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요즘 연일 폭염입니다. 어제는 34도를 웃돌기도 했습니다. 몸안 체온과 바깥 기온이 차이가 나지 않아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워낙 습도가 없기에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아우성입니다.
덥다고 아우성치니 15살 큰 딸이 여름이니 당연히 더운거라며 달관한 사람같은 소리를 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름이 그리 덥지 않은 파리 날씨에 느닷없이 폭염이 계속되니 익숙하지 않아서 한탄을 내뱉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봄은 봄답게 따뜻해야되고, 여름은 더워야되며. 가을은 시원하고. 겨울은 많이 추운게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21년을 산 파리의 날씨는 사계절 구분이 없습니다. 특히 봄과 가을은 없습니다.
짧은 여름과 긴 겨울만 있습니다. 프랑스의 지방 도시들은 어떤지 잘 모릅니다. 지금 리옹 같은 프랑스 중부지방은 더 더울테고, 니스, 칸 같은 남부지방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 북서쪽인 노르망디와 부르타뉴 지방은 파리보다는 덜 더울 것입니다.
파리는 봄과 가을의 따스함과 시원함을 만끽할수 없습니다. 겨우내 언 땅이 녹아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순들을 보며 지난 추운 겨울을 잘 지내왔다며 위로할 여유도 주지 않고 다시 추운 겨울 날씨로 돌아가기가 일반입니다.
봄은 여름을 준비하는 과정같기도 하고 매섭게 추웠던 겨울을 잘 지내왔다며 따스함으로 위로해주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을 또한 지난 더위를 사과하는 것 마냥 시원하지요. 그리고 다가올 추위를 위한 워밍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의 계절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런 과정의 계절을 거치면서 지난 여름과 겨울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다가올 것을 위해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봄과 가을은 하늘이 허락해주신 축복같습니다.
파리외곽, 쏘 공원의 봄
그런데 파리 날씨는 그런 과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꽃피고 새 우는 봄의 따스함을 만끽하려고하면 질투하는양 다시 겨울날씨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4,5월의 따스함에 속아 겨울옷들을 정리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끄집어 내어야 합니다. 6월까지는 언제 다시 한파가 몰아닥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있는 4월의 날씨는 변덕이 심합니다. 하루동안 비와 해가 번갈아 몇번을 왔다갔다합니다.
그런 날은 하루가 사흘쯤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이 변덕이 심하다고 선배 언니가 이야기 한 기억이 납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태양으로 자라나게 했던 곡식들을 거두어 들이는 결실의 계절인 가을은 겨울과 기온차가 많이 없습니다. 그만큼 가을이 춥기도 하거니와 겨울이 그리 춥지 않습니다.
작년여름은 한국에 가서 잘모르겠는데, 2년전 파리의 여름은 정말 덥지 않았습니다. 덥지 않다가 바로 가을의 선선함으로 이어지니 얼마나 쓸쓸하던지요. 강렬한 햇빛 받으며 땀 많이 흘리며 고생도 좀해봐야 가을을 감사하게 맞이할텐데 여름을 덥지않게 보내고 나서 바로 시원해지니 참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겨울은 한국과 다르게 비가 자주 와서 습하고 햇볕 한번 보기 힘듭니다. 한국의 겨울 추위는 건조해서 피부 겉으로만 세차게 느껴지는 것에 비해 파리의 추위는 스물스물 뼛속깊이 파고듭니다. 기온은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지만 아마 체감온도는 파리가 더 낮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학온지 몇해동안은 풍토병을 앓는 것처럼 기운이 없어 비실거렸답니다.겨울에 한국을 갔을때 생각나는 것이 날씨가 워낙 건조하다 보니 자동차문만 잡으면 심한 정전기가 일어나서는 물수건을 손에 두르고 차문을 열었던 적이 있었답니다.
파리외곽에 있는 쏘 공원의 가을
봄, 가을이 희미한 파리의 날씨 때문에 그때가 되면 마음은 더욱 한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벗꽃잎들이 날릴 우리나라의 거리를 상상하면 마음에도 봄바람[?]에 꽃잎들이 떨어지는 것 같고, 온천지가 붉은 빛으로 물드는 가을이면 자연의 장엄함에 숙연해지곤 합니다. 작은 바램이 있다면 가을에 우리나라를 꼭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뒤덮인 강산과 도로변에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한국의 가을 풍경을 가슴 한가득 담아오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도 드물것입니다.
이런들 저런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날씨입니다. 어떻게 할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자신이 맞추어 나가는수 밖에 없습니다.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계절의 회전속에서 삶을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덥다고 춥다고 아우성치고 나면 금방 따스해지기도 하고 시원해지기도 하기에 호들갑 떤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렇다고 다시 수선 떨지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단지 변한게 있다면 이제는 견디며 기다릴수 있어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파리의 한국아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에는 풍부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인색한 것 (0) | 2010.07.21 |
---|---|
외국생활에서 가장 피부로 와닿았던 아쉬운것은? (0) | 2010.07.13 |
6-18세까지 프랑스 의료보험에서 주는 생일선물은? (0) | 2010.07.09 |
아동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프랑스의 대책 (0) | 2010.07.06 |
프랑스에 살면서 에펠탑이 성가시게 느껴질때 (0) | 2010.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