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외규장각에 반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 파리에서 영면

파리아줌마 2011. 11. 24. 08:22

오늘 아침[수요일]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박병선 박사님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제 밤, 파리 15구의 병원에서 83세로 일기를

마치고 떠나셨습니다. 얼마전 남편으로부터 병환이 깊어져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타계소식을 듣고는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알기에 가슴이 아프게 저려왔습니다.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해도 될런지요? 올 봄 외규장각은

145년만에 고국으로 돌아갔고, 한평생을 독신으로 지내시며

나라의 잃어버린 역사의 한부분을 찾아 연구하신 분은

몇달뒤에 영원한 길을 떠나셨습니다. 마치 당신이 해야될 큰 일을

이루고 난뒤 이제는 내려 놓아도 되는냥 그렇게 가셨습니다.

 

하지만 박사님은 외규장각의 소유권이 프랑스에 있는 영구 대여의 형식으로돌아간것에 많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조금만 신경썼더라면 온전히 돌아갈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답니다. 그때는 너무 무심했다고요, 너무 무심했어요 라고 한탄하셨습니다. 

 

 

                                                                                                                  파리의 한국 문화원에 마련된 빈소

 

박사님은 올봄부터 떠날 준비를 하셨던것 같습니다. 지난해 한국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고나서 연구를 위해 다시 파리로 돌아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동포 언론지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과 두차례에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간에 있었던 모든 고충과 설움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직지 고증과 외규 장각 도서를 찾고, 연구하면서 겪었던 일을 심한 추억이라고 하셨습니다. 

 

관련글 : 외규장각 찾은 박병선 박사의 못다한 이야기

 

            외규장각 찾은 박병선 박사 인터뷰

 

 

은사의 부탁으로 파리에 있던 외규장각을 찾아 나라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외로운 연구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파란색 표지인 외규장각 의궤에 온종일 파묻혀 연구하는 그녀를 보고 프랑스인들은 파란책속에 파묻혀 있는 여성이라고 불렀답니다. 1979년에는 한국에 외규장각을 알렸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아 도서관 사서일을 그만두기도 했었습니다. 

 

반평생 연구에만 몰두하여 큰 업적은 이루었지만 그분은 후회하는게 두가지가 있답니다, 하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교수제의가 들어왔을때 받아들이지 않은것이랍니다. 그분이 선택한 삶이었습니다. 만약 박사님이 결혼을 하고 한국의 교수 제의에 응하셨다면 외규장각 의궤의 운명은 달라졌을까요?...

오늘 박사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자식과 손주들이라도 곁에 있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오늘 빈소에 다녀온 남편은 외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 파리의 한국 문화원에 빈소가 마련되었습니다. 대사관의 영사와 참사가 상주격이 되어 손님들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꽃이 도착하지 않아 썰렁했는데, 오후가 되어 조화가 도착했고, 파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및 동포들이 조문을 왔다고 합니다.

 

남편이 담아온 빈소 풍경입니다.

 

                                                                                              파리의 한국문화원에 마련된 박병선 박사님의 빈소

 

 

 

 

 

박사님의 마지막 소원은 파리의 독립 기념관 건립이었습니다.

1919년 1차대전이후 강화 회의가 열린 파리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 있던 우리에게는 기회였습니다.

김규식 선생을 비롯한 우리 대표단은  파리 9구, 샤또덩 38번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차리고

조국의 독립 승인을 위한 외교 활동에 심혈을 쏟았습니다.

 

이장소를 찾은 분이 박병선 박사님이십니다. 이곳을 발견한 박사님은 주불대사관과 함께 현판을 달기 위해 애써왔는데 건물주의 반대로 진전을 이루지 못하다 파리9구 구청과 외교부들에 수차례 건의한 끝에 승인을 받아 현판을 걸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06년으로 한불 수교 12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박사님은 그자리에 독립기념관이 세워지기를 바라셨습니다.

 

비록 독립 기념관이 건립되는것은 못보고 가셨지만 파리에는 독립기념관 건립 추진 위원회가 설립되어 그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인의 뜻에 따라 25일, 금요일 파리 7구에 있는 외방전도교회에서 카톨릭 장례미사가 있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국민묘지 안장을 추진키로 하고 국가 보훈처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국립묘지 안장이 확정되면 고인의 유해는 현지에서의 장례 절차를 마친 뒤 한국으로 간다는군요.

 

외규장각과 함께 박사님도 한국으로 돌아가시는거겠지요. 그분이 바친 열정과 노력을 역사는 영원히 기억할것입니다. 고단했던 박사님의 영혼이 고국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존경하는 고 박병선 박사님 영전에 드립니다.
 
 삼가 고 박병선 박사님의 소천에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그토록 하고 싶은 일이 많으시고 
생전에 이루어야 할 일이 많았기에
성치 않으신 몸으로도 오로지 글 쓰시는 일에 몰두하여 오셨는데...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2권"의 탈고를 못하시고
출판도 못보시고 어찌 눈을 감으셨나요...

 

이제, 이 세상 모든 고통과 염려 근심
그리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 다 내려 놓으시고
천국에서 평안한 쉼을 누리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못다하신 일, 남은 일들은 저희 후손들이 이어 갈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을 기원드립니다!!
평안히 잠드소서!!! 
 
 
-파리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