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기로 세계가 동요되고 있다.
혹자는 집단적 광기의 발현과 현실도피의 마취효과를 우려하기도 하는데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전세계인이 함께 공감할수 있는 장인 월드컵을 즐기는 것을 방해받을수는 없는 일이다.
월드컵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 또한 클것이다.
지난 토요일 한국의 승리 소식은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도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파리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한인들은 젖은 손을 닦고 앞치마를 벗고는 티비 앞에 앉았고, 유학생들은 책장을 덮고 대형스크린이 설치되어있는 에펠탑앞으로 와서 한국팀을 응원했으며, 그리고 교민들, 상사주재원들, 외교관들은 각자 다른 삶을 살다가 그날은 모두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을 외쳤다. 파리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뿔뿔히 흩어져 살고 있는 한인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만큼은 우리는 하나였기에 참으로 가슴떨리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기고 지고를 떠나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세계인들이 함께 공감할수 있는 장이기에 월드컵은 대단한 세계 축제이다.
오늘 저녁 최강의 브라질과 베일에 싸인채 수준을 알수 없는 북한의 경기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티비를 켠 아이들은 북한 경기라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후반전 브라질이 한점을 얻고 곧 바로 두번째 골이 들어갔다고 한다. 어느정도 결과를 예상했던 경기였지만 마음이 내려앉는다.
그리고는 IMF로 파리 한인들이 무척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때 열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생각난다.
당시 한국과 프랑스 경기에서 한국이 선제골을 넣고는 프랑스팀에게 여러골을 내어주었다. 프랑스팀에게 한골 한골 빼앗길때마다 무너져 내린 느낌과 흡사했다. 너무 오랫동안 분단이 고착화 되어 지금은 한민족이었다는 것도 무색할 정도인데 브라질에게 골을 연이어 내어주니 힘이 빠진다. 약한 전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팀에게 가지는 막연한 동정심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아마 그들도 지난 토요일 한국의 선전에 많이 기뻐했으리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북한과 우리는 또한 하나였다. 현시대에 스포츠가 가져다 주는 결집력을 실감했다.
그리고 브라질에게 2점을 내어주던 북한이 골을 넣었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달려가 티비앞에 섰다. 기뻐하며 보고 있자니 가슴이 때끈거려온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한민족이지만 다른 나라가 되어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강적 브라질을 상대로 잘 싸운 북한의 선전에 기뻐하고 있자니 서글픔이 밀려든다. 그리고 티비 앞에 앉아 북한을 응원하기 위해 추임새를 넣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글픔은 더해진다.
북한, 핵실험을 강행하고 무지막지한 세습체제와 주민들을 굶주리게 한 상황을 비판하기에 앞서 분단은 한국 정치인들의 기득권 유지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편의 해악이 너무 강해 상대의 문제들은 묻혀버리는 꼴이다. 정치인들이 원하는 것은 통일이 아닌 분단 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 무조건 체제 유지의 안정된[?] 나라를 원하는 우매한 국민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두 한국이 그옛날처럼 하나가 되는 통일은 묘연한 문제가 아닐까싶다. 그래서 같은 민족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다른 나라 이름을 가지고 월드컵에서 각자 뛰고 있는데, 반쪽 한국 사람은 또 다른 반쪽 한국선수의 선전에 묘한 기쁨과 함께 서글픔이 밀려든 것이다. 그리고는 외국에서 태어난 딸에게 힘들게 분단을 설명해주어야만 했고, 올 봄 46명의 생떼같은 젊은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을 물어오는 아이에게 무조건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한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만 했었다. 아직도 미궁속을 헤매고 있는 천안함 사건의 정확한 원인은 설명해줄수 없었다.
아이는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 북한을 응원하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가슴이 아려왔던 저녁이었다. 같은 민족이지만 하나일수 없는, 너무나 가깝지만 먼 북한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파리의 한국아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국살이 설움, 한국-나이지리아 경기를 못본 이유 (0) | 2010.06.23 |
---|---|
프랑스에 살면서 한국이름만 고집하다 보니 (0) | 2010.06.22 |
한국 -그리스 경기, 에펠탑앞 한인들의 응원 (0) | 2010.06.13 |
프랑스에서 잔치날 술마시고 사고나면? (0) | 2010.06.10 |
학교에서 공부대신 '행복'을 논하는 프랑스 중3 (0) | 2010.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