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가 문화 강대국이 될수 있었던 이유

파리아줌마 2011. 3. 8. 09:28

지난주 금요일 오랜만에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찾았습니다.

매달 기고하는 곳이 있어 소재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항상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 강제되어진 무언가로 인한 외출은

일탈의 달콤함마저 누리게 해주었습니다.

 

해볕은 화창했지만 바람은 아직 찬 파리의 기운을 가로지르며

퐁피두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현대 미술관까지 둘러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무심코,, 들어가 보았답니다.

오래전 큰아이가 어릴적에 찾은 기억만 있습니다.

 

혼자 호젓이 피카소를 만나고, 마티스, 샤갈, 그리고 미로와 뒤샹,

페르디낭 레제를 만났습니다.

아이들 건사에, 매일 반찬 걱정하고, 세탁기, 청소기만 돌리며 살다가 간만에 그들을 만나니 속에 내재해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것 같았습니다. 박물관 마룻바닥에 똑딱거리며 부딪히는 구두 소리가 미안할만큼 그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고요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퐁피두 센터에 가면 항상 생각나는게 있습니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밤 10시까지 여는 도서관이라 유학생 시절 자주 찾았습니다.

더러는 센터앞 까페에서 혼자 저녁 식사를 하곤 했지요.

 

문득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다른사람 같습니다.

사회적 위상[?]이 달라지면 이런 느낌이 드나봅니다.

마치 여러해 함께 살다가 어느날 남편을 보니 처음 보고 설레던 그사람이 아닌듯한 느낌이 들때와 같습니다.

그럼 이런 스스로에 대한 이질감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시간의 흐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와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같은 사람이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문화 예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각도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게 됩니다. 삶의 여러과정을 거쳐오면서 얻어지는 무언가가 있겠지요.

예전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도 하겠고, 연륜이 쌓여 세상을 좀더 넓게 바라볼수도 있게될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단정하고 강제하기보다는 흐르게 내버려두는것도 나쁘지 않을겁니다.

 

혼을 쏟아부은 작가의 작품이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먼훗날 그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경우들이 있지요. 대표적으로 고흐의 작품을 꼽을수 있을겁니다. 그러니 문화와 예술은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아야된다고 생각합니다.

 

 

                                                                                        퐁피두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조르쥬 퐁피두 대통령

  

집으로 오는 길에 기괴한 파이프가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는 퐁피두 센터에 어디선가 본듯한 낯익은

모습이 거대하게 걸려져있었습니다. 프랑스 전대통령 조르쥬 퐁피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술은 논하고, 반대하고, 보호하는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말한건가 봅니다. 그런데 그글귀를 보는 순간 뭔가 찡~해져옵니다.

문화 예술인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내나라에서 있었던 어이없는 희생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몇십년전에 대통령이 나서서 문화를 키워온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인, 저는 그순간 애환섞인 상념이

몰려들었습니다.

 

올해가 조르쥬 퐁피두 대통령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랍니다.

그래서 초상화가 걸려져 있었나 보더라고요. 대통령의 100주년 생일을 기념하는 이유는 퐁피두 센터가

그의 의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1969년에서 1974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한 퐁피두는 파리를 뉴욕에 대항할수 있는 국제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이 센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미 드골정부때에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도쿄 궁전근처에 계획했다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드골의 후임자인 퐁피두가 이룬것입니다.

퐁피두 센터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프랑스에서 세번째로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곳이라 합니다.

 

에펠탑이 세워질때도, 그리고 공장같은 분위기가 나는 퐁피두 센터를 만들때도 세인들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특히 운치있는 바로크 건물들이 즐비한 파리중심에 세워진 돌연변이 같은 건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파이프의 노틀담>, <정유공장>. <가스공장>이라고 하며 퐁피두 센터를 비아냥거렸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문화 예술에의 도전은 결국 나라를 대표하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에펠탑을 싫어했던 모파상은 자주 에펠탑 1층에 있는 식당에 식사를 하러갔다고 합니다. 그안에 있어야지만 에펠탑 없는 파리를 느낄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설핏~ 웃음짓기도 했습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문화 예술을 옹호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물론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적지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또한 발굴하고 보존하는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프랑스가 문화 강대국이 될수밖에 없겠지요. 또한 프랑스 정부는 문화와 경제는 충돌할수밖에 없음을

온전히 인식, 인정한 가운데 함께 병립할수 있는 별도의 정책을 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도지역, 시를 거치며 내려오는 문화 예술 분야 지원이 많다고 합니다.

 

삼성전자가 프랑스 시장에서 성공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문화 마케팅이었다고 합니다. 

퐁피두 센터에 있는 현대 국립 미술관에서 단편 다큐 영화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한 스크린들은 모두 삼성제품이었습니다. 삼성은 프랑스인들의 문화사랑을 알고 공략했습니다.

 

제가 본 프랑스의 정책들은 근시안적이지 않습니다. 이미 저출산을 극복하고 유럽에서 아기 챔피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심하지 않습니다. 더긴장하고 노력해서 탄탄하게 굳혀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느리게 가되 단단히 가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는 하루 아침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프랑스 정부는 깊이 숙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인재를 발굴하면서 지켜보고 있는것입니다.

문화강대국이 될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문화가 깊이 스며진 정신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무언가가 있을것만 같습니다. 제가 박물관을 나올때 가졌던 충만함이 이를 말해주고 있는듯합니다.

 

퐁피두 센터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는 안내원들의 자만기 섞인 눈빛과 표정이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