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한국 포장마차 주제로 논문 쓰는 프랑스 여대생을 만나다

파리아줌마 2012. 4. 9. 06:31

얼마전 페이스북에서 소르본 대학에 다니고

있는 여대생이 한국의 포장마차를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며 도움을 구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프랑스 여대생이 우리 포장 마차를 논문으로

쓴다고 하니 흥미로워 한번 만나 보고 싶어서 선뜻

도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을 떠나온지 오래되어 저에게 포장마차는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진작 한국에 있을때는 별로 간 기억은 없지만

왠지 그리움과 애잔함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 여학생의 글에 더욱 끌렸던것입니다.

파리에 있는 한국인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만났습니다.

포장마차에 대한 도움과 함께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간단 인터뷰를 제안 했더니 좋다며 응해 주었습니다.

 

지난 토요일[7일] 한국어 수업이 마칠 즈음 사무실로 들어선 로리안은 휜칠한 키의 늘씬한 프랑스 아가씨였습니다. 여대생답게 살짝 화장을 한 모습이 참하고 예뻐 보이더군요. 부드럽고 순해 보이는 아가씨였습니다.

 

 

포장 마차를 주제로 논문 준비중인 소르본 대학원생,로리안

 

22살의 로리안[Loriane CAILLER]은 지금 소르본 대학의 음식 문화학과 마스터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니깐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학원인셈이지요. 소르본 대학에 음식 문화학과가 생긴지는 2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케이팝 팬이냐니깐 팬이라고 하지 않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고 합니다.

로리안은 케이팝 보다는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와 역사등, 다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케이 팝은 한국의 한부분일 뿐이고 더 많은것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한국 포장마차에 대해 도움을 줄수 있는게 단지 감성적인 부분밖에 없더군요, 어린 시절 향수, 추운 겨울,,,,

또한 포장마차에 대해서 불어와 영어로도 소개가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리 인터넷 검색으로 그 유래에 대해 알아보고는 로리안과 함께 보면서 번역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저 또한 우리나라 포장마차의 유래에 대해서 알수 있었습니다. 잠시 설명을 하자면요, 우리나라 포장마차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답니다. 마차에 광목천을 두르고는 참새 구이와 소주를 팔았답니다. 그러다가 경제가 부흥되기 시작했던 1970년대부터 성행했다고 합니다.

 

포장마차라 함은 서민들의 지친 삶과 애환이 서려져 있는 곳이었죠. 세상사에 치여 하루를 보내고난뒤 포장마차에 들려 소주 한잔 들이키며 언 마음을 녹일수 있는곳, 주머니가 가벼워도 부담없이 들릴수 있는곳이었다는것을 설명해주는데 저 또한 짠~해져 오더군요. 그때는 소주를 반병만 시켜도 오이와 당근, 초고추장 같은 안주는 무료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때 대규모 철거 작업에 들어가면서 많이 사라졌다더군요.

그리고 다시 일기 시작한것이 외환 위기였던 1997년이었답니다. 퇴출 당한 임금자들의 안식처가 포장마차였답니다. 그때부터 포장마차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고, 1만원대의 안주를 파는 대중식당으로 변모해갔다고 합니다.

 

포장마차는 한국의 상징 같아 

 

로리안은 코리안 커넥션 회원으로 현재 한국 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곧잘 읽고 쓰더군요.

 

지난해 4월에 2주동안 한국 여행을 했답니다. 서울과 부산을 다녀갔는데 통도사에 가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DMZ에 가볼 예정이었는데 문제가 있어 가보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로리안은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 드라마를 접하게 되면서 아시아 언어를 공부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중국어는 너무 복잡했고, 일본어는 별로였으며, 한국어가 가장 좋았다고요.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로리안에게 한국의 포장마차는 잔치집 같은 따뜻한 분위기였답니다. 제가 지저분하고 어수선해 보이지 않았냐고 하니 지저분하기는 파리가 더하다고 하길래 함께 웃었더랬습니다.

 

포장 마차는 한국을 관광하러온 외국인들에게는 인상적일것이라고 합니다. 로리안에게 포장마차는 한국의 상징 같았답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때 한국의 이미지 때문에 포장마차를 철거했다고 하는데, 우리 포장마차에서 좋은 느낌을 받아 논문까지 쓰고 있는 외국인이 있습니다.

 

로리안은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매운것도 잘 먹는다고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냐고 하니, 한국에서 먹은 오징어 바베큐가 아주 맛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의 길거리 음식과 연관 시키고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시장에 가서 노전에 파는 튀김을 사먹었던것, 그리고 학교 앞 담벼락에서 설탕 녹여하는 뽑기, 또한 그옆 포장마차에서 납작 만두를 팔았던 아저씨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뽑기와 시장 노전 음식은 저의 엄마가 비위생적이라 무척 싫어했다는 것까지요..

특히 뽑기는 부스럼 난다며 협박까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로리안은 포장마차의 닭발은 도저히 못먹겠더랍니다.

 

4월 말에 파리에서 있을 코리안 커넥션 페스티발에 포장마차 부스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이번에는 안될것 같다며 다음번에는 꼭 준비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로리안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적인 한계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케이 팝과 드라마가 아닌 우리 포장마차에 대해 프랑스 젊은이와 이야기 나눌수 있어 아주 좋았답니다.

 

요즘 포장마차는 원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버린듯합니다만, "비닐 한 장으로 세상과 구별된 그곳에서 노동자들은 ‘전쟁 같은 밤 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에서)를 붓고, 서민들은 ‘가슴 밑바닥의 이야기, 혼자 견뎌내는 이야기, 서로의 생을 묵묵히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임영태 ‘포장마차’ 중에서)를 나누는 곳" 이었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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