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한국전 참전한 이태리 경찰서장 만나 위기모면한 사연

파리아줌마 2011. 3. 31. 08:02

집 떠나면 고생이라며 좀처럼 움직이기 싫어하던 보리문디 여자와

여행을 무척 좋아해 마음만 동하면 일단 떠나고 보자는 신조로 살아가던

멍청도 남자가 파리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 남자, 여자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습니다. 여자 또한 남자가 싫지 않았습니다.

두사람은 파리에서 불같은 사랑을 했고, 떨어져 살기 싫어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한지 18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이 부부는 요즘은 생활에 필요한 이야기외에는

별말없이 지내지만, 신혼시절에 여자는 밤이 새도록 남자의 군대생활과 여행 이야기를

듣곤 했었습니다. 당시 서로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이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이 멍청도 남자는 말을 아주 천천히 했지만 재미있게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것을 좋아했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유럽 구석구석을 여행하기를 즐겼던 남자에게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습니다.

항상 준비되지 않는 무모한 여행을 했던 남자인지라 얽힌 이야기들이 많았던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치 동화에 나오는 모험 소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여자가 밤이 새도록 들었던 여행 에피소드들중 하나를 꺼내어봅니다.

남자는 여행시 목적지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항상 길이 없는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유럽 지도 하나 들고 자동차로 낯선곳만 찾아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 어느날 우연히 도착한 곳이 이태리 남부의 페시아라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었답니다.

 

때마침 그날은 마을축제가 있었답니다. 공터에 모여 흥겹게 춤을 추던 주민들은 낯선 동양인들의 출현에 모든 행동을

멈추더랍니다. 남자 기억에 아주까리 기름을 머리에 바른듯한 신사가 춤을 추던 스텝을 늦추면서 그들에게 다가온게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마을에 신기한 외계인[?]들이 등장한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후한 인심을 발휘하여 남자 일행들에게도 자리를 내어주었고, 그날밤 마을사람들의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잠 잘곳을 마련해 주었고, 식사를 제공해주었답니다.

그때가 1990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다음날 마을을 떠나는데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더랍니다. 이태리 남부의 비는 폭우 쏟아지듯 내린답니다.

비를 뚫고 다음 행선지로 옮기는 와중에 남자는 음악을 틀기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이느라 빨간불 신호를 미처 보지 못한것입니다.

남자에 의하면 이태리는 이정표니 신호등이니 개념없이 허술하게 있다고 합니다. 신호등은 깨어져있기 일쑤였고, 이정표에는 진흙덩이가 붙어져 있을때도 있답니다. 어쩌면 이는 남자의 변명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미 때는 늦어버렸습니다.

 

남자의 꾸질한 Peugeot 305가 튼튼한 Renault 21을 쳐버린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앞바퀴 부분을 쳐 자동차는 박살이 났지만 어떠한 인명피해가 없었답니다. 남자는 Renault주인에게 100% 본인 과실이라 <미안하다>고 하니, 이 이태리 남자 점잖하게 <c'est la vie, 그게 인생이지>라고 하더랍니다. 이태리에는 불어하는 사람들이 많답니다. 이태리 남자의 차는 견인되어 실려가고 남자 일행의 차는 도저히 소생할수 없는 지경이었답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남자 일행들은 차를 버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간 식량으로 사용하던 야채며, 라면등을 차에서 꺼내는데, 비가 오는 질펀한 땅위로 감자와 양파가 때구르르~ 구르기도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모든것들을 주섬주섬 챙겨야만 되었답니다.

 

문제는 빨간불에 지나간것이라 벌금을 물어야되었는데 가난한 유학생들이라 돈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일단은 인근 경찰서로 갔는데, 경찰서 직원에게 한국인이라고 하고 나서 조금있으니 어떤 이태리인이,

<안녕하십니까?> 하고 나오더랍니다. 그리고는 <서울, 부산, 인천,,> 줄줄이 읇더랍니다.

알고보니 그곳 경찰서장이었는데, 6 25 참전용사였던것입니다. 그리고는 고생했다면서 차와 케잌을 대접해주고는

벌금을 없애주더랍니다.

 

이것만 해도 말도 못하게 고마운데, 어디로 어떻게 갈것이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남불로 들어가 스페인쪽으로 갈참이라고 하니 남불가는 기차시간표를 알아봐주더랍니다.

그런데 기차가 5분인가 10분뒤면 도착한답니다.

 

문제는 또 워낙 시골마을이라 남불가는 기차가 하루에 한대만 온답니다. 그 기차놓치면 하루밤 지내야되는것입니다.

그간 정황상 하루를 더 지체할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안 경찰서장은 역에 전화를 걸어 기차가 못떠나도록 조치를 취하고는 경찰차로 쏜살같이 일행들을 역으로 데려다 주었답니다. 무사히 기차에 오른 남자일행들은 한국전에 참전한 경찰서장의 훈훈한 빠이빠이~~를 받으며 떠나올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후손들에게 이런 영향을 미칠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끔찍한 전쟁터에서 싸워준것만도 고마워 우리가 도움을 주어도 뭣할텐데 이렇게 또다시 도움을 받았던것입니다.

이남자 그 경찰서장을 한번 찾아가리라고 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찾지못했다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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