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변 덕

파리아줌마 2008. 1. 10. 20:40

 

프랑스는 유치원을 3년을 다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니까 petite section, moyen section, grande section으로 나뉘어져있다.

 

유치원의 마지막 학급인 나의 둘째 딸 서진이는 작년, moyen section까지 추운 겨울 날씨에도 잘 아프지도 않고 얼마나 열심히 유치원에 출석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 이하 친구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프로그램의 모든 것들을 만끽하며 잘커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유치원의 고학년이 된 올해 나는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던게, 개학 첫날부터 울기 시작해 이 엄마를 당황스럽게 만들더니만 그이후 계속되는 학교에서 점심 먹기 거부 등, 마치 유치원 첫해 보다도 더 못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서진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었나도 되돌아보았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키우려고 애썼고 그런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서 커나가고 있는 딸을 너무 믿었나 등등 온갖 상념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크리스 마스 방학이 끝나고도 감기로 이틀 정도 학교를 결석한 서진이는 20여일만에 학교를 가는 오늘 아침, 깨우자 마자 피곤하다고 징 징---

 

TV에 재미있는 만화하나 눈 똑 바로 떠서 보고는 별로 마음에 안들었던지 또 징 징,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을  참자, 참자, 침을 몇번 꿀꺽 삼키고, 남편 눈치 보며 협박스런 발언은 자제한 채 일단 학교로 출발.

항상 아이들이 칭얼대며, 약한 모습을 보일때면 나는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 똑 바로 차려"등등 사랑으로 얼르는 멘트 보다는 모지락스런 말들을 내뱉곤 했었다.

 

이 험한 세상에서 강하게 키워야한다는 미명하에.....

 

남편이 학교앞에까지 데려다 주고 차가 떠나는 순간부터 여지없이 "학교가지마...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서 학교 더 이상 안보낸다고 할거야" 등 나는 서진을 협박했다. 물론 이 엄마 마음에는 애가 이런 식으로 자라면 안된다는 안타까움이 있었고, 쓸데없는 변덕 부리는 습관을 뿌리뽑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서진이는 울고 몇몇 학부형들과 친구들의 시선을 느끼며 일단 학교에 갔다.

 

애를 학교에 보내고 마음 한쪽 구석지에는 "오늘 학교 마치고 오면 완전히 잡아서 다시는 이런 변덕 못부리게 해야지"와 또 다른 구석지에는 아침부터 울려 보내 가슴이 아려오기도 해, 이럴때 지혜로운 방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 슈퍼를 보면서 생각해봤다.

 

그순간 가슴속 깊은데서 울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애야,  학교 안간다고 그러지도 않았고 징징은 됐지만 따라 나서지 않았니? 그런 애를 달래 보내지 뭘 그렇게까지 하고 보내?"

 

그때부터 나를 두드려 보았다. 지난 가을부터 계속되었던 서진의 변덕과 이에 질새라 모질게 반응했던 나의 모습들을.....

 

나는 애가 방긋 방긋 웃고 재롱떠는 모습에는 당연히 너무 좋았고, 쓸데 없는 변덕을 부릴때면 감당이 되지 않아 협박과 공갈, 조건부 등이 나왔나 보다.

엄마 맞아?

감쌀 겨를이고 머고, 같이 변덕 부리는 엄마의 모습을 오늘 아침 보았다.

 

바로 이런 엄마의 모습 보라고 딸은 지난 가을부터 그랬나 보다.

 

알고 보면 별로 어렵지 않았던 문제인데 나의 아집과 생각에 덮여, 딸 고생, 엄마 고생...

지난 가을부터 의문시 되었던 문제가 오늘 아침에  그 답을 얻은 것 같다.

 

철저히 회개하고, 오늘 하루 서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다 오기를 간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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