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음악학교에서 본 어떤 프랑스 할머니의 열정

파리아줌마 2011. 6. 21. 08:45

6월이라 요즘 프랑스 학교들은 학년 막바지에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쯤 되면 특히 음악학교에서는 한해를 마감하는 발표회들이

많아 더욱 부산해집니다.

 

오늘 음악학교에서 작은 아이의 선생님이 지도하는 학생들의

피아노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음악교육에 대해 이미

소개한적이 있지만, 프랑스는 각지역마다에서 시청소속의

음악학교[Conservatoire]가 있습니다.

시청관할이기에 저렴합니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제가 살고 있는 파리남쪽 외곽지역인,

앙토니[ANTONY]의 음악학교에서는 모든 악기의 개인 렛슨, 

그리고 실내악, 현,관악 오케스트라, 연극, 발레, 모던 재즈까지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통 악기를 배우기도 하더라고요.

 

10년전 큰아이를 이 음악학교에 등록시키고 나서 인상적이었던것들중의

하나가 몇달을 했건, 몇년을 했건간에 적어도 일년에 두번은 관중들 앞에서

연주하게 합니다. 물론 관중이래봤자, 학부형과 친구, 친지들입니다.

하지만 여러사람앞에 서게 하는 훈련을 꾸준히 시키는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교사 입장에서는 지도하는 학생들의 발표회를 갖는게 뿌듯한 일이기도 할것입니다.

 

프랑스는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서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까다로운 조건을 가집니다. 음악이론과 합창을 의무적으로 1년을 하고 나서야 피아노를 신청할수 있습니다. 음악이론으로 음계를 배우고, 합창으로 음감을 익혀서인지 첫수업부터 양손 함께 진도 나갑니다.

 

아이에게는 오늘 두번째 피아노 발표회였습니다. 1년차부터 10여년차까지 41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표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준 높은 쇼팽과 베토벤, 모짜르트 곡들을 연주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피아노 콘서트온것 같았습니다. 나머지 두명의 학생을 남겨두고 피아노 선생님은 어른 학생이라며, 쉬운 발걸음은 아니었다면서 자리를 끝까지 지켜주기를 당부합니다. 피아노 선생님은 일본인입니다. 2시간 반동안 진행되는 발표회라 자기 아이 차례가 끝나고 나면 으례히 자리를 뜨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마지막 연주자는 할머니 학생

 

먼저 3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꽤 어려운 곡을 실수하나 없이 소화해냅니다. 도저히 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솜씨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의 학생이 나오는데 잠시 눈을 의심했습니다. 방금 피아노 연주한 30대 여성과 함께 있길래 딸의 피아노 발표회를 보러온 엄마인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연주할 학생이었던것입니다.

 

옅게 주황빛이 감도는 붉은 투피스를 단아하게 차려입고, 안경을 쓰고 악보를 손에 들고 나온 마지막 학생은 할머니였습니다. 오늘 기나긴 피아노 발표회의 마지막을 신선한 충격으로 장식하게 해준 늦깍이 학생이었습니다.

 

 

 

첫곡이 헨델의 <사라반데>였습니다. 보통솜씨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틀리지는 않았는데, 중간에 멈칫멈칫합니다. 그리고는 저 할머니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갖가지 상상의 나래가 연주를 들으며 펼쳐졌습니다. <아마 젊은 시절 피아노를 무척 좋아하셨나봐, 그런데 그때는 왜 피아노를 배우지 못했을까?> <도대체 저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거지?>, <역시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것을 할때 아름다운거야> 등등,,,

 

정말 피아노가 좋아 연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곡은 차이코브스키의 <6월>이었습니다.

<사라반데>와 비슷한 멈칫이 다소 있었지만 멋졌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힘겨웠는지, 안경을 벗고는 연신 가슴에 손을 얹습니다. 많이 떨었나 봅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연주회장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궁금했던것은 그분 연세였습니다. 그냥 갈까 하다가 저질러보자는 심정으로 기다렸습니다.

할머니가 나오시길래, 연주 잘들었다고 인사를 하니 손을 내저으며 너무 실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첫눈에 아주 따뜻한 분인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다고 하니 <이 나이에 대중앞에서 연주를 했으니 그럴만하지, 피아노 연주는 좋아해도 사람들앞에서 연주하는것은 너무 아니야. 어쩔수 없이 선생 기뻐해 주려고 한거야 >라고 하십니다. 아마 피아노 선생님의 부탁이 있었나 봅니다. 

 

 

 피아노 10년 경력의 76세 할머니

 

피아노 배운지 10년이 된 아니 제르다니안[Annie GERDANIAN] 할머니의 연세는 76세였습니다. 그러니깐 66세부터 시작하신거지요. 어린시절 음계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퇴직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였답니다. 의사[일반의]로 70세까지 일하고 퇴직했다고 합니다. 아주 건강해 보였습니다.

 

남편분은 겁이 나서 함께 안왔다고 합니다. 무엇이 겁이 났냐고 물으니, <아내가 연주하다 실수할까봐서요> 라고 답하고는 둘이서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남편분은 아내가 피아노 연주하는것을 응원하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럼 자녀분들하고 함께 안왔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다 자라 자기 일하기 바쁘다고 합니다. 아주 편안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어찌나 유쾌하게 이야기를 하시는지, 저도 함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연습한다고 합니다. 젊은시절에는 아이들 키우고 일하느라 시간이 없어 피아노 못배웠다가 퇴직이 다가올쯤에 배우기 시작한것입니다. 음악학교앞에 서서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할머니는 아시아를 좋게 보고 있다고 하면서, 예의 바른 존중의 문화를 높이 평가한다고 합니다. 본인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아르메니아인이랍니다. 지난주 파리에서 있었던 K 팝 콘서트 소식을 전할까 하다가 오늘은 헨델과 차이코브스키에 머무는게 낫겠다 싶어 말을 삼켜버렸습니다. 말이 계속이어지자 할머니는 <나는 너무 말이 많다>면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냐며 빨리 가보라고 하면서 당신 차가 있는쪽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프랑스 할머니들은 퇴직이후 더 보람된 생활을 누립니다. 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젊은시절에 못했던 취미활동을 하는 시기지요. 그렇다고 손주들 나몰라라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만큼 돌보아줍니다. 하지만 삶의 중심이 당신들에게 있지요. 그리고 자녀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려 합니다.

 

2008년 프랑스 국가경제통계학회의 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의 행복지수는 40세보다 65세에서 70세 사이가 더높다고 합니다. 오늘 음악학교에서 만난 ANNIE 할머니를 보며 인생은 70부터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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