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프랑스의 미혼모, 부도덕에서 위풍당당녀가 되기까지

파리아줌마 2012. 2. 16. 07:23

지난주 어느 늦은 밤시간, 항상 그렇듯이 다음뷰로 글을 송고하고 나서,

다음 메인에 있는 미혼모 관련 기사를 클릭해 보았습니다.

 

낙태, 입양 욕하면서 아이책임지는 미혼모는 왜 죄인 취급하나요

라는 기사였습니다. 

 

27개월된 남자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공부하는 22세의 여대생

이야기였습니다. 양육비를 벌기 위해 온갖 알바를 하면서 아이가

자고 나면 공부해서 장학금까지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를 함부로 낙태할수도 없었답니다. 남자 친구는 처음에는 출산에

동의했다가 경제적인 압박감이 생기니 입양보내라고 하고는

사라졌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낙태도, 입양도 하지 않고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그녀의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딱 한번 양육을 포기하고 싶었을때가 있었는데, 아이를 업고 외출한 날, 아이가 심하게 칭얼거리니 어떤 할머니가 "애가 애를 키우니 말세야 말세"라는 이야기를 들었을때였답니다.

 

그녀가 힘든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몸의 고단함이 아닌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이라고 합니다.

본인을 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더 견디기 힘들답니다.

 

이런 편견의 분위기는 일상이랍니다.

이 모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소곤거리는 축은 그나마 양반이고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늦은 밤에 글을 읽고는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할수 있는지, 그런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는지 정말 의심스럽더군요.

 

지난 해 프랑스로 입양온 한국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미혼모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프랑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오늘 다시 읽어보니 우리나라에 아직도 만연한 미혼모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에 대해 꽤 비판을 했더군요.

 

프랑스 엄마들의 절반 이상이 미혼모

 

프랑스는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속해서 아이를 가지는 경우보다는 혼외 출산이 53%를 차지한답니다. 그러니 프랑스에는 미혼모들 천지인것이지요. 

 

예전에 동거하다 딸을 두고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어떤 프랑스 남자에게 저 또한 아이가 학교에서 괜찮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학교 반에 많은 아이들이 그런 상황에 있기 때문에 문제될게 없다고 하더군요.  2007년 대선에서 사르코지와 경합을 벌인 사회당 여성 대통령 후보인, 세골렌 루와얄은 사회당 당수인 프랑소와 올랑드 사이에 네 자녀를 둔 미혼모였습니다. 대선에 패한뒤 둘은 헤어졌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2백년전인 나폴레옹 시대부터 미혼과 기혼 자녀의 구별을 해오다가 2006년 7월 법적인 구별을 폐지했답니다. 왜냐하면 혼외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깐 자녀를 가지게 되면 여성의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부모가 되고, 가족 수당, 자녀 양육 수당, 출산과 육아 휴가를 받고, 미혼모 가정 자녀에게는 요보호 아동 수당과 한부모 가족 수당이 또 지급된답니다. 하지만 미혼 남자가 자녀와 관계를 인정받으려면 공식 절차를 거쳐야된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있는 미혼모-고아-입양으로 연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1940년 프랑스의 미혼모는 부도덕녀

 

그러니 프랑스에는 엄마만 있지 미혼모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프랑스가 처음부터 결혼않고 아이 가지는 여성들에게 관대했고, 지원정책이 있었던 것이었을까요? 아니더군요.

 

미혼모에 관련된 김선주 한겨레 논설위원의 글을 인용합니다.

 

전쟁의 암운이 깃든 1940년 여름의 프랑스, 미혼모에 대한 인식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몸속에 낯선 몸뚱이가 자라나는 데 대한 소름끼침, 경솔했던 자신에 대한 저주,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리라 믿었던 자존심의 상처,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미혼모가 된다는 데 대한 두려움에 오직 아이를 없애겠다는 생각만 하였다고 한다.

 

미혼에다 수입도 없으니 낙태를 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렸지만 위로 대신 “프랑스의 불행한 정치상황이 당신같이 부도덕한 여자들의 행실 때문”이라는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뜨개질 바늘, 양잿물 등 최악의 민간요법을 시도했으나 헛일이었다.

 

프랑수아즈 지루는 그러나 살아남았다. 가난 때문에 의과대학을 포기하고 열네살에 속기술을 배워 직업전선에 나갔고 시나리오 작가와(마르셀 파뇰의 <파니>가 첫 작품이다) 조감독, <엘르>의 편집장을 거쳐 2차대전 때는 레지스탕스 활동도 한다.

 

프랑스 좌파를 대변했던 <렉스프레스>의 공동창간자이자 편집주간으로서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필력을 휘둘렀던 그는 여성에게 배타적인 프랑스 정계에 여성파워를 일으킨 당사자로 여성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한 여성의 삶이 치열해지려면 온갖 차별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은 현실에 안주해서 살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볼 때마다 바늘처럼 나를 찌른다.

 

지금부터 72년전 프랑스의 미혼모는 부도덕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극히 정상이고, 대중화되기까지

하여 위풍당당녀가 되어 아이와 함께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거쳤겠지요.

프랑스의 경우를 들자면 우리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려면 70여년을 기다려야하는건지요~?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자녀를 두고 살아가는게 좋을것입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들이 생길수 있지요.

그런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건지~ 한국의 미혼모들에게 온갖 차별의 최전선에 서서 치열한 삶을 살아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3자인 우리들이 할수 있는건 편견을 거두고, 아이 책임지는 미혼모를 죄인

취급하지는 말아야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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