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너무 아까웠던 김치,,,

파리아줌마 2008. 8. 8. 23:45

2007년 여름 바캉스에서,,뒷쪽 소나무 숲이 장관이었다..

 

 

얼마전 휴가를 다녀와서 김치를 담그는데, 옆에서 고춧가루를 부어주면서 엄마를 돕기도 하고,

막담은 김치 한가닥을 맛보기를 즐기는 큰딸은 "엄마, 나는 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작년 바캉스 가서야 알았다니까",,,

처음에는 그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작년 바캉스에서의 김치소동으로

딸과 나는 깔깔,, 거리며 잠시 웃었다.

 

2007년, 작년, 여름 바캉스는 프랑스 부르타뉴 지방, 로리앙으로 일단 갔다.

예전 파리에 계실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한국분이 유스호스텔을 경영하고 계신다고 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하루 숙박 비용이 아주 싸서 약간의 주저함도 없이 된장, 고추장, 고추가루, 김치등 온갖 한국 양념들과

조그마한 이불 보따리까지 챙겨 300킬로달려가보니 아이들이랑 함께 몇일을 지내기에는 좀 힘든 환경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 한국분에게 사과와 함께 양해를 구하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런데 그성수기에 예약도 없이 아이들이랑 어디서 몇일을 지낼수 있을지는 거의 모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여러 꽉찬 호텔들을 거치면서 물어 물어 vanne라는 도시의 호텔 방이 하나 비어 바캉스 첫날 밤을 보낼수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가지고 온 된장과 김치가 걱정이 되었다. 냉장고에 넣어 두지도 않아 부글 부글 거리고 있

지는 않을지 싶어 잠시 그들의 상황을 뚜껑 열어 점검해 보니 별일 없었다.

 

그 다음날부터가 문제라 남편과 나는 그 전해에 바캉스를 보냈던 프랑스 서해안 부르타뉴 지방,

라볼에 있는 콘도들 리스트를 호텔에 문의해서 받았고, 가까스로 4인실 콘도 하나를 구할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가 아침 11시쯤인데,, 적어도 12시까지는 도착해야된다고 한다..

 

빨리 달려야만 12시까지 도착할수 있는 급한 상황이었다.

남편은 부지런히 차를 달렸고,, 그 도시를 빠져 나가는 와중에 커브 길에서 약간 급하게 돌았던 것 같은데,,

뒤에서 뭐가 우당탕하며 떨어진다. 뭐 별것 아니겠지 싶어서 돌아보니..

세상에,, 아까 상황을 점검하다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튀어나온 김치들이 차 뒤쪽 시트와 문쪽에서 춤을 추듯

난무하고 있었다. 이를 어째....

잠시도 차를 세울수도 없는 급박한 상황하에 수습에 나섰다.

 

달리는 차안에서 별도의 도구도 없이 손과 옆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로 치우고 있었다.

김치 없으면 밥 넘기기가 좀 힘든, 지극히 한국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그런 피[?] 같은 김치가 쏟아졌던 것이다.

 

아까운 마음반,, 냄새며, 비록 낡은 차이지만 김치 국물로 더럽혀진 것에 대한 불쾌감 반으로 마구 달리는 차안에서

멀미가 날 정도로 치우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운 마음이 더 컸었던지 몇가닥은 주어 담아 어떻게 수습해서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그걸 어떻게 먹냐고 짜증을 내며 다 버리란다.

 

그래 다 버려, 버리면 치우기도 간단하지,, 뭐,, 아까운 마음에 궁시렁거리며 치우고 있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다른 것도 아닌 김치와 김치 국물을 닦아내는 것은 좀, 징~~했다.

 

어쨌든 우리는 12시전까지 라볼에 도착해 숙소의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쏟아진 김치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와 12시 전까지 도착하느라 정신 없이 차를 달렸던 남편은

숙소에서 편안해지니 김치에 대한 그리움이 일기 시작했다.

뚜껑 잘못 덮었던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커브길 세게 돌았던 것까지 치사하리 만큼 남편과 나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약간 서로에 대한 책임 추궁까지 합세해 가면서..

 

짜증내며 버리라던 남편은 나보다 좀더 심했다.

모두 버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겠냐며 뒷북을 친다.

아마 하루, 이틀 정도는 우습게도, 준비해왔다 사고로 없어진 김치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이 모든 대화들과 모습을 바라본 큰딸은 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되었었나 보다.

바닷가라  싱싱한 해물들 사다가 삶아 먹으며 김치의 아쉬움을 달래며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왔다.

 

외국에 살면서 시간이 더할수록 한국 음식들에 대한 애착은 더 해지는 듯하다.

아마 한국음식의 대표적인 상징인 김치는 오랜 외국 생활에 길들여진 남편과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김치만은 아닌듯하다.

김치를 먹으며 고향을 느끼고, 두고 온 내나라를 느끼고 싶어하는 향수의 좋은 매개체는 아닌지? 후훗,,,

 

지금도 김치는 귀하고, 소중한 우리들의 먹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