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국에 있을 때, 신라면 봉지에 "수출용"이라고 써있는 것을 보고는 외국 사람들이 이 매운 신라면을 어떻게 먹나 하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의문이 풀린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영원히 풀지 못했을 숙제로 내 인생에 남겨놓고 하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라면 "수출용"이 프랑스에 와서는 중국시장과 한국 식품점을 통해, 바로 나같은 교포들을 1순위로 공략한 것이고, 그이하 아시아권의 여러나라 교포들 그리고 매운 라면 맛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 아마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한국 식품점이 지금은 10개가 넘게 생겼지만, 내가 유학생으로 있던 1990년대에는 파리에서 한국 식품점이 유일하게 하나로 독점하고 있는 상태여서,그당시 신라면 하나가 2000원 상당이었으니, 유학생들에게는 고급 식품으로 취급되어 쉽게 접할 수도 없었고, 우리는 중국 시장에서 파는 밀가루 냄새나는 일본 라면, “출전일정”[제목은 정확치 않다]을, 그것도 감지덕지하면서 사먹었다.
요즘은 1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비행으로 한국에 도착할수 있지만, 그 당시 파리와 한국의 직항로가 개설되지 않아, 나는 처음 파리로 올 때 방콕에서 3시간 정도 머문 것 합해 거의 24시간 비행으로 파리에 도착했다.
청운의 꿈을 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시간들이 전혀 지겹지 않았다. 어쨌든......., 자칫 잘못하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질 뻔했다.
각자 기호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 또한 큰 기쁨인 것 같다.
그만큼 음식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데… ,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한국 남자가 이곳에 유학을 왔다. 일단 모든 것을 감수하고 왔으리라 생각은 했다.
자식을 유학 보내는 그의 어머님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느날 우연히 들른 중국 시장에서 한국 배추를 발견하고는 그자리에서 큰소리로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첫아이를 가지고 미친듯이 한국 토속 음식이 그리운, 입덧 같지 않는 입덧을 심하게 하고 나서인지, 파리 생활 10년쯤 넘어가고 있을 무렵부터, 하루라도, 아니 한끼라도 김치를 먹지 않고 패스트 푸드나 프랑스 요리로 식사를 하고 나면 뱃속에 돌덩어리 하나를 넣어 가지고 있는 듯하다.
소화 불량은 아니지만 꼭 소화 불량의 느낌으로 허덕이는데, 이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이에 남편 왈 "제대로 된 프랑스 요리 먹으면 한국 음식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통 프랑스 요리 맛본지는 오래고, 그럴 상황도 주어지지 않고 어쨌든 나로서는 남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인 것 같다.
나는 고추가루, 고추장 넣은 매콤한 우리나라 음식이 좋다.
한국의 식탁에서 김치는 기본이겠지만, 나 같이 요리 솜씨없는 한국인들에게 김치는 메인 디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매번 김치를 담은 날은 부자가 된 것 같다.
나는 한국 음식을 주로 해먹는 파리의 한국 아줌마로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재료의 아쉬움은 항상 동반되는 것, 매번 중국 시장, 한국 식품점 다닐수도 없는 노릇이고, 불고기를 하려면 쇠고기 덩어리 사와 칼로 자르고, 돈까스 역시 집에서 내가 저며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다, 가끔은 다 마련된 불고기감이 있고, 돈까스 만들어 파는 한국의 정육점 생각이 날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엄마의 정성어린 돈까스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오른쪽 날개 쭉지가 가끔씩 뜨끔거리며 아파온지는 1년이 넘은 것 같다.
한국 아줌마들끼리 모이면 나는 나의 솜씨 없음을 탓하기 보다는 "우리는요 한국 음식 만드는 데 있어서는 우리 엄마들 사셨던 60년대, 70년대처럼 살고 있다니까요," 하면서 푸념을 늘어 놓기도 했다.
솜씨 좋은 한국 아줌마들은 프랑스, 한국 재료 섞어 멋진 퓨전 요리를 잘도 만들어 낸다. 그분들은 한국 가면 먹을 것이 없다고 한다. 나는 그소리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래도 그날은 몇가지 배워가지고 온다.
우리집 김치통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 저녁은 둘째가 좋아하는 미역국 끓이고, 어제 남은 된장 찌개는 첫째가 좋아해 데워주면 되겠고, 남편은 출장가고 없으니 간단히 후랑크 쏘세지에 야채들 듬뿍 넣어 올리브 기름에 볶아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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