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법정에 선 프랑스 전대통령을 본 나의 비애

파리아줌마 2011. 3. 28. 09:16

지난 3월초, 결국은 작크 시락 프랑스 전대통령도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중 한명이 공소시효의 문제를 거론해

공판은 다시 연기되었다고 합니다.

 

혐의는 시락이 1977년에서 1995년까지 파리 시장으로 재직시,

그가 소속되어 있던 공화국연합당[RPR]의 직원을 파리 시청 직원으로

등록시켜 월급을 받게 했던 것입니다. 

프랑스 공화국 역사상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선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굳이 전례를 들자면, 1945년 친나치 정부의 원수였던 페텡이 법의 심판을

받았던것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같은 선상으로 볼수는 없지요.

  

시락이 지난 3월초 법정에 서는 모습이 저에게는 그저 남의 나라 전 대통령 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한국인이라 오버랩되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납니다.

당시 한국은 벚꽃이 피었다 봄바람에 흐드러지게 지고 난뒤, 거리 가로수들이 뜨거워지는 태양에 싱그런 초록빛을 발할때였을겁니다. 하지만 5월의 막바지임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해는 인색하리만큼 자태를 드러내주지 않았던 어느날 새벽에 요란하게 전화 벨이 울립니다.

 

시차고려하지 않은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은 항상 불안을 동반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고는 내뱉는 남편의 깊은 탄식 소리에 잠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전화를 끊고난뒤 남편은 알려줍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소식을요. 너무 놀라서 잠시 입을 벌린채 있었습니다. 그날 저희부부는 다시 잠을 청할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협회 일을 맡고 있었던때라 기사를 써야되었기에 바로 컴퓨터를 켰습니다.

 

저는 그로부터 한동안 충격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전 대통령에 대한 이잡기식 수사를 보며 너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일어난 일이라 더욱 화가 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는 같은 시기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서 74%라는 프랑스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 대통령 자격으로 헌법위원회 의장을 맡고, 본인 재단을 만들어 친환경 사업과 문화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던 시락 프랑스 전대통령이 오버랩되었습니다.

 

프랑스와 한국은 비교될수 없습니다. 그리고 비교해서도 안됩니다. 사람마다 성격과 기질이 다르고, 가정환경과, 살아온 삶이 다르기에 비교될수 없는것처럼, 역사와 사회구조가 다른 두나라를 비교하는것은 모순입니다. 하지만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인, 저는 비교할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저절로 비교가 되더군요. 항상 빚대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내나라 전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아가게 만든 일을 보고 이나라 전대통령 생각이 안나겠습니까?

더군다나 당시 시락의 공금횡령혐의가 거론되었고, 증거 불충분으로 미루어지고만 있었던때라 더욱 생각나더군요. 이미 1998년에 고소장이 제출되었는데 당시는 대통령 면책특권으로 왈가불가 할수 없었답니다.

그러다가 2007년 대통령직을 이양하고 난뒤 한달동안은 면책특권이 유효했는데, 그로부터 4년이나 흐른 지금에서야 법의 심판을 받게 된것입니다.

 

그사이 파리시청과는 집권대중연합당과 시락 자신이 벌금을 내는것으로 협상이 되어 파리시는 피고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1월의 시락 프랑스 전대통령 모습,   사진 펌<출처???> 

 

이런 일련의 공방들이 있느라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두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본인이 권력에 물러나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전대통령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락이 대선에서 사르코지를 지지해준다는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 정치인들은 정략은 달라도 연대감은 있는것 같습니다. 시락은 사르코지의 정적이었던 빌팽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빌팽은 대선에 출마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보았자 국민들 기만하는것은 같은거지요.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그분이 왜 그렇게할수밖에 없었는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저로 하여금 한국의 상황에 관심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아이들 키우며 살기 바빠 내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며 그날 오후 내내 울었습니다.

학생시절 비록 막연했지만 가졌던 꿈과 이상들은 간데 없고, 그동안 아닌것인줄 알면서 외면하고 싶었고,

편안하고 싶어 비굴하게 타협하며 갔던것들에 대한  회한의 눈물들을 함께 쏟아내었습니다.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는 무뎌져버렸고, 냉혹한 현실에 동화되지 않고, 밝고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가고 싶어

몸부림쳤던 지난 나날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내동댕이 처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고는 더욱 슬펐습니다.

 

그리고 힘있는자가 힘없는자를 어떻게 할수 있는지, 누군가를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작정할때는 옳고그름 따위는 소용없어진다는것을, 없는 죄도 만들면 된다는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일은 비루한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자신을 뒤흔들어놓았습니다. 그로부터 프랑스 전 대통령의 공금횡령공방이 일어날때마다 그분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어쨌든 전 대통령이라는것 때문입니다. 시락은 엄연히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묘하게 돌아가더군요.  내나라 전 대통령의 서거로 너무 아파해서 그런지 그냥 넘어가기를 바랬습니다. 

 

법정에 서게된 최초의 대통령이라 프랑스인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르코지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부터 구관이 명관이라고 시락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습니다. 이는 사르코지에 대한 반감과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프랑스인들의 노스탈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엄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된다'는것도 있지만 일부였고, '20년에 다되어 가는 일을 법정에서 다룬다면서 다른일들도 많지않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대통령을 한사람이고, 40년동안 프랑스를 맡아왔고, 그로 인해 실업자 구제책이 있었다'고 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댓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법의 심판을 피할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법이 정치인과 평범한 이들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을것'이라는 시니컬한 반응이었습니다.

 

현재 78세인 시락에게 유죄가 적용되면 징역 10년에 15만 유로의 벌금을 물게 된다고 하는데, 6월 20일경으로 미루어진 프랑스 전대통령의 공판은 집행유예로 마무리 되지 않을까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다가올 6월 공판을 보며 또다시 스스로 세상버릴수밖에 없었던 내 나라 전대통령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은데, 더이상 슬퍼하지는 않으렵니다. 그리고 고인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잘살수 있는 세상'을 외쳤던것처럼,

그런 세상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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