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외침

기독교인인 내가 비겁할수밖에 없는 이유

파리아줌마 2011. 1. 20. 08:07

조금 예민한 주제를 건드린것 같아 두렵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많이 생각해왔던 문제라 조심스럽게 한번 꺼내봅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파리에 있는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불도 강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쩌다가 예수님의 은혜에 붙들린 사람이

되었는지는 굳이 머리로 이해하려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껴지는것이 있습니다.

 

새해 첫날 <샹젤리제 거리의 새해맞이 풍경>을 블로그에 포스팅했습니다.

2011년 1월 1일 샹젤리제 거리에서 새해 첫순간을 맞이하는 분위기를

전한 글과 사진이었습니다.

 

지난주 교회사람들과 사석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함께 참석하신 어떤 목사님께서 관련 포스팅을 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조금만 하나님 말씀을 언급하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알수 있었습니다.

관심가지고 봐주시고, 당신이 보기에 아쉬운 점을 지적해주신게 감사해서,

<알겠습니다. 저도 제자신이 좀 비겁하다고 느끼고는 있었어요>라고 했더니 옆에 계신분들이 웃으십니다.

 

그런데 비겁해서 언급하지 않은것인지, 올린 글과 연관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에 같은 기독교인들이 너무 하나님을 자주 들먹이는듯한 모습이 싫어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가지 모두 포함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씀을 듣고는 약간 고민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의 포털사이트에 기독교 색채를 띈 글을 쓴다는 자체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비겁한것 맞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들먹이면서 글을 쓰고 싶지 않은게 더 지배적입니다.

 

얼마전 트위터에 살짝 기독교 색채를 띈 글을 올렸는데 언팔[글을 보겠다고 팔로워했다가 삭제하는것]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팔로워 숫자들이 후두둑 내려가는것을 보고는 한국내에서 기독교인들에게 가지는 인식이 어떠한지 뼈져리게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비겁[?]해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글은 아예 올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의 중심이 흔들린 것은 아닙니다. 단지 표현을 자제할뿐이지요.

 

선교사도 아니고,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전도할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현재 한국사회안에서 기독교인들을 보는 시선이 너무 험해서 그게 안타까울뿐입니다.

기독교인들을 향한 손가락질을 너무 잘알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임을 미리 당당하게 밝힐수없는 이유

 

이곳 파리의 한인교회들도 크게 예외는 아닙니다.

정치적인것까지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전 프랑스 방송에서 한국을 집중조명했을때 한국의 기독교는 보수적이고 정치와 깊이 연관되어있음을 알렸습니다.

왜곡하지 않는 사실 그대로 보도한것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장소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인곳입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문제 많은곳이 교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 많은 이들이 와서 무거운 짐 보따리를 풀어놓기도 하고, 큰 은혜를 받아 변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그안에서도 묘하게 지배와 피지배, 그리고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그럴듯한것으로 연막이 쳐져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지배하는 이들은 힘들어하는 성도를 보면 무조건 <기도하라>하고, <사랑하라>하고, <용서하라>고 합니다.

랑하고 용서해야 되는지 모르는것 아닌데 그렇게 쉽게, 함부로 이야기합니다.

그들에게 남의 고통은 단지 강건너 불구경일뿐입니다.

 

자신의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기적[?]이 오기를 기도하고, 남이 잘되면 그사람의 노력을 높이 사기보다는 하나님 도우심이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어떤면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나서 기적을 바라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하기보다는 상대의 노력을 먼저 칭찬해야될것입니다. 

 

그안에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이웃사랑을 느낄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없고, 단지 하나님을 내세운 이기적인 욕망만이 있을뿐입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은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그것만 안해도 어느정도는 인간적으로 이해를 할수 있을것도 같습니다.

 

또한 전도한다는 미명하에 하나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합니다.

삶에서 변화되어 실천하는 말씀이 아닌 단지 말하기 위한 그분만 있습니다.

깨끗이 닦지 않은 더러운 그릇에 좋은 밥 담았다고 사람들에게 내미는격입니다.

 

그렇게 너무 드러냈기에 세인들의 표적으로 떠오를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잘하면 되는데, 나약한 인간이다 보니 실수가 많습니다.

깨끗이 닦지 않은 그릇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냄새를 풍깁니다.

 

비난은 당연히 받게 됩니다. 큰소리나 안쳤으면 이해라도 하려고 하겠지요.

사람의 됨됨이 보다는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로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욕을 먹게 됩니다. 

   

이쯤되면 뱃속 깊은곳에서 양심이라는 놈이 <너나 잘하세요>하고 소리칩니다. 

맞습니다. 저부터 잘해야 됩니다. 잘하지는 못해도 문제는 느끼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세인들의 비난은 당연한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수쟁이라고 불특정 다수인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비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비겁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했습니다만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겠다는 것이고, 지금은 한국 기독교가 조용히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될때가 아닌가

싶어서 꺼낸 <비겁>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향한 비난을 이해하고 있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심한 비난에는 저도 팔이 안으로 굽더군요. 그들의 분노는 정치권을 향해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얼마나 잘하길래 그렇게 이야기하나> 싶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들 눈에는 그런 기독교인들만 보였나 봅니다.

자기희생의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분들의 사역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올바로 서려는 노력을 해야될것입니다.

 

예전에 어떤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6 25 전쟁시 그분 아버님이 쌀집을 하고 계셨는데, 마을주민들 모두 피난을 가야하는 아수라장인 상황에서

외상값을 갚으러온 분들은 교회 다니는 분이었답니다.

당시 아버님은 그분들에게 감동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는 양적으로만 급격히 팽창해 있는 우리 한국 기독교가 본받아될 정신일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 하늘에서 구현되는게 아닌, 이땅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실현해야될

기독교인들의 숙제같은것입니다.  

 

아마 당분간, 죄송스럽지만 목사님 제안을 따르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며 저부터 잘해보려는 노력은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