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는 프랑스인들이 그들의 대통령 "사르코지"를 부를때 쓰는 애칭이다.
사르코지가 내무부 장관으로, 그리고 드 빌팽이 프랑스 총리로 재직시, 그들이 몸담고 있던 프랑스의 우파 정당인 UMP당, 그러니까 우리나라 말로 풀어하자면 대중 운동 연합당에서 그들은 유력한 대선 후보 두 인사였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 당은 후보 단일화를 내세웠고, 그러는 와중에 드 빌팽 전 총리는 외무부 장관 재직시 룩셈부르그에 있는 금융 기관인 크리어스트림에 사르코지의 비밀 계좌가 있는지를 그당시 프랑스 비밀 요원이었던 롱도 장군에게 은밀히 조사를 지시한 것이 발각되었고,[드 빌팽은 여전히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청년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CPE[최초 고용 계약법]을 만들어 좌파와 노조들, 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그 법을 철회하기까지 이르렀던 사르코지의 정적인 드 빌팽,
이러한 사건들로 그에 대한 신임은 점점 떨어지면서 대권 희망은 저절로 사르코지에게로 유리하게 흘러갔다.
개인적으로 그당시 나는 인상이 순하고 선비 타입이었던 드 빌팽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고 있었다.
made in france가 아닌 헝가리 이민자 출신의 사르코지 인상은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UMP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한 사르코지는 오랜 좌파식 정치에 진력이 난 프랑스인들의 "좀 바꿔보자"는 기대에 적합하게 맞아 떨어져 대통령이 되었다.
지난해 5월 결선이 끝나고, 서진의 친한 친구인 에스테르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는데, 그녀는 사르코지를 찍었다고 하면서, 사르코지의 진솔함과 좌파 루와얄의 위선을 나름대로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르코지와 얽힌 일화를 아주 즐거워하면서 들려주었다.
그녀가 알바로 프랑스 서쪽 바닷가 도시에서 고급 호텔의 안내 데스트를 볼때,
그당시 시락과 경쟁해 대선의 야망을 품고 있었던 발라뒤르의 오른팔 역할을 했었던 사르코지는 잠시 그곳으로 휴가를 보내고 있었던가 보다.
그에게 전달할 사항을 연락을 받고 그가 바닷가에 있던 관계로 에스테르 엄마는 다른 사람을 통해 그 메세지를 전달할 것을 부탁했는데, 어떻게 된게 전달이 잘 되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나서 사르코지는 일개 알바생인 에스테르 엄마에게 누굴시킬만도 한데,직접와서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혼을 냈는지 모른다며 그녀는 이마에 손을 얹고는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어댔다. 그녀는 사르코지의 진솔함을 이야기하고 싶어 꺼낸 이야기였다.
그냥 어린 처자를 상대해서 뭐 그리 혼을 내고 싶었을까라면서 그녀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진솔함을 느꼈다고 했다.
혼은 났지만 사르코지에 대한 나쁘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에스테르 엄마였다.
그의 이 같은 진솔함은 취임식에서부터 나타났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전 프랑스 대통령들 중 가족을 언론에 공개한 이는 유일하게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으로 그것도 가족 사진만을 공개했었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식엔, 사르코지의 전부인에서 태어난 두 아들, 그리고 영부인이었던 세실리아가 전남편 사이에서의 두딸, 그리고 사르코지와 세실리아의 아들 하나, 이렇게 재결합된 가정의 다섯 자녀가 취임식에 참석한, 프랑스 대통령 취임식 사상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세실리아가 입었던 드레스 역시도 그동안 영부인들이 취임식에 입었던 프랑스 오뜨 꾸뛰르 드레스가 아닌 이태리의 프라다였다.
그날 취재를 갔던 기자들의 반응을 보면 세실리아가 입장하자 마자 대통령 취임식이라기 보다는 칸 영화제 레드 카페에 나타난 여배우의 분위기가 풍겼다고 한다.
내세울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대통령 가족 모습이었다.
내가 느낀 사르코지 대통령은 일단 사생활에 관한한 세간의 이목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다.
하지만 대통령 부부는 이혼했다.
지난해 11월 대중 교통 파업으로 불편함속에 살아가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이목을 마치 대통령의 이혼으로 돌리려고 의도한 것처럼 엘리제궁은 파업이 한창인 때에 이를 발표했다.
프랑스인들의 반응, 또한 79%가 그의 정치 활동에 지장이 없다고 여론 조사에서 밝힌 것을 보면서 이 나라는 동양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가 적용이 되지않는가 보다 하며 씁쓸해 했다.
그래도 내조자는 있어야 할텐데....
1984년, 파리 외곽 지역의 부유촌인 Neuilly-sur-Seine에서 당시 시장직을 맡고 있던 사르코지는 결혼식을 위해 온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방송인이었던 자끄 마르탱과 세실리아의 주례를 서다 세실리아를 사랑하게 된다. 이는 마치 한국의 옛날 잡지인 "썬데이 서울"에서나 접할수 있는 이야기 같다.
어쨌든 4년이 지난 1988년, 세실리아는 작끄 마르탱 사이에서 태어난 두딸을 데리고 사르코지 품으로 왔다. 그이후 그녀는 사르코지의 정치 활동에 적극적인 내조를 하게 된다.
1995년 대선에서 사르코지가 보좌했던 발라뒤르가 시락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자 세실리아는 사르코지의 원래 직업이었던 변호사로 돌아가자고 권했고, 정치활동도 시장직으로 그쳤으면 했다.
대선 입후보가 있기 전에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르코지는 이를 어겼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르코지는 "세실리아는 고통스러워했고, 가족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말한바 있다.
대선의 야망을 놓고, 또 다른 사랑이 있는 뉴욕으로 떠나간 세실리아를 붙잡기 위해 사르코지는 온갖 수단을 써서 그녀를 다시 파리로 데려왔다.
그의 야망을 위해 부인은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 당시 그의 옆에는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이때도 그는 진솔했던 것일까?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사생활 또한 큰 역할을 하던 때였다.
사르코지와 함께 했었던 여인은 피가로지 정치부 기자였다.
그는 이혼한 사람의 대선 출마에 대해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론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동안 세실리아의 영부인답지 않은 엉뚱한 모습들이 이해가 되면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할때는 당연히 그이유가 있기 마련인 것인데, 우리는 사회 통념의 잣대로 판단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실리아의 행동들이 잘 됐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내 생각에 세실리아는 대중들의 관심과 이목이 싫었고, 사랑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던 여성이 아니었나 싶다.
사랑 보다는 자신의 야망이 더 중요했던 사르코지와 그녀는 많이 힘들어 했을 것 같다. "퍼스트 레이디"로 살아가기를 원치 않았던 여인이었다.
오늘도 사르코지와 부루니의 결혼설이 난무하다. 한 일간지는 이번주 목요일에 결혼할 것 같다고 한다.
그들의 염문설이 나돌았을때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세실리아를 생각했다.
사르코지의 인간적인 진솔함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야심을 만났을 때 퇴색되어지는 게 안타깝다.
그의 특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진실되고 솔직하게 보인다면 정치 세계에서 패배하는 것일까?.....
어쨌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자"는 그가 프랑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내건 슬로건을, 우리 한인들을 위해서도, 잘 이루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르코지와 브루니, 작년말 이집트 여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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