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1999년 성탄절에 프랑스를 강타했던 세기의 태풍

파리아줌마 2010. 9. 3. 07:39

 

1999년 12월 26일과 27일, 양일간 프랑스를 강타했던 세기의 태풍

 

어제밤, 그러니까 한국 이른 아침시간에 잠시 트위터에

들어가보니, 태풍 소식으로 뒤덮여있었습니다.

 

심한 바람 때문에 잠에서 깨었다는 이야기와, 태풍이 강타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근 걱정하는 이들, 그리고 지역과 교통 상황을 알리는

글들이 있었습니다.

 

실시간으로 급박하게 올라오는 태풍소식에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아마 제가 이곳, 프랑스에서 무시무시한 태풍의 위력을

눈으로 보고 겪지 않았다면 체감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새천년을 얼마 앞둔 1999년 크리스마스날 밤과 그다음날에 걸쳐 프랑스는 1792년 이래로 가장 강한 태풍이

쳤습니다. 이른바, 세기의 태풍이라고 일컫는 Lothar와 Martin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태풍은 하루의 틈도 주지 않고 양일간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인근 유럽 나라들까지 피해를 입혔습니다.

 

프랑스 사망자 88명, 스위스, 독일, 스페인, 영국도 각각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3백 5십만 가정에 전기와 가스 공급이 끊어졌고요, 강한 바람으로 쓰러진 나무로 인해 파손된 차량은 수백여대,

그리고 14만 그루의 나무들이 뽑히면서 프랑스 전체 5십만 헥타르의 숲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전통 문화 유산까지 덮친 태풍

 

그뿐아니라 프랑스의 전통 문화 유산들도 태풍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막 보수 공사를 끝낸 파리의 노틀담 성당은 시속 150킬로 이상으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돌들이 떨어져 내려 성당내부에 구멍이 났고, 첨탑 6개가 떨어져서 긴급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부르타뉴 지방의 고성인 몽 생 미셸성도 일부 파손되었고, 프랑스의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 있는 파리 팡테옹의 둥근지붕[dôme]을 이루고 있는 100킬로의 납조각이 15개나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지붕 전체를 다시 바꾸어야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파리 인근에 있는 베르사이유 지역이었습니다.

태풍은 이지역을 가장 강하게 타격했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지붕이 파손되었고, 창문들이 깨어졌고,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베르사이유 정원의 몇백년된 나무 1만그루이상이 뽑혔습니다.

당시 뉴스에는 뽑힌 나무들이 누워있는 베르사이유 정원을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밤에 만난 극심한 두려움

 

저는 1999년 크리스마스 날, 알고 지내던 가족이 한국을 간다고 하여

한국식당에서 송별회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아주 편안하게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창 덧문이 심하게 흔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는 더이상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천지를 휩쓸어갈듯한 바람은 처음보았습니다.

 

창가에 앉아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바라며 길건너 나무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꺾일듯 휘어지는 나무가지들,,,아직도 그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크나큰 힘앞에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느꼈습니다.

무척 두려웠습니다. 그런 무서움은 처음이었습니다.

바람이 나와 가족과 이 집을 덮치면 그대로 당할수 밖에 없겠구나.

그것은 절망이었습니다. 

 

다행히 동이터오면서 바람은 조금 잔잔해졌고,

집앞에 있는 차가 무사한가 싶어 나가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차지 않은 미지근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더군요.

차위에는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거리에는 밤새 나뒹굴었던 쓰레기 조각들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TV를 켜니 TF1방송에서 매일 날씨를 알려주던 여자 아나운서가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채

전화음성으로 "제발 집에 머물러 주십시요"라며 심각하고도 간절한 목소리로 호소했습니다.

 

10여년이 지났지만 어제일처럼 생생히 기억이 납니다.

처음으로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해준 그태풍은 저로 하여금 인간의 한계과 나약함을 절절히 통감하게

해주었고,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해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