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다가

감성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 [남과여]

파리아줌마 2010. 11. 3. 10:28

추억의 프랑스 영화, [남과여]

 

 

중학교때 친구가 프랑스 영화는 혼몽한 상태로 시작해서 

끝난다고 하더군요. 그말에 공감이 되어 함께 맞장구쳤습니다.

하지만 그런 프랑스 영화가 싫지않았습니다.

지금생각해보니 당시 한국에 소개된 프랑스 영화는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서정적인 배경이 가미되어 여학생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만 했습니다.

 

 

뒤집고 깨부수고 하는 미국 할리우드식 액션 영화에 익숙해 있다 보니

프랑스 영화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줄수밖에 없었겠지요.

 

 

196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끌로드 를루슈 감독의 [남과여]가

우리나라에서 한창 상영중일때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영화관 간판만 보고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에로영화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영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정적인 사랑이야기더라고요.

그리고는 은근 배신감이 들더군요. 누구를 향한 배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제목이 [남과여]인데, 불어 그대로 직역하면 [un homme et une femme]로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장황한 줄거리가 있는것도 아니고 아픈 기억을 가진 남녀가 만나 사랑하다가

잊지 못하는 과거 때문에 잠시 갈등을 겪지만 다시 맺어지는 해피엔딩입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도빌 바닷가와 컬러와 흑백을 경계없이 드나드는 영상미,

프란시스 레이의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남녀 주인공들의 절제된 대사속에 어우러지는 섬세한 심리묘사가 

드러나는 전형적인 프랑스풍의 영화입니다.

 

남자 주인공, 장 루이 트리튀냥은 별로였습니다.

그리 꽃미남도 아니었고, 약간 매력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프랑스 미인인 여자주인공 아누크 에메의 지적이고도 고상한 매력은

이영화를 한껏 살려주는듯했지요.

 

사각턱에 우수에 젖은 커다란 눈, 그리고 가는 허스키 음성으로 간간히 말을 뱉어낼때는

불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는 아내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카 레이서인 남자와 남편이 사고로 죽은 여자가 각자 아이들을 

도빌 기숙사에 맡겨놓고 주말마다 보러오다가 여자가 돌아가는 파리행 기차를 놓쳐버린 날부터 시작됩니다.

기숙사 교장의 소개로 남자의 차를 타고 여자는 함께 파리로 오게 됩니다.

 

비내리는 날, 자동차 유리창의 와이퍼가 세차게 흔들리는 가운데

차속 두남녀의 미세한 사랑의 떨림이 시작됩니다.

 

                           

 

주말마다 아이들이 있는 도빌에서 만나면서 어느정도 가까워진 두사람은

파리로 같은 차를 타고 오면서 서로의 배우자들에 대해 물어옵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과거의 남편과 아내 이야기가 회상됩니다.

현재 차안의 영상은 흑백인데, 과거의 영상은 컬러로 나옵니다.

도빌에서 파리로 오는 차안의 시간에 머물며 관객들은 두남녀의 가슴아픈 과거를 알게됩니다.

 

좋은 감정만을 간직한채로 있던 어느날, 자동차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모나코에 가있는 남자에게 여자가 축하전보를 보내려고 합니다.

어떤 글을 보낼지 여자는 갈등합니다.

그냥 축하 메시지만 보내려던 그 여자 말을 바꾸어 <브라보! 사랑해요, -안->이라고 보냅니다.

파티장에서 전보로 사랑고백을 받은 남자는 바로 모나코에서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도빌까지 밤새도록 천 킬로를 달려옵니다.

 

아이들을 기숙사로 돌려보낸뒤 남자와 여자는 도빌의 노르망디 호텔에서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잔잔히 흐르던 음악도 멈추어버렸습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쿵쾅쿵쾅 강한 심장박동소리가

울리더니 여자가 괴로워 인상을 씁니다. 여자는 남자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전남편을 회상했을때 흘렀던 애잔한 음악이 흐릅니다.

무척 가슴아팠던 장면이었습니다.

 

이상스레 여긴 남자가 묻습니다.

남자: 왜요? [pourquoi?]

여자: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 때문에요.[à cause de mon mari]

남자: 그는 죽었잖아요.[il est mort]

여자: 나한테는 아직 아니예요.[pas encore pour moi]

 

그리고 싸늘해진 여자는 기차를 타고 혼자 파리로 오게 됩니다. 

파리행 기차안에서의 여자의 모습과 혼자 차를 몰고 오는 남자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화면을 왔다갔다합니다.

 

무섭도록 차가웠던 여자의 표정은 파리가 다가올수록 환해지면서 옅은 미소까지 띄게 될때

남자는 핸들을 꺾어 그녀가 탄 기차가 도착하는 생 라자르역으로 향하게 됩니다. 

역에서 그녀를 맞게되고 서로 포옹하는 순간 카메라는 360도로 빙글빙글 돌면서

남녀를 묘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납니다.

 

예전에는 이영화에서 보여주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애써 정리하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현재의 사랑에 충실한 남자와 과거의 사랑을 못잊는 여자,

그래서 아주 고전적인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이야기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영화를 보는데 이야기에만 치중할 필요는 없는것 같습니다.

끌로드 를루슈 감독이 연출해낸 영상미와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아름다운 프랑스 노르망디 바닷가와 파리의 풍경을 보고 느끼면 좋을듯합니다.

그모든것들이 어우러져 어떤 논리보다는 감성에 강하게 호소하는듯한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노르망디, 도빌은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입니다.

큰아이가 어릴때 자주 찾곤했었지요.

도빌바닷가를 걷다 보면 영화안에서 들려왔던 르아브르 항구의 뱃고동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습니다.

<집에 불이 나면 렘브란트의 그림보다는 고양이를 구하겠다>는 조각가, 자코메티 일화를 이야기했던

바닷가 나무마루도, 무스탕을 입은 안이 딸과 함께 거닐었던 나무난간도 그대로였습니다.

둘이서 잠시 함께 했던 호텔도 노르망디의 지방색을 잃지 않고 멋스럽게 있더군요.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영화속의 여자와 남자였던 아누크 에메와 쟝 루이 트리티냥은 

더이상 젊지않다는 것입니다.

 

무르익어가는 가을에 프랑스 소식만 전하는게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추억의 영화 한편 꺼내어 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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