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병선 박사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오늘[25일] 고 박병선 박사님의 장례미사가 파리에서 있었습니다.
남편이 함께 가자고 하길래 따라 나섰습니다.
어제보다 훨씬 쌀쌀해진 파리의 아침은 누군가를 영원히 떠나보내야
되기에 더욱 처연스럽기만 했습니다.
파리지엔들이 즐겨찾는다는 백화점, 봉 마르쎄 바로 앞에 있는 교회에서
박사님의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주소를 잘못 알아 10여분 늦어
발걸음 종종 거리며 교회안으로 들어갔습니다만 그와중에도 성탄절을
맞기 위한 상가들의 화려한 조명 빛이 참 속절없이 느껴졌습니다.
박사님의 운구를 모시고 온 검은 차가 교회 마당에 있었고,
교회안으로 들어가보니 처음에는 그리 많은 이들이 온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차츰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더군요.
장례 미사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사도직 총무인, 심 탁 클레멘스 신부 집도로 진행되었습니다.
파리에서 장례 미사를 하는 것은 고인의 뜻이었답니다.
신부님 강론중에 외규장각 의궤를 약탈 당했던 병인양요가 일어난 배경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1663년에 외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파리외방선교회입니다.
이 교회 소속이었던 프랑스 신부들 13명은 조선의 복음을 위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중 9명이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때 순교했습니다.
이사실을 안 중국에 주둔해 있던 프랑스군은 보복하기 위해 군함을 끌고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나 무력을 행사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갔습니다.
그리고 145년이 지난 오늘 이 교회에서 외규장각 도서에 반평생을 바친 박사님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간의 이 역사의 묘함을 어떻게 설명해야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복과 약탈, 그리고 빼앗긴 우리것을 찾고자 했던,
그 모든 소용돌이속에 박병선 박사님이 계셨습니다.
또한 한세기 반 이전에 있었던 두 나라의 역사를 정리했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역사의 한가운데 박사님께서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는것, 그것은 꼭 기억하렵니다.
박사님의 육신을 모신 작은 운구를 보니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살자는 제목의 강론을 끝내고 성찬이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평소에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좋아하셨답니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이 파이프 오르간 음률로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헌화 행렬이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박사님의 동생분이 헌화하고는 눈물 지으십니다.
박흥신 주불 대사
이 분은 운구를 붙들고 통곡하셨습니다.
헌화 행렬이 끝난뒤 이종수 문화원장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연구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회고하면서
빈소가 마련된 문화원의 조문록에 남긴 인상 깊은 글을 소개하면서 증언을 마쳤습니다.
박사님 보고 계시죠? 라는 문구로 시작된 글은 우리가 이제 알아서 잘할테니깐 편히 쉬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오신 박사님 동생분의 감사 인사가 있었습니다.
누이는 주님께 1년 아니면 2년만 시간을 더 달라고, 쓰고 있던 책을 마치고 싶다고 했는데,
주님은 이제 그만하고 오라고 하셨다면서,
미리 떠나신 부모님과 형제들 곁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 하고는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가족은 미국에서 오신 동생분과 조카, 그리고 파리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의 아들 내외였습니다.
그분이 박사님 영정 사진을 들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장지로 떠나기 위해 운구를 차에 싣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분들은 운구 차가 떠나는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차가 교회문을 빠져나갔습니다.
박사님 동생분입니다. 떠나는 차를 보고 한참을 서 계셨습니다.
파리 외곽의 장지까지 가는 이들을 위해 버스를 대절해 두었다고 합니다.
오늘 파리 장례 미사에는 100여명 정도가 참석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많이 없는 외로운 장례식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많은 이들이 참석해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욥 1.21]
박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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