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에서 여성 참정권이 늦게 주어진 이유가 황당해

파리아줌마 2012. 1. 17. 08:18

얼마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지 않고 앉아있던

고등학생 딸아이는 예전에 프랑스가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날 시민교육 시간에 배운 테마였는데, 나름 인상적이었는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흥미있게 들었습니다.

 

그옛날 프랑스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들중의 하나가

여성들은 전쟁에 나가 나라를 위해 싸울수 없다는것이었답니다.

그러다가 기술의 발달로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전쟁시에도 공장에

나가 무기를 만드는 인력이 되었다는것으로 참정권에 대한 재고가

있었다는겁니다. 그러다가 서구 나라들에게 가장 늦은 1944년에서야

프랑스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던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19세기까지 프랑스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책임이나 신뢰가 가질수 없다고 생각했다는데요,

그이유가 남성들 보다 감정에 더 종속되어있기 때문이랍니다.

거기에는 그럴듯한 생물학적인 근거까지 있었습니다.

 

매달 한번씩 마법에 걸린다는 여성들의 생리가 그 원인이었답니다.

남성들은 그런 주기를 겪지 않으니깐 감성적이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생리 주기에 따라 쉽게 감정이 변하는 여성들을 믿을수가 없었다는것입니다.

 

1900년 여성 참정권 반대 캠페인 그림 엽서를 보면, 우아한 차림을 한 아름다운 여성이 <나~, 나는 가장 잘생긴 후보에게 표를 줄거야>하고 투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남성과 다른 여성의 신체적인 특성을 부인할수는 없지만 그런 이상한 논리를 가져다 붙인 20세기초의 프랑스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지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2백여년전 시민의 힘으로 왕을 물러서게 만든 급진적인 나라, 프랑스에서 왠 어긋진 소리인가 싶지요.

 

과거 이야기라서인지 선생님은 담담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셨고, 아이들도 별 동요없었는데, 아이 혼자 놀랐답니다. 그리고는 거부할수없는 신체 생리적인 이유를 붙여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막게한 프랑스 남자들의 의도는 다름 아닌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자리를 여성들에게 빼앗기기 싫었던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이건 남녀간의 문제를 떠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입니다. 더 많이, 오래도록 가지고 누리고 싶어하는 힘있는 자의 욕심이자, 횡포라고 할수 있겠지요. 

 

프랑스 혁명과 여성

 

제가 주목하고 싶은것은 프랑스 혁명과 여성과의 관계입니다.

당시 여성은 절대 왕정의 이중적인 희생자였습니다. 혁명에서 나온 인권 선언에는 남녀의 동등한 권리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민으로서 인정받을수 없었던 당시의 여성들은 정치결사에도 참여할수 없었기에 따로 정당을 만들어 각종 청원서를 국민의회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1792년 9월 법에서는 남편과 아내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였고 민사상의 소송 절차에서도 남녀 모두에게 공평히 적용하도록 규정되었으며, 1793년에는 공유지의 분배권리와 친권행사 권리가 확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온건파가 혁명의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그들은 혁명이 완수되었으므로 여성들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이유도 박탈에 의한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또한 1790년대 초반 여성의 청원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졌던 의원들마저 여성들의 요구에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였으며 이와 같은 인식은 당시 남성들에게 일반적인 것으로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절대 왕정이라는 억압의 고리를 끊은 프랑스 시민들이었지만 여성에 대한 시선은 열악하기만 했습니다.

 

당시 <여성공민권의 승인>을 발표해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했던 구즈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1차 대전 직후 프랑스 하원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을 통과시켰으나, 결국 급진당이 주도하는 상원에서 거부되었다고 합니다. 급진당은 여성들이 카톨릭 교회의 영향을 받아 보수 후보들에게 몰표를 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프랑스 혁명에서의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급진당의 반대로 참정권이 무산된 모순적인 과정을 보면서, 오늘날 진보를 외치는 한국 사회의 남성들이 가지는 여성에 대한 인식도 의심해보게 됩니다.

 

힘없던 약자였던 프랑스 여성들은 끊임없이 투쟁하여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이렇게 어렵게 가진 여성 참정권인데 요즘 여성들은 투표를 안하려고 한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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