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속의 한국

차드 교민들과 민족애

파리아줌마 2008. 2. 14. 20:13

중간에 조일환 대사님, 오른쪽 김주경 선교사님

 

 

지난주 구정을 얼마 앞둔 어느날, 저녁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남편은 급하게 어떤 기자에게 연락해, 차드 교민들이 내일 공항에 도착하니 나가서 모든 정황을 취재하라고 부탁한다.

 

본인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못나게 된다고 하면서

김주경 선교사님의 연락처를 주는 것 같았다.

 

뭔가가 절박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느낌만 있었다.

 

내전으로 인해 치안이 불안해진 아프리카, 차드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들은 그다음날 전원, 무사히 파리로 도착했다.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에서 사진업에 종사하는 이시우 한인 회장님과 한국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 차드 지부장님은 한시 빨리 떠나야 하는 상황속에서 마지막 한명의 한국인이 철수될 때까지 남아있을 것을 고집했다.

 

차드 은자메나에서 20킬로 떨어진 외곽 지역에 연락이 끊긴 채 18명의 한인들이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시우 한인 회장님은 자신은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며, 고립된 한인들이 사는 곳을 잘알고 있는 자신이 프랑스 군인들을 안내해야 한다며 목숨을 건 고집을 부려서 냉혹한 전쟁 와중에서도 프랑스 군인들의 마음을 울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올해 1 1일로 환갑을 맞으신 이시우 한인 회장님은 나이 오십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젊은 인상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한일은 아무 것도 없다며 교민지와의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하셨는데, 김주경 선교사님과 차드 교민들이 등을 떠밀어 겨우 가능했다고 한다.

 

회장님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피신이라고 하는데, 1990년에도 쿠데타로 인해 피신을 왔는데, 다행히 무혈 쿠데타여서 1주일만에 돌아갈수 있었다고 한다.

 

그당시에는 정부나 공관에서 아무런 조처가 없어 섭섭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는 곳마다 배려를 해주고, 특히 프랑스 도착시 조일환 대사님과 영사님, 대사관 직원들이 맞아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차드와 카메룬을 잇는 다리위의 피난민들, 이시우 한인 회장님

 

2 4, 여성과 아이들 10명은 미리 파리로 피신했고, 같은 날 고립된 채 있던 18명의 한인들도 3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프랑스 군기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적십자 차량을 만나 도움을 요청해 프랑스 베이스 캠프로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군의 도움을 받으며 2 6, 에어 프랑스 전세기편으로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할수 있었다.

 

많은 사상자를 낸 이번 차드 교전에서 교민들을 이처럼 무사히 전원 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정부의 긴급한 조처 덕분이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우리 정부는 차드 교전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 보다가 주불 한국대사관을 통해 차드에 군대가 주둔해 있는 프랑스 정부에 즉각적으로 구조 요청을 했고, 정확한 차드 교민 명단이 프랑스 군대에 주어져 한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안전하게 구출될 수 있었다.

 

이에 차드 교민들은 우리 정부, 프랑스 대사관, 나이지리아, 가봉 공관들, 프랑스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다행스런 것은 전쟁을 겪고 나온 어린 아이들이 밝은 웃음을 짓는 것과 차드 교민들 모두가 서로 무사한 것이 감사하고 있으며, 차드 국민들에게 닥친 비극에 가슴아파하고 있다고

 

전시중에 몸만 빠져 나온 차드 교민들을 돕기 위해 김주경 선교사님과 파리 기독교 교회 협회 성원용 목사님께서 많은 수고를 하고 계시는데, 이제는 파리에 있는 한인들의 따스한 마음을 보여줄 차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