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평화와 자유의 도시, 제네바의 레만호수에서

파리아줌마 2011. 6. 25. 09:49

제네바는 항상 알프스, 샤모니나 인근 도시들을 가기 위해

거치면서 보았던 도시였습니다.

마치 놀이할때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은 깍두기 같았습니다.

 

제네바에게 약간 미안해지려고도 합니다만 그이유는,

무척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난 시대의 소용돌이속에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나라, 스위스라 그런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대국들의 제국주의 화마가 약소국들을 상대로 잔악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두번의 세계대전이 있었던 지난 세기에도 스위스는 어느편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스위스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인 제네바에는 여러 평화 협상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현재 국제연합의 유럽 본부를 비롯해 국제적십자 본부,

국제경제기구 등 22개의 국제 기구 와 250개 이상의 비정부 기구가 위치해

있습니다. 제네바의 국제 연합 본부는 세계에서 가장 국제 외교활동이

활발한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회의들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인구 191,237명, 15,86km2의 면적을 가진 제네바는 취리히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환경도시로 꼽히고 있습니다. 

 

평화협상이 자주 열리곤 했던 도시라 더욱 각인되어야할텐데, 전쟁으로 아픈 나라들보다 다가온 존재감은 덜한것 같습니다. 그 덜한 존재감은 아마 편안함과 같은것일겁니다.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와 <레만호에 지다>등과 같은 영화에서는 첨예한 이념 갈등을 겪어난 이후, 

피난처 같은 역할을 하는곳이 제네바였습니다. 항상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제네바 시내

 

처음 제네바에 갔을때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도시 전체적인 분위기가 밋밋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레만호도 기대를 해서인지, 무척 넓다는것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아마 워낙 아기자기한 프랑스 풍경에 익숙한 탓도 있었겠지요.

 

                                                                                                                                              제네바

그런데 저에게 제네바를 확실히 각인시켜준건 영화였습니다.

눈에 비친 모습으로 다가온 제네바가 아닌 식민 지배에 대항해 강대국을 향해 피비린내 나는 투쟁속에서

나약한 인간들이 처절한 갈등을 겪고난뒤 고요하게 정리하는 도시로 제네바가 와닿았습니다.

그이후로 제네바라고 하면 그영화가 떠오릅니다.

문화가 어떤 사물을 대하는 사람의 인식에 가져다줄수 영향이 만만치 않은것 같습니다. 

 

                                                                                                                                             제네바

1992년작인, <인도차이나>라는 영화였습니다.

까뜨린 드뇌브와 벵상 페레 주연의, 인도차이나를 점령하고 있었던

프랑스 제국주의의 소송과도 같은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시각의 중심이 프랑스 여인인 엘리안느[까뜨린느 드뇌브]에 있었기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제네바 시내에 있는 1879년에 세워진 Brunswick 기념비

 

인도차이나에서 거대한 고무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독신녀 엘리안느, 사고로 부모를 잃은 인도차이나의 마지막 황제의 딸이자, 엘리안느의 입양녀 까미유, 그리고 프랑스 해병장교인 쟝 밥티스트, 이 세사람이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에서 겪는 인간적인 갈등을 처절하게 그려낸 영화였습니다.

 

엘리안느의 애인이었던 쟝 밥티스트는 고무농장 직원들의 노동력 착취에 저항하게 되고, 양엄마에 의해 프랑스인으로 자라고 있었던 꺄미유는 어느날 거리 총격전을 목격하고는 자신의 나라,

인도차이나의 현실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공교롭게 그자리에서 있어서 꺄미유를 구해주었던 쟝밥티스트를 보고는 꺄미유는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제네바, 레만 호수

 

까미유는 우연히 식민지 백성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것을 본 프랑스 군인을 살해하게 됩니다. 함께 있었던 쟝밥티스트는 꺄미유와 함께 도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유랑 극단을 떠돌며 꺄미유는 인도차이나 민족 해방 전선 요원이 되고, 꺄미유를 도우기 위해 본의 아니게 탈영하게 된 쟝밥티스트는 군인으로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것입니다. 어느날 두사람은 잡히게 되고, 꺄미유는 감옥으로, 쟝밥티스트는 본국으로 송환되게 됩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엘리안느가 키우게 되는데 꺄미유가 출소하는 날, 엘리안느는 안타까워하며 양딸을 찾아갑니다. 곱던 얼굴은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진한 검은빛 머리칼은 하얗게 쉰 꺄미유는 양엄마를 보자마자 차가워집니다. 

