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가족 협회 파리지부장,
자비에 카로[Xavier CARO]씨를 만나다.
가족의 힘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위해 한국에서온 피디님과 프랑스
이웃 축제의 창시자인 아타나즈 페리팡씨 만났던 것을 지난주에 글을
올렸고, 오늘은 프랑스 가족 협회, 파리 지부장을 맡고 있는
자비에 카로[Xavier CARO]씨에게 들은 프랑스의 출산 정책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피디님은 사람들에게 가족에 관한 방송을 기획하기 위해 프랑스로 간다고
하니, 그곳에서 무엇을 가져올수 있냐며 의아해하더랍니다.
그간 한국에 알려진 프랑스 파리라면 콧대 높은 독신의 파리지엔이
밍크 코트를 입고는 하얀 털복숭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도도하게 턱을 내젓는 모습을 떠올리곤 할것입니다.
여행을 하고 가더라도 이런 관념은 쉽게 바뀌지는 않을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릅니다. 부부 중심의 문화에다가, 가족을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지요.
더군다나 오랜 출산 장려 정책으로 이미 유럽내에서는 아기 챔피온이 되었습니다.
탁아소에도, 유치원에도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한국에서는 저출산을
극복한 나라로 프랑스를 본으로 삼으며 관련자들이 이곳을 다녀가곤 했습니다.
프랑스 가족협회의 파리지부장, 자비에 까로[Xavier CARO]씨
제가 피디님과 함께 가본 프랑스 가족 협회 파리지부에도 한국 방송사가 인터뷰를 위해 다녀갔다고 하더군요.
프랑스 가족 협회 파리 지부장을 맡고 있는 자비에 카로씨는 한국인이 왜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가족협회는 비슷한 형태로 19세기말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세기 초에 프랑스 정부는 가정이 공화국 제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3월에 프랑스 정부는 본격적인 가족 협회를 만들었고, 1975년에 더욱 강화시켰으며, 현재 국가 가족 협회 아래로 100개의 지역 가족 협회가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가족들은 첫순위의 진정한 사회, 경제적 배우들이고, 나라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겼답니다.
그러니까 가족의 힘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았다는것이지요.
가족 협회에서 하는 일은 가족에 관련된 물질적, 정신적 잇점을 고려해서 정책을 수립하는것이라고 합니다. 가족 수당도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가족의 잇권에 관련된 법정 공방에도 관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비에씨로부터 프랑스의 출산 장려 정책의 발단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좀 황당하기도 했는데요, 제가 그간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알아보니 20세기초부터 꾸준한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점쟎은 자비에씨는 웃으면서 프랑스의 출산 장려 정책의 발단은 1차 대전 이후 많은 프랑스 군인들이 사망하자 군인들을 양성하기 위해 시작했다는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1차 대전으로 젊은 남성들이 사망하게 되자 나라를 지킬 남자들이 필요했던것입니다. 처음에는 좀 우습고 황당했는데 이해가 되더군요. 어쨌든 프랑스는 지금의 출산률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비에씨는 가족협회에서는 가족들을 위한 여러 방침들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의 하나로 파리의 가족을 위해 제작한 프로그램 하나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제목은 가족의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나이층으로 구성된 가족들 모두를 만족시키며, 그야말로 좋은 순간을 보낼수 있는 활동을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 조사끝에 뜻을 모을수 있었던것은 매스미디어 자료관이었다고 합니다.
CD를 듣거나, DVD를 보며 그나마 세대를 아우를수 있는 장소라고 하더군요.
시청의 가족 담당 보좌관에게 들은 프랑스 저출산 극복의 원인은?
제가 사는 지역 시청의 가족 담당 시장 보좌관인 베로니크 베르저롤[Véronique Bergerol]씨로부터 프랑스 저출산 극복의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는데, 하나는 가족 수당이었습니다. 이는 가족 협회의 자비에씨도 일컫었던것으로 정부에서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주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시청에서 탁아소부터 유치원의 보호반과 초등학교 방과후 학습까지 맡아주는 등, 아동 보호 제도가 잘되어 있어 여성들이 일과 자녀 양육을 함께 병행해 나갈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일반의 의사이기도 한 베로니크씨는 가족은 신뢰로 뭉쳐져 있지만, 그안에서 여러 문제들이 일어나는 모순적인곳
이라고 하면서 가정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인내라고 하더군요.
장성한 자녀 셋을 둔 엄마인 베로니크씨는 아이들이 어렸을때는 함께 일하는 의사가 많은 부분을 맡아주었고, 아이들이 자라고 나니 이렇게 시청일도 하고 있다며 시원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베로니크씨의 사진이 없어 좀 아쉽네요.
이번 가족에 관한 인터뷰를 하면서 만났던 프랑스인들 모두 자녀가 셋, 넷이었습니다.
이웃 축제 창시자인 페리팡씨는 자녀가 네 명이었고, 가족협회의 자비에씨는 세명, 시장보좌관도 세명이라고요~
프랑스는 사회 발전의 가장 원천적인 역할을 하는곳이 가정임을 알고 오래전부터 정책을 펼쳐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혼을 하고,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낳아 키우기도 하지만 결혼한 이들과 같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옛날에 군인을 키우기 위해 시작했다는 프랑스의 출산 장려는 발전하여 이미 저출산을 극복했으며, 저출산을 걱정하는 나라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다면 손가락 모양의 추천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필요없습니다.
'사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규장각에 반평생을 바친 박병선 박사 파리에서 영면 (0) | 2011.11.24 |
---|---|
영부인보다는 인권 운동가였던 다니엘 미테랑 세상을 떠나다 (0) | 2011.11.23 |
누가 프랑스인을 개인주의적이라고 했던가 (0) | 2011.10.24 |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한국 전통 미술을 알리는 손차룡 작가 (0) | 2011.09.02 |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의 혼이 서려있는 독일 루르지방에서 (0) | 2011.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