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 방송인의 만우절 거짓말이 현실로

파리아줌마 2010. 4. 1. 18:54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다.

이곳, 프랑스도 만우절로, poisson d'avril[직역하자면 4월의 물고기]이라고 한다.

어제부터 둘째는 오늘이 poisson d'avril이라고 정신없이 살고 있는 엄마에게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오늘 같은 만우절에 프랑스 학교에서는 종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선생님이나 같은 반 친구들 등에

슬쩍 붙여놓고는 좋다며 깔깔댄다.

 

오늘 아침 학교 가는 둘째 딸에게 “오늘 속지마”라고 하니, “아니 속아야지 그래야 재미있지”라고 한다.

“그래! 그렇구나” 에구, 엄마보다 여유로운 딸이다.ㅎㅎ

얼마나 거짓말이 하고 싶었으면 거짓말하는 날을 따로 공식적으로 정해놓았을까?

이건 지극히 나만의 생각이고, 살면서 잠시 웃는 여유를 가져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만우절 거짓말이 도를 넘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또 본인이 소망하는 것을 누군가가 알고 거짓말을 해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진실을 알고나면 참 허탈할 것 같다. 거짓말이 허용되는 만우절이니 어쩔수 없겠지만 간절했을수록

더 힘이 빠질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만우절 거짓말이 현실이 되는 일이 프랑스에서 있었다.

 

2006년 1월, 당시 총리였던 도미니크 드 빌팽은 청년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기회균등법 8조,

최초고용계약법[CPE : Contra Première Embauche] 도입을 시도했다.

이 법안은 26세 이하의 직원을 고용해서는 수습 기간 2년 동안은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할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프랑스 학생들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고용된 뒤, 고용인에 의해 강제 해고를 당할수 있다는 법이 통과된다는 데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 고용법의 전면철회를 요구하며 책가방을 내팽개치고는 연일 시위대를 꾸렸고, 프랑스 전역의 대학교, 고등학교들이 폐쇄되고 있었다.

 

 그당시 소르본 광장의 까페들은 시위대들로 인해 쑥대밭이 되어있었고, 프랑스 통신사 사이트에 자주 올라왔던 글귀는 총리와 학생들 사이의 “bras de fer"[팔씨름]이었다.

 

빌팽 총리는 강경했고 이에 맞서는 학생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총리와 학생들의 대결이 계속되고 프랑스 노조들과 야당 인사들까지 시위에 합류했다.

이후 전면 파업이 벌어져 2006년 4월의 첫째주 화요일은 파업의 “검은 화요일”이 되어 프랑스 국가기능이 거의 마비되었다.

 

그당시 파리 거리를 다니다 보면 차량 통행을 막고 시위하는 이들을 쉽게 볼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너무나 단호하고 강경했다.

 

그상황을 지켜보며 나는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고,

이곳에서 외국인이고 나이가 많은 나와는 그리 관계없는 사실이기에 팔짱끼고 어떻게 되나 호기심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벌써 딸이 중학교 마지막 학년이니 나와는 그리 상관없는 일이 아니었음에 화들짝 놀라고 있다. 흐~~

 

프랑스 전체가 동요하고 있을 그즈음, TV를 보고 있었다.

2번 채널이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출연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토크 쇼로,

진행자, 띠에리 아르디송의 이름을 딴 <아르디송 쑈>였다.

 

한창 진행하다 느닷없이 진행자인 아르디송씨가 “네? 뭐라고요? 빌팽 총리가 최초고용계약법를 철회했다고요? 한다.

'여러분 CPE가 철회되었다네요” 라고..

 

TV를 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방송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한 몇분 정도 그 순간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늦은 밤에 성명서를 발표했나" 싶은 생각에 의아스러웠다.

그날은 3월 31일에서 4월 1일로 넘어가는 밤시간이었는데,

사회자는 만우절 0시를 기해 거짓말한 것.그는 이내 "만우절 거짓말"이라고 고백했다.

 

“그럼, 그렇지 그게 어떻게 철회가 되나? 싶었다. 사회자가 만우절 농담도 아주 이슈적인 것으로 한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정치가 어떤건지 보고 들어왔던 나에게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해인 2007년에 있을 대권에 빌팽 총리는 강력한 후보로 지목되고 있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일뒤 방송인, 띠에리 아르디송씨의 만우절 거짓말이 이루어졌다.

 

빌팽 총리는 청년실업 문제에 해결책을 원했던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프랑스가 분열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는 CPE를 철회했다.

 

그일로 나는 프랑스 사회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힘 있는 권력에 대항해 민중이 승리하는 과정과 결과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또한 3개월간의 시위와 학교 폐쇄로 학업을 멀리했던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교사와 힘을 합쳐 보충수업에 충실한 결과, 2006년 바깔로레아[대학 입학 자격시험] 합격률은 81.9%로 그당시로는 사상 최고의 합격률을 기록했다.

 

물론 빌팽 총리는 2007년 대권에서는 후보로도 오르지 못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전 총리

 

이런 이유로 4년전 프랑스 방송인 띠리 아르디송씨의 현실화된 거짓말은 아직도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런 거짓말은 얼마든지 많았으면 좋겠다 싶은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