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징글징글한 프랑스 교통파업

파리아줌마 2010. 4. 19. 17:35

3월말즈음이었던 것 같다. 화요일 아침, 예외적으로 10시 30분에 첫수업을 시작하는 중학생 딸은 10시에 기차역으로 향했다.

조금있다 딸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 오늘 그레브[파업]래. 기차 잘 안다녀!

 

"아니, 뭐? 어떡하지? 

"딸아! 그럼 얼른 기차역 건너편에 서는 팔라당[paladin] 버스 시간표 좀 봐봐"

 

팔라당 버스는 프랑스 국영철도에서 운행하는 것이 아닌 파리 외곽지역인 일 드 프랑스 지역중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7개 도시들을 합한 지역단체에서 운행하는 것이라 파업의 소용돌이를 피해갈수 있다.

그런데 보통 1시간에 한대씩 오기에 시간이 맞지 않으면 낭패다.

조금있다 딸은 "엄마 10시 10분에 있어"라고 한다.

 

"다행이다. 그것 타고 가, 알았지?

 

그날 그렇게 딸은 무사히 학교에 도착해 수업에 참석할수 있었다.

그리고는 "또 파업이구나 이번에는 또 뭔일이래? 불편을 감수해야되는 입장이라 짜증부터 난다.

 

보통 파업시에는 48시간 전에 예고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러면 시민들은 나름 알아서 대처할수 있는데, 파업이 예정되어있을 경우 딸은 함께 기차타고 다니는 친구를 통해

파업 상황을 알아 나에게 전해주면 아빠에게 부탁하든지 아님 동네 아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학교 등교하는데는 지장이 없게끔 한다. 그런데 이날은 딸도 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팔라당 버스 시간이 맞아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다.  

 

이런 일은 일년에 적어도 5,6번은 겪는것 같다.

아이가 걸어다녔던 초등학교때는 파업의 불편함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기차로 두 정거장 가야하기에 파업이 있는 날은 대책 세우기에 급급하다.

고속 전철로 두정거장되는 거리라 버스로는 여섯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이다.

 

일년중 수시로 있는 교통 파업이다. 때로는 세게 때로는 약하게 있다보니 프랑스인들 뿐만 아니라 20년을 이곳에 살고 있는 외국인인 나도 으례 치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아이의 등교에 영향이 미치게 되니 예민해질때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파업은 2007년 아이가 중학교 올라간 해 가을,

신자유주의를 공약했던 사르코지 대통령의 연금 개혁안에 공무원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대대적인 파업이 있었다.

 

무려 2주동안 기차역문에 셔터를 내리고 있었다.

학교는 가야하고, 일하는 아빠가 데려다주는 것은 한계가 있고, 동네 아는 엄마들 모두 동원해 서로 짜맞추어보다,

어느날은 집에 돌아올 방법이 없어 아이의 같은 반에 있는 한국남자아이의 부모에게 "내 아이 좀 데려다 주십사"하는

외람된 부탁을 한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아이가 자라서 파업이 있는 날은 친구들과 수다떨며 30, 40분 소요되는 거리를 걸어오지만

그때만해도 막 중학생이 된 어린 딸이 걱정이 되어 한국인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에게 어려운 부탁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당시 어쩌다 한대씩 지나가는 버스를 보면 프랑스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통조림속의 꽁치들"처럼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제발 하루빨리 파업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어쩌면 2주동안 역셔터까지 내려질수 있을까?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었고, 느닷없이 우리나라라면 큰일날 일이지하며 불편함에 이상스런 애국심[?]까지 발동되었다.  

그로부터 교통 파업이 예정되어있는 날은 수시로 파리지역 교통 사이트를 드나들며 상황을 살피고, 대책을 세우야만 되었다.

아이 학교 보내야 하는 한국 아줌마인 나만 동당동당거리고 있지 정작 프랑스 자국민들의 모습은 초연하다.

