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파리에서 힘겨웠던 겨울나기

파리아줌마 2010. 2. 18. 00:09

 

지난주 목요일, 늦은 오후 눈가루가 흩날리더니 땅에 곱게 내려져 있다.

 

어릴적 겨울 방학이 되면 경남, 함양에 있는 친할머니댁에 가곤했었다.

함양은 친정 아버지의 고향으로 할머니와 고모 가족들이 살고 계셨는데,

대구, 우리 집에 왔던 고모를 따라 할머니 집에 가서는 낮에는 잘 노는데, 저녁 해질 무렵만 되면

나는 “엄마 보고 싶다”면서 울곤 했었다.

나중에 “내가 왜 그리 할머니댁에만 가면 해질 무렵에 울어댔지?”, “정말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을까?”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엄마 보고 싶다는 것은 핑계였던 것 같고, 비록 할머니, 고모들이 있었지만,

집 떠난 어린 소녀는 해질 녘의 불안하고 서글픈 기운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 같았다.

시골의 해질 녘 정취는 나중에 커서 알았을뿐이고, 그 을씨년스러움은 무슨 강한 힘으로 나를 휘두르는듯했다.

 

때로는 “이번에는 절대 안울 것”이라고 고모에게 다짐까지 해가며 갔었던 시골 할머니집이었는데,

가서는 어김없이 땅거미가 깔릴 즈음이면 나는 고모가 배신감이 들정도로 울어댔다.

 

이런 나약함이 스스로 참 싫었었다. 그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어린 나는 잘 울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 닮아 눈물 많고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고 측은해 하셨다.

 

몸이 허약해 보약을 지을때 나는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 마음도 강해져서 잘 안울수 있는 약으로 지어돌라”고 했고,

그럼 엄마는 “그럴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몸이 허약하고 안좋으면 마음도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보약을 먹고 나면 요술 할머니가 지팡이를 휘두른것처럼 내 마음이 강해져서 안울수 있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요술 할머니는 이세상에 없고 보약은 약일뿐, 주체하지 못하는 내 감정과는 별 상관없었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의 감정을 다스릴 능력이 안되는 것이었는데, 마치 내속의 내 감정이 악마가 되어

나를 지배하는것만 같았다.

잘 우는 것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가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언가에 의해 이끌림 당하는 사람처럼 굴었던건, 의지보다는 감정이 강하게 작용되었던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눈구경하기 힘든 파리인데 올해는 눈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극복하지 못했던 해질 녘의 서글픔은 이곳, 프랑스에 유학와서 미혼일때는 전혀 작용을 하지 않다가

결혼해 아이들 낳아 키우면서 슬슬도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썸머 타임이 있기에 여름에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진다.

해가 길게 늘어져있는 여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10월말 썸머 타임이 해제되고 나면 해는 급속도로 짧아진다.

오후 5시가 되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저녁 7시나 다름없는 어두움이다.

마치 5시에 밤이 오는듯했다.

 

어린시절에는 눈물 바람으로 그 불안과 서글픔을 표현했는데, 30대에는 우울로 나타났었다.

그때는 고작해야 대구에서 함양으로 간 것이었지만, 이곳은 한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엄청 먼 곳이었으니,

그거리로 가늠해 보아도 해질녘에 밀려오는 감정들은 만만치 않았다.

 

향수까지 겹쳐 겨울철, 오후 5시부터 저녁 7시까지는 가슴이 죄여오는듯한 우울함속에 빠져있다가,

저녁 7시가 지나 깊은 밤 시간으로 접어들면 마음이 안정되곤 했었다.

 

그당시 나에게 있어 프랑스, 파리에서의 겨울나기는 5시에 한번, 7시 또 다른 한번의 고비를 넘기는 일이었다.

 

파리의 겨울은 햇볕 한번 보기가 힘들었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지만 아주 습하고,

자주 짙은 안개속에 잔뜩 흐려있어 낮이 낮 같지 않다가 오후 5시즈음이면 어두워진다.

 

혼자 있었던 유학시절에는 그런 파리의 겨울이 싫지 않았다.

모든게 편했던 시절에는 그런 날씨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익숙하지 않는 삶들과 부딪히기 시작하니

매력적이던 파리의 날씨는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나를 옭아매는듯했다.

 

어린 시절의 그것은 내가 가지고 태어난 인간 본연의 성격과 기질적인 것에서 온 것이라면

파리에서 느낀 그것은 환경적인 요소도 많이 작용했던 것 같다.

 

날씨가 습하고 춥지 않으니 겨울철에 바이러스는 기승을 부린다.

특히 어린 둘째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도 자주 아팠다.

어떤때는 외부로 노출된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거의 감염되었던 적도 있었으니,

귀는 중이염에, 코는 감기성 비염에, 입은 그로 인한 기침, 그리고 설사까지,

어쩜 이럴수 있나 싶었다.

그당시 우리집에는 SOS Medecin의 왕진을 자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사업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남편까지..

이 모든 환경들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나의 우울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해질녘의 을씨년스러움이나, 내 앞에서 펼쳐지는 상황들, 모두 나의 환경들이다.

 

날씨는 주어지는대로 내가 맞추어 살아가야하는 것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추우면 옷을 두텁게 입고,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않을 신발을 신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내가 어떻게 할수 없는 날씨를 알게 모르게 탓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저녁이 다가오면 엄습하는 서글픔도 견디면서 이겨내어야만 하는 것이었고,

어려운 환경들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도 모르게 오후 5시, 저녁 7시는 더 이상 고비가 되지 않았다.

그 시간들은 이제 큰아이의 귀가를 기다리며, 그날 저녁 반찬을 위해 궁리하고, 둘째의 숙제를 봐주며,

부엌에서 가족들의 저녁식사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들이 되었다.

 

추운 겨울, 아이들이 감기로 아파도 더 이상 나는 시계를 바라보며 우울해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살아내어야만 하기에,,,

그냥 사는게 아닌 살아내어야만 한다.

그말에는 삶이 쉽지 않다는 것, 그렇지만 그것을 감당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듯해서 좋다.

나에게 주어진 한순간 한순간들을 그냥 살아지는데로 보내고 싶지 않기에, 어떤 환경속에서도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주는 파리의 2월답지 않게 눈이 많이 오고 추운날씨가 계속되었다.

“으! 춥다”하며 학교로 아이를 찾으러 가는데, 문득 오후 5시, 저녁 7시가 고비로

힘겹게 겨울을 지나던 때가  추억처럼 떠올려졌었다.

 

그날은 낮에는 펑펑 내리던 눈발이 오후 늦게부터 눈가루가 되어 흩날렸는데,

땅에 아주 곱게 내려앉아 있었던 풍경이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