던 지난 금요일에 프랑스 학교들은 2주간 스키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두달마다 2주간 방학이 있습니다. 성탄절 방학이 끝나고 1월초에 개학하고 나서 별로 열심히 학교 다닌것 같지

않았는데 또 방학이랍니다.

그런데 말이 좋아 스키방학이지 프랑스 지방 스키장에서는 올해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아우성이랍니다. 

 

머지않아 개나리가 봉우리를 맺을것 같은 따스한 금요일에 방학을 맞은 작은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다소 말이 많은 아이는 < 오늘은 따뜻해서 외투를 벗고 운동장에서 놀았어>라며 여느때처럼 쫑알거렸는데,

아이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느닷없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발렌타이 데이엄마에게 누군지 이야기해 주겠다고 합니다. 

더이상 건성으로 듣고 있을수 없었답니다. 그새 8살박이 딸아이에게 짝사랑이 있었다는것입니다.

그런데 그놈[?]에게 고백하는것이 아닌 엄마에게 알려주겠답니다.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고슴도치 엄마의 작은 딸내미 마음을 사로잡은 그가 누군지 갑자기 엄청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발렌타인 데이까지 못기다리겠더라고요.

집으로 와서는 아이가 그사이 말했던 학교 남학생들 이름을 열거하니, 학교에는 없답니다. 

그럼 자주 만나는 한인 가족들중에? 아님 교회 오빠?, 친구?, 더 아님 연하남?

아이는 배시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젖습니다. 마치 아이에게 심리 테스트 당하는 느낌이었답니다.

빨리 궁금해하는 마음을 접고 사흘을 기다리기로 작정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은 신기해서 발렌타인 데이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니,

이미 유치원 시절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의 날이라고 친구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답니다.

 

프랑스에서 발렌타인 데이는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Fête des Amoureux]라고 합니다.

한국처럼 화이트 데이는 기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기도 한것을 알고 있었냐고 물으니 알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는 절대로 그에게 고백은 하지 않겠답니다.

엄마에게만 고백하겠답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믿기 때문이라고요.

 

한국보다 8시간 늦게가는 파리라 아직은 일요일 야심한 밤시각입니다.

내일, 2월 14일, 발렌타이 데이를 이 엄마는 가슴 콩닥거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딸은 올해 발렌타이 데이를 엄마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만 8살, 어린 가슴에 연정을 품게 만든 그놈[?]의 정체가 곧 드러나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