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등교 대신 출근하는 프랑스 중3들

파리아줌마 2010. 4. 22. 10:11

부활절 방학을 일주일 앞둔 지난주[4월 12일] 월요일, 학교 가는날 보다 30분 늦게 딸을 깨웠다. 보통 몇번은 깨워야 겨우 일어나는 딸인데 그날 아침은 깨우자마자 발딱 일어난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내고 무거운 책가방 대신 가벼운 가방을 어깨에 두르고 아이는 출근[?]했다.

 

키도, 덩치도 성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듯한 15살짜리 딸의 출근을 보며 은근히 뿌듯하기도 했지만 “잘해야 되는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되는데”하는 노파심에 아이를 붙들고 마음가짐과 태도를 당부했다. 그날 딸은 학교 과정의 한부분으로 일주일 동안 사회실습을 나가는 첫날이었다.

 

2005년부터 중3 학생들에게 사회실습은 의무화

프랑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3학생들의 사회실습은 있어왔지만 2005년부터 의무화되었다. 2005년 8월 24일에 개정된 중학교 학생들의 성공을 위한 지원과 도움에 관련된 교육법 8조에 따른 것이다. 주된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외 바깥 세상, 즉 직업 현장으로 문을 열어주면서 미래의 직업을 정하는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기한은 5일이고 시기는 학교에서 정한다. 프랑스 학교는 두달마다 2주간 방학이 있는데 보통 방학하기 일주일전으로 한다.

고입시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3학년때가 가장 적합한 이유는 고등학교 진로때문이다. 사회 실습을 통해 본인이 흥미있어하는 분야를 접해보고, 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지는 고등학교 과정을 정하는데에 도움될수 있게하는 것이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2학년부터 L.<문학> ES<사회 경제>. S<과학>으로 반이 나뉘게 된다. 2년뒤의 일이지만 중학교 3학년인 올해부터 딸의 학교에서는 학생들, 학부형들과 따로 회의를 가지고 진학 방향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게 했다.

 

                                            

                                               유치원에서 실습을 마친 마지막날에

 

어디서 할것인가?

지난해 9월, 중3이 되자마자 학생과 부모의 관심거리이자 고민거리는 바로 실습[stage]이었다. 문제는 어디서 해야할지였다. 이는 학과중 기술과목에서 다루어진다. 기술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아이가 연수할 곳을 정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본인이 흥미있어하는 분야를 알고 어떤 방법을 통해 실습할 곳을 찾을지가 문서화되어 있다. 

 

중3학생들의 실습은 실질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는 관찰[observation]이다. 하지만 실습 협약서 2조에 보면 <회사와 조직들은 그들의 업무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가능한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학년 초, 교사와 학부형 회의에서 부모들은 기술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이야기했다. 선생님에 의하면 학생들이 약국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어떤 학생은 방송국에서 하고 싶어 편지를 보냈는데 처음에는 거부당했다고 한다.

이에 질세라 학생은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고 또 보낸 결과 방송국에서 받아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의 당부는 방송국에서 그아이가 무슨 일을 할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분야에서 실습을 하든 꼭 아이의 미래 직업이 되는 것은 아니니 거창한 회사를 찾기보다는 아이가 무언가 활동할수 있는 꽃집이나, 빵집을 택해보라고 권한다. 빵집이라면 적어도 밀가루 반죽 정도는 만져볼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에 대한 소망이 있는 엄마이다 보니 처음에는 대사관이나 이곳에 있는 굴지의 한국회사들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15살 아직은 어린나이에 오고가는 길도 만만치 않고 보다 실속있는 곳을 아이와 상의해 찾은게 집근처 우체국이었다.

지만 우체국에서는 실습생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을 정해야만 되었다.

4월 실습이면 12월 성탄절 방학전까지 회사 도장이 들어간 실습 협약서를 학교에 제출해야만 되었다.

아쉬워 당장 든 생각은 남편의 사무실이었다. 쉽고 편한 실습은 될수 있겠지만 홈그라운드안에서 아이가 무엇을 배울수 있을까해서 다시 생각해본 곳이 둘째아이가 다녔던 유치원.

유치원이라면 배우기도 할뿐더러 무언가 조그마한 일이라도 할수 있을것 같았다. 둘째 아이의 유치원 1학년때 담임이자, 원장인 마리 니콜에게 전화해서 부탁을 하니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딸의 친구들 경우를 보자면, 친한 친구인 끌레르는 반려동물 미용실, 라미는 비데오게임가게, 뱅상은 서점, 오렐리앵은 병원, 아비는 식당 등 아주 다양하고 폭넓다.

 

편지는 친필 작성, 그리고 중3의 이력서?

