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나이 50에 초등학교 스승 찾는 제자를 보며

파리아줌마 2010. 6. 28. 07:17

지난 주 토요일, 대구 친정에 전화를 했습니다.

외국산다는 자체가 불효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부산간이라도 한국에 산다면 보고싶으면 달려갈수나 있지. 너무 먼 지구의 반대편이라 보고싶다고 당장 갈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그러니 <연락이라도 자주 드리자>고 다짐했건만 그도 살다보니 쉬운일이 아니네요.

<내일은 꼭 전화해야지>를 서너번은 한뒤에서야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오랜만에 엄마[나이가 40이지만 어머니라 하기가 어색합니다. 그냥 편하게 엄마라고 하겠습니다]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맑은 엄마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이래저래 가족들 안부 묻고 나니 엄마는 그날 제자가 초대해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왔다고 하십니다. 엄마는 초등학교 교편 생활을 오래하셨습니다. 예전 00초등학교의 그제자는 전화국을 통해 엄마의 존함을 찾았다고 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존함은 이럴때는 장점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마침 집전화번호가 엄마 명의로 되어있었기에 어렵지않게 찾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제자의 나이는 56세, 지금은 건축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멋진 차로 집까지 엄마를 모셔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 소식에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요. 그래서 "그 제자 보니 기억이 나더냐"고 물으니 "기억나더라"고 하시더라고요. 과수원집 아들이어서 사과도 자주 얻어먹었다고 하십니다.

엄마는 이어 한때 교육자로 있었던 당신의 삶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하시는데, 목소리가 가늘게 떨립니다.

 

엄마는 50년대, 60년대에 대구와 경북지방 시골초등학교의 처녀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스승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동생이 태어나고난뒤 엄마는 사표를 내고는 본격적으로 아버지 사업을 도왔습니다. 

예전 어린 시절에 엄마는 가끔씩 교사 생활때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참으로 순수했던 시골 초등생들과 일어난 우스운 일화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의 학생을 보며 가슴아파하며 격려했던 이야기, 

학생들의 부모와 있었던 일들 등등,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짓는 부모님들이 당신 자식 가르치는 교사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이야기들은 가슴훈훈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때는 아이가 교실에서 똥을 싸서 교사인 엄마가 치우는데 하나도 역겹지도 더럽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저는 "나도 나중에 크면 우리엄마처럼 선생님이 될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처럼 선생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도 잊지 않고 찾아준  제자분에게 엄마의 딸로서 많이 감사했습니다.

 

교사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내품안을 떠나 내아이를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분에 대한 존중은 너무나 당연한거지요.

또한 존중받는 교사는 교육자로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되겠고요.

그러고 보니 교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닌 것 같습니다.

 

프랑스는 교권이 정말 셉니다. 교사가 장땡이지요. 그들의 결정에 부모들은 뒤에서는 궁시렁거려도 앞에서는 아무 소리 못합니다. 한예로, 들은 이야기입니다. 파리 외곽의 어떤 중학교는 월드컵이 시작되고 일주일간 휴교를 했답니다. 공립중학교입니다. 교감 선생님이 프랑스 축구연맹의 간부로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징적인 의미로다가 휴교했답니다. 그러니 일주일 동안 학생들은 학교 가지 않고 축구 경기보며 있습니다.

학교에서 정한 일입니다. 부모들은 알아서 아이들 단두리시켜야 합니다. 학년말이라 성적처리도 되었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학교도 6월 29일, 30일 양일간 고입 시험볼 중3들은 있을텐데도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부모들은 별소리 못합니다.

   

한국에는 교원 평가제라는 것이 생겨 학생들이 선생님을 평가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자질에 문제가 있는 교사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교권 강한 프랑스 교육만 보아서 그런지 좀 무섭습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수직관계이지 절대로 수평관계일수는 없는데 그런 상태에서 무슨 평가를 어떻게 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런 학생들이 나중에 50대가 되어 전화국에 문의해가며 선생님을 찾고 싶어할까요?

학생이 교사를 평가하고, 좋은 성적만이 오로지 삶의 목적인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사제간의 정은 싹트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기반도 다지고 조금은 여유로운 때인 50대에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며 선생님을 찾아 모시며 지난날을 함께 이야기할수 있는 삶의 훈기를 가질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찾고 싶은 어린 시절의 선생님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