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한국을 잘아는 프랑스인 만나면 당황하는 순간이 있다.

파리아줌마 2011. 11. 4. 07:35

살아온 날들의 반을 프랑스에서 보냈지만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관습과

정서, 특히 어린시절부터 먹었던 음식의 맛을 쉽게 잊을수는 없습니다.

 

너무 사소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수 있는 음식이 외국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은 만만치 않습니다. 얼마전 이웃 블로거님께서 소울푸드라는 책을

소개해 주신 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음식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그속에 이야기와 추억, 사랑이 깃든 삶의 원동력 같은것이라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흔적이 담긴 음식들을 이역 만리에 떨어져 살아

쉽게 접할수 없기에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한 애틋함마저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특히 뿌리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는 임신 시기까지 거치면 조금 더해집니다. 큰아이를 가지고 미친듯이

한국 토속적인 음식이 그리운 입덧을 거치고 나니 이상한 식탐이 생겨버렸습니다.

 

주기적으로 얼큰한 국물을 곁들인 식사를 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것을 많이 먹어도 헛헛하기만 합니다.

이건 음식이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겠지요. 그리운 사람과 함께 먹었던 음식을 먹고 나면 영혼의 구멍이 하나 메꾸어진 느낌이 든답니다. 

 

처음에는 바게트에 버터만 발라 먹어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부드러운 프랑스 빵안에 들어있는 까만 초콜렛이 팥앙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허무한 생각을 한동안 했었습니다.

 

초콜렛을 들먹이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남불로 한인 가정과 함께 휴가를 갔습니다.

숙소 테라스에서 가져온 짜파게티를 끓여먹고 있으니 지나가는 프랑스 아이가 보고는 엄마~ 저 사람들은 초콜렛 크림으로 스파게티를 해먹나봐 라고 하더군요.

 

짜장 소스를 모르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색깔만으로 초콜렛 크림을 연상하게 합니다. 저는 초콜렛 크림이 단팥 앙금이었으면 했는데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초콜렛, 짜장소스, 단팥이 색깔이 모두 비스무리합니다.

 

한국식 목례는 프랑스인 대하며 잊어버린지 오래, 그런데,,,

 

음식은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더할수록 한국것을 찾는듯합니다. 그런데 몸에 익힌 한국 습성을 버렸던것이

있습니다. 이른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문구를 충실히 이행한것이지요.

 

아직도 어색하지만 프랑스인들의 뺨맞대는 인사는 잘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한국의 목례는 프랑스인들을 대하면서는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들이 뻗뻗하게 사람 얼굴만 보고 봉쥬르~하는데 고개 숙일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모를 일입니다. 몸에 배인 습성이라 처음 한동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숙여 프랑스인들에게 인사했을수도 있을겁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딸아이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멀리 있는 프랑스인에게는 고개숙여 인사를 한답니다.

이는 도서관 아저씨가 일러준것입니다. 거리에서 딸을 보았는데 자기에게 머리숙여 인사하더라며 아주 기분 좋아하며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딸에게 물어보니 멀리 있으면 말로만 하면 잘 안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고 있다는것을 알게 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음악 학교 오디션 같은데서 연주한뒤에 고개숙여 인사하는 프랑스 아이들 보면 정말 어색합니다. 선생님이 시켜서 억지로 하기는 하는데, 고개를 숙여보지 않은 아이들이라 자주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상대에 대한 예의와 겸손의 마음을 가져보는것이 우리의 목례일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 아니고는 같은 세대의 한인들끼리는 이런 목례로 인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을 잘알고 있거나, 한국에서 생활해본 프랑스인들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예의범절을 정통으로 익혔나 보더라고요.

 

그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나서 헤어질때 당황스러운게 깍듯하게 고개 숙여 목례를 하는것입니다. 저는 그냥 손한번 흔들며 바이바이~하는데 상대는 한국식 목례로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자세를 고쳐 손 모으고 같은 목례로 인사를 하게 됩니다. 사실 화들짝~ 놀랄 때가 몇번 있었습니다. 

 

지난 9월 파리의 한가위 축제때 만난 프랑스인, 유네스는 한국에 있다가 휴가를 보내기 위해 프랑스로 왔고, 직장을 구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되는데 한국말을 가르쳐줄 교사를 찾으려 왔던것입니다. 한국말을 꽤 잘하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차렷 자세를 하더니만 구십도 각도로 머리를 숙이길래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저는 프랑스 사람이라 가볍게 인사하려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를 프랑스인으로 보았고, 그를 저를 한국 사람으로 보고 예의를 갖추어준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국의 전통 무술인, 택견을 알리고 있는 쟝 세바스티앙도 헤어질때는 무술 시범을 보일때 하는것 같은 인사를 합니다. 그순간은 저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합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그들 또한 한국이라는 로마법을 따르고 있으니까요.

 

지난 일요일 파리의 어떤 한류팬이 준비한 플래쉬몹에 모인 소녀들을 보고는 저는 당연히 봉쥬르~하며 다가갔는데, 그들은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더군요. 잠시 놀라면서 저도 고개숙여 인사하고는 함박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을 아는 프랑스인을 만나면 제가 먼저 목례로 깍듯하게 인사하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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