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19세기의 드레퓌스를 연상시키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

파리아줌마 2011. 9. 15. 06:53

곽노현 교육감의 잘못은 무엇인가?

 

8월말에 여행하느라 6일 정도 인터넷과 멀리하다가 다시 접속해보니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으로 우리나라 교육계에 변화와 혁신을 불러일으킬 

인물이었고, 서울시 무상급식 논란이 일었을때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열띤 티비 토론을 벌였던 교육감이 후보 매수를 위해 대가성 돈을

건네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교육감을 사퇴해야된다는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접하게 되면 처음에는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조그만 생각해 보면 어떤 저의가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의 진보성과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물러나고

바로 터졌던 일입니다.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요.

 

많은 이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힘을 가지고 있어 교육감을 구속까지 할수 있는 자들이란것입니다. 일단은 진실과 양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갈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진보 교육감을 옭아매고 힘을 잃게 만드는게 그들의 목적이겠지요.

 

저는 곽노현 교육감을 믿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는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중하지는 못했습니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이들이 혈안이 되어 있는데, 2억원이라는 돈을 상대 후보에게, 그것도 선거와 무관하지 않은 시기에 건넨건 그들에게 먹잇감 던져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쾌재를 불렀을 검찰이 상상이 됩니다.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이들에게서 찾아볼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옳다는것 하나만으로 상대의 악성을 만만히 보고 있는것입니다. 그들이 진실이라는 맨몸뚱이로 있을때 상대는 철저하게 치장을 하고 공격할 준비를 합니다.

일단은 당할수밖에 없습니다. 

 

19세기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드레퓌스와 곽노현 교육감 사건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과 결부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며칠전 어떤 트위터리안이 저에게 <짬나면 읽어보라>며 어떤 기사를 링크 걸어주었습니다.

 

북서울 중학교 교사 강민정씨가 소셜뉴스 사이트 위키트리에 <곽노현 교육감과 드레퓌스>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뉴스페이스 김태진 기자가 정리한 기사였습니다.

 

강씨는 “1894 반유대주의를 이용해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았던 프랑스 권력의 만행, 만행을 준엄하게 꾸짖고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려 했던 프랑스의 양심과 지성 덕분에 프랑스 사회의 수준은 단계 높아졌다 이번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서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그는노골적으로 음흉하게 웃으며 드레퓌스에게 돌을 던졌던 권력을 세력은 차치하고 진실의 객관적 실체에 눈감은 드레퓌스를 물어뜯었던 광기의 여론이 어찌나 그렇게 소름끼치게 닮아 있는지라며진실을 붙잡고 10년을 버텨냈던 드레퓌스와 진실 앞에 당당했던 프랑스 지성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사건 초기 교육감을 몰아쳤던 진보개혁진영의 자성을 촉구했다.

 

강씨는드레퓌스와 에밀졸라의 투쟁이 결국 프랑스 사회에 양심의 각성, 정의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프랑스 사회를 일보 전진시켰던 것처럼 곽노현이 선택한 투쟁과 투쟁을 지지하는 깨어 있는 양심들의 동참은 우리 사회를 일보 전진시킬 것이다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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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답해야 한다 강씨는 “‘사람을 살리는 인가사람을 죽이는 인가, 그리고 선택과 결정에 기꺼이 동참할 있는가에 대해라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각성과 행동을 촉구했다.

 

이 사건은 1894년 유대인 장교인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군에게 프랑스의 기밀문서를 빼돌렸다는 간첩 혐의로 시작된것입니다. 드레퓌스는 결백했습니다. 하지만 반유대인 정서를 이용해서 프랑스 참모본부는 드레퓌스에게 누명을 씌워 종신형을 선고받게 하고는 유배를 보냅니다.

 

그이후 진범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권력은 드레퓌스의 혐의를 벗겨주지 않았습니다. 가장 사악한 역할을 한것은 공화제와 프랑스 혁명의 이념에 반대하는 왕정복고주의자, 반유대주의에 몰두하는 권력, 보수정치인들과 군국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언론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드레퓌스 찬반파로 나뉘어져 생업마저도 포기하고 내전의 위협까지 갈정도로 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10여년의 지난한 투쟁으로 드레퓌스는 명예가 회복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러기까지는 에밀 졸라가 문학지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싣고부터 프랑스 지성인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인 군인들이 정의의 편에 서게 되었으며, 편파 보도가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드레퓌스의 결백을 주장한 언론[르 피가로]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양심에 가책을 느낀 참모본부 군인이 자살을 하게 되면서 그의 명예회복은 가열차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드레퓌스 사건은 진실과 양심이 거짓과 음모를 굴복시킬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프랑스 민주주의를 한발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드레퓌스의 결백을 입증할수 있었던건 깨어있는 프랑스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곽교육감의 결백을 밝히는것, 또한 우리들의 몫일겁니다. 진실과 정의는 고통을 먹고 사는 잔인한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은 진실이 승리한다는것을 믿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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