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자녀를 가진 한인 부모들은
아이의 한글 교육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사는 일이 바빠 신경쓰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한국말보다는 불어를 익히게
하기도 하지만, 집에서 한국말을 쓰지 않으면 회초리를 드는
엄격한 가정도 있습니다.
전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는것을 원칙으로 정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러 한국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때는 제가
불어를 섞어쓰기도 합니다. 이럴땐 한국어냐 불어냐 보다는
아이와의 소통이 더 중요하겠지요.
이곳에서 교육받고 자랄 아이의 한국어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것은 한국말을 심하게 더듬거리는
한인 청소년들을 본 이후였습니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좋은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더군요.
지금 16살인 큰아이는 3살에 유치원에 들어갔습니다.
한국말을, 그것도 대구 출신인 엄마의 경상도 억양까지 있는
말투를 가지고 있던 딸아이가 이곳 유치원에 가니 무슨 말을 알아듣고
할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안가겠다고 떼쓰지 않고 가주니 감사한 일이지요.
아이를 찾으러 간 어느날 선생님은 집에서 한국말을 하는지 불어를 하는지를 묻습니다.
한국말 한다고 하니 집에서 불어를 하라고 권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유치원 생활에 적응할수 있다고요~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이라 공손히 <네~잘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어차피 여기 학교 다니면 불어는 자연스레하게 될것인데, 그런 불어를 집에서 시키라고요?
미쳤어요? 그러잖아도 한국말 잊어버릴까봐 걱정인데~>라고 외쳤습니다. 전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속으로 큰소리 치고 나서 13년이 흐른 지금 딸아이의 한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냐 하면, 작년 어떤 한인 청년이 아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한국말을 할줄 아냐고 물었답니다. 이에 아이는 <한국말을 하기는 하는데요. 좀 서툴어요>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랬더니 <서툴다>라는 말을 할수 있는 정도면 잘하는거네 라고 했다며 깔깔~거리며 이야기해줍니다.
한류는 아이 한글 교육의 큰스승?
인터넷이 보급되고 딸아이는 한국의 포털 사이트를 드나들면서 관심있는 아이돌 가수와 연예인들의 소식을 읽곤 했었습니다. 파리에 있는 한글 학교를 보내다가 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그만두고는 마음의 부담만 가지고 있던차에 아주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적극 권장했고, <모르는 단어나 표현 있으면 얼마든지 엄마에게 물어보라> 하고는 한국어 익히게 할 목적으로 드라마를 일부러 함께 보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흡입력 강한 한국 드라마는 엄마의 초심을 흔들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심취해서 보고 있는데 중간 중간에 <엄마, ~~가 뭐야?>하고 물어오는 딸아이의 질문에, 드라마 시청의 리듬을 깨고 찬찬히 대답해주기에는 의지만 강했던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일단은 묻지 말고 무조건 봐~ 그리고 모르는 것은 나중에 물어>라고요. 묻기는 뭘 나중에 묻겠습니까? 금방 잊어버렸겠지요.
아이는 한국 예능프로가 한국어 익히는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말하는것과 동시에 한국어 자막이 나오고,
<황당, 흥분, 미안>이라는 말풍선 같은것이 있어 좋다고 합니다.
전문적인 용어 빼고는 드라마나 방송 프로를 이해하며 보고 있고, 신문 기사 정도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제법 잘하는 아이지만 가끔씩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티를 어쩔수 없이 낼때가 있습니다.
한글이 아이에게서 수난 당할때
지난 여름 아이들과 외출하기 위해 기차 선로에 있을때였습니다. 프랑스말로 동생에게 무어라 한것 같은데,
작은 아이는 못알아들었는지 되묻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했는데 또 못 알아듣고는 같은 말로 대꾸합니다.
이에 답답해진 딸아이는 잘난척 하느라 큰소리로, 그것도 한국말로 동생에게 외칩니다. <수~헙~>이라고요.
수업을 수헙이라고 한겁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는 저도 웃느라 넘어갑니다.
이정도는 약과입니다. 얼마전 한국 뉴스를 보다가 5만원권이 나오니 그안에 새겨져 있는 신사임당을 <심사위원당>이라고 하더군요. 이건 한국 서바이벌 음악 프로를 많이 봤다는 증거겠지요. 2년전 한국에 갔을때 5만원권이 나왔던 시기라 <신사임당>을 자주 들었답니다. 지하에 계신 신사임당과 세종대왕께 죄송한 일입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부모를 공경>해야된다고 이야기하려든게 본인도 모르게 <부모를 공격>하라 하고는 당황하더군요.
프랑스 친구들에게 한국말을 할줄 안다고 하면 신기해한답니다. 그리고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두 문화를 가지고 풍부한 삶을 살고 있다며 부러워도 한다고요~ 그런데 친구들이 한국어 욕설을 자꾸 가르쳐 달라고 했답니다.
아이가 무슨 욕설을 알겠습니까? 그래서 가르쳐준 욕이 <나쁜 자식>이었답니다. 아무래도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것 같습니다.
한국어에 대한 부담은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장시간 머물며 전통과 정서를 깊이 알고, 보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할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필요없습니다.
'파리의 한국아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벌없는 프랑스 학교에서 내가 본 처벌 (0) | 2011.09.21 |
---|---|
르몽드, 한국의 재벌에 대해 언급하다 (0) | 2011.09.19 |
19세기의 드레퓌스를 연상시키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 (0) | 2011.09.15 |
파리의 서울 공원에서 열린 한가위 축제 (0) | 2011.09.13 |
프랑스인에게 막걸리 마셔보게 하니 (0) | 2011.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