 

                                                                                                                                         제네바, 레만호수 앞에 있는 수돗물[?]

 

그리고는 민족 해방 투사가 된 꺄미유는 프랑스인 양엄마를 향해 부르짖습니다.

<너의 인도차이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라고요. 엘리안느는 엄마와 함께 하자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합니다. 하지만 꺄미유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네바, 레만호수앞에 있는 동상

 

그리고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 아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엘리안느집을 찾은 쟝 밥티스트는

아들 옆에서 자살을 합니다.

그는 식민지에 명령을 띄고 파견된 프랑스 군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 백성들이 겪는 착취에 분노하게 되고,

직분을 상실한채 군인이 하지말아야될 일을 하고 만것이지요.

 

                                                                                                                                                               제네바, 레만 호수

 

그모든것을 감당하고 살아야만 하는 엘리안느가 있었습니다.

사랑했던 애인이 사위격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했고,

정성과 사랑을 쏟아 프랑스 부르조아로 키우려고 했던 양딸 꺄미유는 인도차이나 민족해방투사가 되어

그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옆에 남은건, 두사람의 사랑의 결실인 핏덩이, 아들뿐이었습니다.

 

                                                                                                                                                     제네바, 레만 호수

 

엘리안느가 감당해야될 그모든것들은 어쩌면 프랑스 제국주의가 책임져야할 몫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잔인한 이야기일까요? 1992년에 발표된 <인도차이나>는 많은 프랑스인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합니다.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배우들의 열연, 하농베이 배경으로 펼쳐진 멋진 영상력을 지닌 대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시대의 소용돌이와 이념속에서 희생되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묘사한 영화였습니다.

 

                                                                                                                                                                     제네바, 레만 호수

 

<인도차이나> 영화에서 제네바를 떠올릴수 있었던것은 마지막 한순간이었습니다.

엘리안느 손에서 자란 꺄미유와 쟝 밥티스트의 아들은 어엿한 청년이 되어 1954년 제네바 협정에 

베트남 민주 공화국 대표위원으로 참석한 꺄미유, 그의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고즈넉한 분위기로 호텔에 있는 엘리안느 앞에 어떤 청년이 등장합니다.

엘리안느는 엄마를 만났냐고 묻습니다.

그는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쪽이 원하지 않았다고요. 

 

                                                                                                                                                                    제네바, 레만 호수

그리고 청년은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엄마는 너>라고...

그리고 엘리안느는 호텔 테라스로 가서 레만호수를 바라보는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제네바, 레만 호수

 

영화의 마지막에 잠시 나왔던 제네바였는데,

잊혀지지 않는것은 앞의 내용들과 너무 대조적인 평화스러운 모습이었고,

이제 더이상의 갈등과 아픔은 없을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게 픽션이 가져다 줄수 있는 환상같은것이겠지요.

영화는 그렇게 끝이날것이지만, 현실의 삶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영화나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도시나 삶을 잠시 벗어나 정서를 채우는일이기에

크게 다르지 않을것입니다. 

 

                                                                                                                                                                 제네바, 레만 호수

 

한없이 넓은 레만 호수는 역사의 뒤안길에 희생된 모든 이들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듯했습니다.

힘없고 나약해서 아팠던 이들뿐만 아니라 강하고 힘이 있어 상처를 주었기에 더욱 가여운 인간들까지

품고 있겠지요. 

 

                                                                                                                                                                    제네바, 레만 호수

 

 

 

 

가슴 아픈 영화 이야기를 해서인지,

제네바의 모습은 더욱 자유롭고 평화스럽게 다가옵니다.

 

 

 

겉보기엔 마치 아무일 없었던것 같지만,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난뒤 주어질수 있는 평화겠지요.

 

 

 

 

 

 

 

 

 

 

 

밋밋하고 무심상하게만 다가왔던 제네바가 어떤 영화로 인해 진하고 사연 많은 도시가 되어버려,

자유와 평화를 물씬 만끽하며 다녀가게 되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625발발한지 61주년이 되는 날이네요.

베트남이 한반도의 비극과는 다른 형태로 일어났지만,

그안에서 휘둘리는 인간들의 고통스런 모습은 다르지 않겠지요.

 

비록 625를 겪지 않은 세대지만 우리 부모들과 조부모들이 겪었던 아픔은 잊지 말아야될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일이 없어야 되겠지요.

한반도에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오기를 멀리서 간절히 바랍니다.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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