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인들을 응시했던 어느날 밤

파리아줌마 2010. 2. 10. 23:43

오페라 하우스의 밤 모습

 

몇일 전 파리여인들이 식당에서 저녁식사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밤외출[?]을 했다.

사진을 찍어 글과 함께 잡지사에 보내야만 되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수 있을까?” 특히 인물 사진이라 조심스러웠다.

 

일단 파리의 번화가인 오페라 지역으로 갔다.

보통 길을 다닐때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내가 가는 방향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가끔씩 눈이 마주칠 때도 있지만

이유없이 사람을 응시하는 것은 상대방을 곤란하게 한다.

 

그런데 나는 그날 파리의 여인들을 찾아야만 되었기에, 어두운 저녁시간에 사람들을 눈여겨 보아야만 되었다.

일단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런 다음은 머리색깔, 얼굴 모양, 이왕이면 미인이고

전형적인 파리지엔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 더 좋겠지.

달랑 디카 가지고, 그것도 밤풍경을 배경으로 파리의 여인들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페라 하우스를 중심으로 식당들이 많은 오른편으로 갔다가 그림은 좋은데 너무 어두워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다음 오페라 하우스 왼편으로 걸어 마들렌느 성당까지 가보았다.

 

 

 마들렌느 성당 주위의 지하철역, 마들렌느 성당의 기둥들이 보인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한게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모든 상황을 내가 바라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왜냐하면 집에서 생각했을때 마들렌느 성당이 있는 주위에는 많은 식당들이 있고, 사람들로 북적거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주위는 영업시간이 끝나고 문닫힌 명품 옷가게들의 불빛만 화려했지 내가 원했던 식당은 없었다.

거리에 사람은 한 두명 있을까 말까,,

 

“여기가 원래 이렇게 한적했나?”, 화려한 조명의 명품 매장 쇼윈도에 진열된 멋진 물건들을 허무하게 바라보며

발걸음을 오페라쪽으로 다시 돌렸다.

“그만 집에 가자”하며 투덜투덜 걸어오는데 왁자지껄 여인들의 소리가 들린다.

내 앞 조금 멀리에서 파리의 처녀들이, 그것도 네명이 손에는 담배를 들고는 수다떨며 다가오고 있었다. “와! 기회인데, 내가 원하는 딱 그모습의 아주 세련되고 예쁜 아가씨들인데,”

자꾸 다가오는데,, 다가가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해야 하는데 도무지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침만 꿀꺽~ 삼켰다.

 

그리고 그녀들은 나를 지나쳤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아주 쾌활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나를 지나친 그녀들을 뒤돌아 보았다. “지금이라도 가서 얘기해볼까?” 도무지 발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아! 너무 좋은 기회인데”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

 

몇발자욱 지나 다시 뒤를 보았다.

“달려가 양해를 구해봐?” 하지만 도저히 가지질 않았다.

이렇게 나는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어떻게 아줌마 넉살도 이럴 때 발휘하지 못하는지” 그리고는 그냥 멀어져만 갔다.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양해 구해가면서까지 사람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게 문제였다.

그냥 줌을 이용해 찍을 생각이었고,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준비를 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네 명의 파리지엔들이 너무 아깝다.

양해를 구했어도 사진 찍히기를 허락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소극적인 나의 태도 때문에 더 아쉬워졌다.

 

 

파리와 그외곽을 달리는 고속전철, RER에 오르내리는 파리시민들

 

사진 찍기를 그만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그런데 그 사이 습관이 들었는지 자꾸 사람들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평일 밤 10시에 파리와 외곽을 다니는 기차, RER에는 많은 사람들이 귀가를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출장을 다녀오는지 한손에는 양복 옷걸이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두터운 가방을 들고 있는 어느 회사 중견 간부인듯한 중년의 신사,

도저히 부부 같지 않은 중년 커플의 모습, 그남자는 백발에 검은색 외투를 입고 목에는 밝은 빨강색의 목도리를 하고 있어서 유난히 눈이 띄었다.

각자의 직장에서 하루일과를 보내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는 귀가하는듯한 아주 다정해 보이는 부부,

직장 혹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저녁시간을 보내고 들어가는 젊은이들.

 

평일 밤10시 파리 중심지역 레알에서 탄 기차에는 하루의 일상을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프랑스인들의 삶이 있었다.

기차안은 앉을 자리도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침 빈자리 나서 앉았는데, 한 블록 건너에서 남자의 품에 편안히 안겨 있는 어떤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자는 피곤에 지친 몸을 아주 편안한 휴식을 취하듯 남자의 품에 안겨있다. 여자는 키가 작은데 비해 남자는 꽤 큰 키였기에 그 모습이 더욱 포근해 보였다.

그 커플은 내가 앉은 자리쪽으로 온다. 그리고 그 여자는 내옆 자리가 비었기에 앉았고, 남자는 좁은 통로 건너편 대각선 위치에 앉게 되었다. 나를 중간에 두고 둘은 대각선 위치에 앉게 되었다.

함께 나란히 앉아 가게 내가 자리를 그 남자랑 바꾸어 주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몸만 잠시 들썩이다가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는 척하고 비켜주고 나면 내가 겸연쩍어질 것 같아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무표정 없이 여자를 쳐다보는 남자의 눈빛이 가볍지 않다. 그리고 난 고개를 돌려 내옆에 앉은 그녀를 보았다.

그녀 또한 그남자를 아무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다.

둘은 많이 사랑하고 있는듯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응시하는 그남자는 눈빛하나만으로 여자를 감싸고 있는듯했다.

2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그 키 큰 청년은 우직해 보였다.

내가 느낀 그들의 사랑은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이런 사랑도 변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나도 모를 일이다.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며 “오늘따라 왜 이리 많은 이들이 와닿았지?” 하는 생각이든다.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을 눈여겨 보았어야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프랑스에서 산 시간들이 더할수록 나에게 다가온 프랑스인들의 모습은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려가게 만들었다.

 

한국에 있을때 들었거나, 이곳에서 같은 한국인이나 다른 외국인에게 들었던

프랑스인들에 대한 통계적인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위축되어 있었을 때도 있었고, 그들을 곁눈질하며 볼때도 있었다.

 

자식을 강하게 키우려고 하는 부모들이 있는 반면, 중학생 자녀의 낙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선생님께 "봐돌라"며 애원하는

프랑스 부모들이 있고,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자녀들이 있는 반면, 결혼후 출가해서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가족들 모두

데리고 부모집으로 들어가는 프랑스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김새, 음식, 관습, 교육하는 방법이 다르고, 사회적인 체계에 따라 살아가는 형태가 다르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본연의 마음들은 다르지 않다.

 

출장을 다녀와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년 신사와 사랑하는 젊은이들,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의 마음은 내 나라, 한국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저런 성격과 기질이 모여 인간 본연의 마음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 그곳이 프랑스이든, 한국이든, 그속에서 살아가는 있는 이들의 마음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며, 기차안의 그 젊은이처럼, 비록 사랑의 유형은 다르겠지만, 눈빛 하나만으로 내 앞의 사람들을 감싸 안을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