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프랑스의 광우병 파동 이후 이렇게 포장육에 오리지날 프랑스산 소고기임을
강조하기 위해 항상 이런 로고가 부착되어 나온다.
현재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싸고
나라 안밖이 많이 시끄럽다.
요즘도 장을 볼때면, 정육 코너에서 소고기를 집는 순간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스스로 금지시켰던 것을 허용하는 야릇함이 손끝을 통해 와닿을때가 있다.
광우병이라면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 쉽게 통용되는 말로 "vache folle"로,
말 그대로 "미친 소"다.이"미친 소" 파동이 지금 만 13살이 된 큰딸이 태어나던 해에,
이곳 프랑스에서, 나 또한 걱정하며 신랄하게 겪었던 일이기에 그때를 한번 기억해 보았다.
큰딸은 1995년에 태어났다.
얼마전 기사에 보니 프랑스에서는 1991년에 광우병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딸이 태어나기 이전, 이곳에서 나와 남편은 광우병에 감염된 소고기를 먹었을수도 있었을 것 같다.
특히 함께 유학하고 있었던 친구 부부의 권유로 햄버거용 냉동 스테이크를 아주 좋아하며 자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쩌랴,,,모르고 먹은 소고기,,
1991년에 발견된 광우병이 1995년에 더욱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던 것 같다.
언론에서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니 이제 태어나 몇개월 안된 딸아이의 이유식으로 쇠고기를
주어도 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첫아이라 끔찍한 정성과 보호로 키우고 있는데, 건강과 성장에 직결되는 음식에 문제가 생긴것이다.
고민하다가 담당 소아과 의사에게 물었다.
아담한 키에 똘망해 보이던 그 여의사는, "하하"하고 웃더니만 "그건 정책일뿐이에요."하며 광우병을 묵살해버렸다.
"이제까지 먹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먹을거예요"라고 옆에서 고물거리고 있던 딸을 검진하고 나서는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그말은 아이에게 먹여도 된다는 뜻이었을테지,,
하지만 나는 그 소아과 의사를 믿지 않았다.
그이후 몇년 동안 우리집 식단과 아이의 음식에 일체 소고기는 출현하지 않았다.
이런 사태를 접했을때 사람들의 성향들이 드러나는 듯하다.
광우병에 예민하게 반응해 소고기를 먹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다며
"미친 소"의 위기속에 살고 있는 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소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건강에 별이상 없이 잘 살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그당시 귀동냥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광우병은 40년뒤에 나타난다는 유언비어 같은
이야기도 있었으니 모를일이다.
프랑스에서 광우병 파동이 한장이던 때에 태어난 큰딸의 초등학교 친구인
로이즈는 아예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고, 그이후 이곳에서는 스시 일식당들이 늘어났다.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소고기를 피해 프랑스인들은 생선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며,
물론 가금류의 소비도 많이 늘어났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유럽 국가들도 광우병의 진원지였던, 영국산 소고기 수입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었다.
거의 매일, 뉴스에서는 감염된 소들을 도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축산업자들의 한탄과 도살된 소들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서야 우리 가족들은 소고기를 먹을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이제는 먹어도 되겠지하는 안심이 들었던 때인것 같다.
포장육에 오리지날 프랑스산 소고기라는 표시로,
소와 프랑스 국기가 함께 어우러진 로고를 확인한 후에야 장바구니에 넣을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를 보면서,,,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먹거리에 대한 최선의 방침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함성을 들으며
지난날 내가 이곳 프랑스에서 겪었던 광우병 파동을 기억해 보았다.
지혜롭게 잘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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