 

                                         

 

파업, 데모는 축제 분위기.

 

파업이 있는 날 뉴스를 보면 시민들의 반응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파리 북역, 혹은 생 라자르역 등 프랑스 지방으로 연결하는 기차역에서 여행가방을 든 시민들은 기자가 내민

마이크앞에서 대부분 불평,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그리고 그말속에는"어쩌랴"하는

뉘앙스가 짙게 풍겨져 있다. 

 

지방에 있는 그리운 가족을 못만나게 되고, 사랑하는 연인을 못보게 되고, 중요한 사업상의 약속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은 "어쩔수 없지요"다. 나는 그런 초연한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보고 더 속터졌던 적도 있었던

다혈질적인 한국아줌마이다.

 

그리고 교통파업이 장기화될때는 프랑스 많은 회사들이 하루정도는 공식적인 휴가를 한다.

그날은 대학에서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아 아빠와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한국분, 그리고 대학교수인

그녀의 프랑스인 남편은 간편한 트레이닝 복장으로 즐겁게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짜증스런 교통파업의 와중에 만난 싱그러운 풍경이었다.^^

 

파업이 있는 날은 항상 파리 거리에서 시위를 하게 된다.

프랑스의 시위가 항상 비폭력적이지만은 않다.

2006년 최초고용계약법 철회를 외친 학생들의 시위는 아주 폭력적이었지만 공무원들의 임금인상과 개혁안 반대가 주제일 경우는 평화적인 행진이다.

보통 오후 2시 바스티유에서 리퍼블릭 거리까지 시위가 예정되어있다는 정보가 교통 사이트에도 나오게 된다.

이런 날은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회사 안가고 노동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 표정이다.

휴일을 보내는 근로자의  미소짓는 얼굴을 하고서는 전단지를 나누어 준다.

단호하고 비장한 모습은 찾아볼수 없고 신나게 축제에서 즐기는 모습이다. 

그리고 곤봉을 차고 경찰복을 근엄하게 입고 시위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경찰들은 시위 해산을 위해서가 아닌

그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있다.

 

교육 개혁과 교사들의 일자리 삭감에 대항해 교사들의 파업이 몇번 있었다.

그런날은 파업에 참석하는 교사는 수업을 하지 않고, 동참하지 않는 교사는 수업을 한다.

파업이 있기 몇일 전 가정통신란에 수업 여부에 대한 전달이 온다.

같은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반은 수업이 있고 어떤 선생님반은 수업이 없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 눈치 볼것도 없이 선생님들은 본인 소신대로 파업을 하고 말고 하는게 프랑스 초등학교 교사들이다.

 

파업의 형태도 다양하다.

언젠가는 트럭 운전자들의 달팽이식 시위가 있었다,

유류가격 인상으로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세금 혜택을 못받는다는 것에 불만인 트럭 운전자들이

각자 트럭을 끌고나와 프랑스 지방 도로를 달팽이처럼 느리게 운전해서는 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Bouche-du-Rhone지방의 7번 고속도로에는 100여대의 트럭으로 이어진 행렬은 장례 행렬처럼 꾸며져있었고,

앞쪽에는 관에 <가졸린 가격 폭등과 고속 도로비 인상>으로 “절망”이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었다.

그날은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는 날, 운전자들은 시험에 지장이 없게끔 시험이 시작되는 9시부터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돌발상황이 오면 격언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pas de panique!"[당황하지 말 것]

광고 문구로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똘레랑스[관용]와 빠 드 빠니끄[pas de panique], 프랑스인들의 삶의 모토이다.

이해하기 힘든 상대방의 모습에서는 똘레랑스를 실천해보려고 하고, 교통 파업의 돌발 상황에서는 빠 드 빠니끄를 활용해야 될 것이다. 불편함으로 징글징글하기만 했던 프랑스의 교통 파업, 지금부터라도 빠 드 빠니끄로 대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