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파리시의 엄격한 간판규제와 얽힌 사연

파리아줌마 2010. 8. 11. 07:24

 

간판수, 크기, 색채까지 규제

 

처음 파리에 왔을때 가장 답답했던게 병원이 어디있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낯선 땅에 오게 되니 여차해서 아프면

찾아가야될 곳이 병원이니 어딘지 미리 알아두고 싶은 마음에

더욱 간절히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리에 도착했을때는 여름이었습니다.

썸머타임으로 밤10시 혹은 11시까지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같은

파리라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이라도 하게 되면, 날은 밝고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아 마치 전쟁폐허같은 묘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도 없고요, 간간히 건물사이로 들리는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전부였습니다.

 

도대체 이나라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개인 병원은 간판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약간 개조해서 개인병원으로 쓰고 있었고,

이른바 간판이라고는 건물 앞에 붙여놓은 A4용지 크기정도의 조그마한 벽판이 고작이었습니다.

 

병원뿐만 아니라 변호사, 법률 사무소등 가까이 가야지만 볼수 있는 벽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간판보고 병원을 찾지 못합니다, 주소를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파리시내는 간판을 엄격히 규제합니다.

 

1943년에 간판 규제법을 만들었는데, 60,70년 동안은 크게 적용하지 않았다가,

1979년 환경법을 제정하면서부터 간판규제를 엄격히 해오고 있습니다.

 

규제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들면, 파리중심지인 레알지구는 상업지역이라 이곳의 간판 규제는 비교적 유연합니다.

하지만 17세기, 18세기 건물들이 많이 있는, 노틀담 성당주변과 마레 지역은 상가들이 많이

있지만 상업적 목적보다는 역사보존에 가치를 두기로 하여 간판 규제가 아주 엄격합니다.

 

2층부터는 어떠한 간판도 설치할수가 없고요,

간판 허가를 얻으려면 건축, 도시설계, 문화 예술 관련해서 절차를 거쳐야 하며 몇달씩 걸립니다.

숫자. 크기, 색깔까지 엄격하게 규제를 하고, 특히 돌출 간판에 대해서는 더 끔찍하게 간섭합니다.

 

파리의 유명한 까페, 식당들은 간판이 없습니다. 간판이라고는 식당벽위에 이름만 새기거나,

그것도 없는 곳들이 대부분입니다. 단지 해볕가리는 차양에 이름 써놓은 것으로 간판을 대신합니다.

그래도 식당과 까페는 돌아갑니다.

 

패스트 푸드점인 맥도날드의 간판은 빨강색으로 전세계적으로 통일되어있는데,

파리의 맥도날드 간판은 하얀색입니다. 빨강색이 너무 튀어 파리의 도시미관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쯤되면 한마디 정도는 해주어야 될것 같습니다. "참 잘났다!!" 라고요.^^

 

 

                            퐁피두센타옆에 있는 유명한 보부르 까페입니다. 간판없습니다. 차양에 적힌 까페이름뿐입니다. 

 

간판에 얽힌 사연

 

그런 파리에서 새천년이 시작되고 얼마후 남편은 에펠탑 근처에 조그마한 매장을 열었습니다.

문제는 간판없이 영업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상가가 아니었던 장소였기에

몇달씩 걸릴지 모르는 간판허가와 매장 공사와 개업 시점을 잘 맞출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걸지도 못하는 찌라시[?] 간판을 놓고 시작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뭐 좋은 것이라고 mbc뉴스에서 파리의 엄격한 간판규제를 보도하면서 남편과 매장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졸지에 남편은 뉴스에 나왔고, 3년이 지나고나서 매장에 간판을 한번 제대로

달지 못한채 닫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간판>이라면 진저리쳤던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는것을 보니 많이 정리가 된 모양입니다.

그때 그매장은 우리들에게는 비싼 수업료 낸 공부의 터전이었다며 십년이 지난 지금 회상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