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에 살면서 한국이름만 고집하다 보니

파리아줌마 2010. 6. 22. 07:45

사람이 태어나 어떤 이름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불리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와서 이름을 가지는 것은 처음으로 정체성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작명소가 있어 아이 이름도 전문인[?]에게 맡길 정도다.

요즘도 작명소에서 이름을 짓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예쁘고 부르기 쉬운 이름을 함께 상의해서 짓는게 가장 좋은 이름일 것 같다. 남자 아이의 경우는 집안의 돌림자를 무시할수는 없을 것이다. 아는 국제 결혼한 이는 딸둘에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친정아버지께서 아들에게만 한국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그런 이름의 중요성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이곳에서 한국인이면서 프랑스 이름을 쓰고 있는 이들을 보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당시 비록 외국에 살지만 한국 이름을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이는 한국인임을 잃지 않는 정신이라 생각해서 죽자사자 프랑스인들이 발음하기 힘든 나의 이름, 언영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남편의 성을 딴 <마담 정>이란 호칭은 공식적인 관계에서나 불리지, 좀더 친근한 관계에서는 프랑스인들은 이름을 부르기를 원했다. 언영이라는 이름은 영어식 표기로는 Eon -Yong으로 철자 그대로 프랑스인들이 발음하려면,  <에온 용그>가 된다. 발음이야 어떻든 나의 이름을 고집했다. 양파를 프랑스어로 oignon인데, 발음은 <오뇽>이 된다. 묘하게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도 나는 프랑스인들에게 나를 소개할때는 양파랑 헷갈리지 말라고까지 하면서 부모님이 정해주신 이름을 고집했다.

 

뭐, 내 선에서는 그럭저럭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태어난 두딸의 한국이름은 학교 선생님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매끄러운 발음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큰 딸이 15살이 된 지금에서야 예전 가졌던, 이른바 나의 민족성은 고지식한 사상의 발로였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후회하고 있다. 큰 아이 이름은 <유진>으로, 아이 생년월일을 가지고 친정엄마가 작명소에 가서 지어온 <좋다>는 이름 몇개중에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형제 의식을 고취시켜주기 위해서 돌림자를 정해 <서진>으로 아이 아빠가 정했다.

 

유진이 태어났을때 출생 신고를 하려고 하니 아이의 첫번째 이름부터 두번째, 세번째 이름까지 기입하라고 한다.

유진을 첫번째로 정하고 나서 두번째 이름의 칸을 메꾸기 위해 써 넣은게 <로렌>이었다.

하지만 자란 딸은 할머니 이름같다며 사용치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의 출생 신고시에는 첫번째 이름만 기입해도 무사통과였기에 프랑스 이름은 아예없다.

 

집에서만 있던 어린시절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으나 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한국이름을 고집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학년초마다 선생님이 <유진>의 이름을 부르려면 갖은 애를 써야한다. 특히 아이 이름을 부르는 일이니 틀리게 불러 아이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있는듯했다. 그래서 겨우 발음하는게 yu-jin<유씬> 혹은 <유쟝>이다. 때로는 <진>의 J가 인쇄체가 아니면 S로 읽히기도 하거니와 "in"을 <앙, 양>발음하는 프랑스어의 특징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서진>은 seo-jin, 프랑스 발음으로 <세오 진>이 된다. 이렇게 구부러진 발음으로 불리느니 차라리 그흔한 이름인 <이사벨>이나 <까뜨린>이나 <폴린>이 낫지 싶다. 한국이름이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몸살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같은 상황을 잘알고 한국이름이면서 프랑스 발음으로도 어렵지 않은 이름을 택한 지혜로운 부모도 있다. 

예전에 잘알고 지내던 한국 가정의 남매 이름을 보자면, 여자아이는 <세린>, 남자아이는 <호빈>이었다.

프랑스식 표기도, celine<셀린느>, robin<호뱅>으로 발음이 비슷해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도 불리우는데 어렵지않았다. 내 생각에는 일단 프랑스 이름을 한국발음으로 매끄럽게 변형하여 불렀던 이름들이었던 것 같다.

 

다른 예를 들자면 <아인>이라는 이름은 한국인이나 프랑스인에게 발음이 같다.

프랑스인은 "ㅎ" 발음이 안된다. 불어의 "H"는 무음이다. <하영>은 <아영>으로 <혜란>은 <예란>으로 발음한다. 그러기에 <아인>은 한국과 프랑스를 넘나들수 있는 좋은 이름이다.

 

특히 한국남자들 이름에 많이 들어가 있는 "권", "건". "철"자들은 프랑스인들에게 곤혹을 당할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큰아이 중2때, 반에 한국남학생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 앞자에 이<건>자가 들어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호명할때 딸아이는 본인 이름은 많이 양호한 편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건>자 들어간 남학생의 이름을 부를때는 압권이었다고 하니 프랑스에 살고 아이교육시키면서 한국이름만을 고집하는 것은 한번즈음은 생각해볼 일이다.   

 

예전에 경상도 출신의 아주 한국적인 이름을 가진 두 남학생이 어학원을 다닐때에 프랑스 선생님이 한국이름 발음하는게 힘든 것을 보고는 친절하게도 쉬운 이름을 정해서 불리기를 원했다. 한명은 <톰>, 또다른 한명은 <존>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이에 선생님은 수업중에 <톰! 이야기해 보세요>하고 시켰는데 <톰>이라 불리기를 원했던 당사자는 <톰>이 누군가 싶어 두리번거렸다는 우스운 일화가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때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파악해서 첫번째 이름은 한국이름으로 정해서 집이나 한국인들 사이에서 불리는 것으로 하고, 두번째 이름은 아주 심사숙고해서 어여쁜 프랑스 이름을 지어서 학교나, 프랑스 사회에서 불리게 했었어야 했다. 아니면 양국을 드나들수 있는 쌈빡한[?] 이름으로 짓던지.

지금에 와서 쌩뚱맞게 프랑스 이름, "0000로 불러주세요" 하기도 뭣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