어디서 할것인지 정해지면, 그 분야를 지원하게된 동기와 본인을 받아줄수 있는지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작성하고, 이력서를 쓰게 되는데 편지와 이력서를 잘 작성했는지에 따라 점수가 매겨져 기술과목 평가에 지대한[?]영향을 미치게 된다. 편지는 필히 친필로 써야된다. 왜냐하면 필체와 작성한 것을 보고 회사에서 학생을 파악할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생님의 채점이 거친 편지와 이력서는 실습하는 곳으로 보내진다.

 

중3의 이력서라, 무엇을 적는지 의문스러워져서 보니, 학력으로는 학교에서 옵션으로 배우고 있는 라틴어부터 시작해 영어, 한국어까지 이력서의 공간을 차지했고, 학교에서 교통법규교육 받은 증서까지 추가되었다.

그리고 활동분야에서는 음악학교에서 하는 바이올린 수업, 오케스트라, 댄스 그리고 중1때 학교에서 영국 여행갔다온 것, 취미란에는 독서로 만화까지 기입해넣어 놓았다.

 

이력서는 딸아이 임의로한 것이 아니라 기술 선생님이 견본을 제시해주고 그것에 맞추어 작성한 것이다. 그 견본에는 취미로 “친구들과 외출하기”까지 있어 웃음을 머금었다. 있는것 없는것 모두다 끄집어 내어 짜맞춘 이력서이지만 칸에 맞게 깔끔하게 작성한 것 보니 아주 그럴듯했다.

                                                           

                                                           딸의 이력서

 

과연 이런 실습이 필요한가? 프랑스 엄마들과 학생들의 의견

아이들의 교육을 허심탄회하게 서로 이야기하는 프랑스 인터넷 광장에 어떤 엄마가 이게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직 어린 중3생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수 있는가? 였다.

이에 대한 어떤 이의 답글을 보면, <중학생 3학년때 일주일간 사회실습을 했는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학교를 벗어나 노동 현장에 참여하는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일은 나에게 자율성을 심어주게 된 계기가 되었던게 실습할 분야를 찾는것은 일자리를 찾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실습한 분야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어떤 경우를 보면, 그녀가 실습할 당시에 많은 여학생들이 미용실에서 했다고 한다. 그중 어떤 여학생은 미용사가 되고 싶었는데 건강 문제 때문에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미용사가 될수 없었고, 어떤 여학생은 그다음해 바로 미용사가 되었다고 한다.

 

어떤 엄마의 의견을 보면, 그녀의 아들은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수영장에서 했다고 한다.

그리고 17세가된 지금 아들은 수영 코치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하니, 중3의 사회 실습 비중을 간과할수는 없는듯하다. 그엄마의 또다른 의견으로는 계급체계가 있는 회사는 피하는게 좋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계급사회를 느낀다면 쉽게 좌절해버릴 위험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평소 제과점의 일이 궁금했던 클레망스는 케잌 만드는 방법을 알수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커뮤니케이션 회사에서 실습한 멜로디는 학교 동급생들과 회사 동료의 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마틸드의 경우를 보면 80명의 소를 기르는 사육장에서 가축을 기르고, 젖짜는 것에 참여했으며 일의 양상을 알수 있었다.

                                           

                                          

                                          실습을 마친뒤 원장 선생님 마리 니콜과 함께

 

첫날 딸은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고 했다. 프랑스의 유치원은 3년 과정이다.

원장 선생님이 맡고 있는 3, 4살의 가장 어린아이들반에 있었다고 한다.

이력서에 바이올린 연주가 쓰여져 있었기에 둘째날 딸은 원장 선생님의 제안으로 아이들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해주었다.

 

그리고 원장 선생님을 인터뷰해야되는 숙제가 있었다. 내용은 "이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왜 이런 직업을 택하게 되었냐" "어느정도의 학력을 가져야되는냐" 등이었다. 딸은 너무 개인적인 질문들이라 아주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비록 실습생이지만 선생님에게는 아이가 있는게 신경이 쓰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마지막날 아이들과 간식으로 먹을 케잌을 만들어 보냈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프랑스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수요일에는 수업이 없기에 주 4일간의 실습을 무사히 마치고 딸은 부활절 방학을 맞았다. 어땠냐고 하니 아이들의 순수함이 좋았다고 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유치원 선생님들이 엄마처럼 따뜻하게만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야 된다고 딸에게 일러주었다.

2주간의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하면 딸은 실습 내용을 요약해서 3분정도 구두발표해야하며 보고서를 제출해야한다.

딸에게 “너 나중에 유치원 교사되고 싶니? 하고 물으니 “모르겠다”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