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Ô (오천룡 화백) 인터뷰. 선-색-여백

파리아줌마 2018. 4. 6. 07:56




작가의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 이미지를 충분히 보고 찾아간 작가 아뜰리에 였다. 작가의 작품을 본 순간 첨단 기술을 통한 가상의 세계가 얼마나 공허하고 한계적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본 작품은 다분히 입체적이었고,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듯 했다.


1971년에 도불하여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Ô (오천룡 화백) 의 아뜰리에를 찾았다. 그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서양 그림이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며 프랑스 파리로 왔다. 이후 그랑드 쇼미에르를 거쳐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의 아뜰리에에 있는 작품들을 함께 보면서 Ô는 작품 의도와 기법 등을 설명했다.


60년 동안 작품 활동한 그가 시도한 다양한 작품들이 아뜰리에를 채우고 있었다. 이는 Ô 한 곳,  한 기법에 머물기 보다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그는 기법이 달라지는 것은 어떤 기법에 매달리다가 싫증을 느끼면 거기서 떠나고 싶으니깐 그것을 어떻게 떠나야 할지 무척 고민을 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들을 시도를 해보고 경과를 살려서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는 거라고 한다. 그게 그에게는 주기가 7,8년마다 왔던 것 같다고 하면서, 달라진 기법의 작품들을 질적인, 혹은 미학적인 차이로 봐주기를 원치 않았다.


Ô 가 작업을 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색상의 가치를 최고로 살리는 것'이었다. 아래 글에서도 색채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된다.  


2005년부터 색을 생략한 선 작업으로 암시의 효과 추구


색상의 가치를 최고로 살리는 작가가 색을 생략하고 선 작업으로 가기까지 에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되었다. 한국에서 추상 미술을 했던 Ô는 파리에 도착해서 미술학교를 다시 다니고 구상에 관심을 가지고 구상 작업을 했다. 그는 제일 먼저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추상화에서 색채를 많이 사용했던 것처럼 구상에서도 많이 썼다. 한때 그는 색채를 정리하기 위해서 선에 관심을 두고 색채를 없앤 무채색으로 그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색채를 많이 쓰다가 무채색으로 하니까 좀 슬프고 침울해 보여, 다시 색채가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풍경에 선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4년 작업에서 선을 가지고 색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선이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참 어지럽고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의도로 했는지 모를거에요. 선을 집어 넣어보니 그림이 완성되는 느낌이 나더라고요. 이후 선을 넣은 풍경 작업을 열심히 했어요.’’


그는 2005년부터는 물체 색을 생략하게 된다. 예를 들면 그의 작품에 있는 바이올린은 그 색이 없고 선만 있다.  윤곽 작업이다. 채색은 없다. 이에 대해 Ô는 암시라고 했다.  화폭 속의 오브제들의 색깔을 생략하고 선을 통해 물체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야채인 가지의 보라색으로 선을 칠하고 그 선 안에 검은색을 다시 선으로 그려넣었다. 그런데 그가 물체 색을 선으로 입히고 그안에 다시 선으로 그려놓은 것은 모두 검은색이었다. 신기했던게 그 검은색은 선 작업을 한 물체색깔에 따라 다양한 색채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의 최근 작품인 선 작업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물체 색을 생략하시고 오로지 색으로 표현된 선 작업 안에 검은색을 다시 채워 넣으셨는데, 그게 선 작업을 한 물체 색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검은색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게 참 신기하고 오묘하네요.


-이게 바로 마티스가 이야기한 숙제에요 : 검은색이 흰색하고 있으면 확실하게 검은색으로 보이는데 고동색이나 노란색 안에 검은색이 들어가면 검은색으로 안보이죠.  마티스가 색은 혼자 있으면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없고 인근 색채와 섞여야 색의 진가가 밝혀질 것이라고 하는,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제가 개발한 기법이에요.


마티스 그림에서 사용한 윤곽과 세잔느의 그것이 다르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윤곽과 피카소의 윤곽은 또 달라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윤곽은 미술사가들이 이야기 하기를, ‘안개같이 스며든이라고 해요. 윤곽이 없어요. 모나리자의 형상에는 윤곽이 없어요. 입술을 그렸는데도 뚜렷한 윤곽이 없고, 입술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경계가 슬며시, 안개낀 것 같이 넘어간거에요. 다빈치는 윤곽을 생략한거에요. 윤곽이 없이 다른 단계로 넘어가며 안개처럼 사라지게 했어요. 그래서 모나리자 그림은 신비하다고 하는거에요. 윤곽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형상이 부드러우냐 해서 모나리자가 유명한거거든요.


피카소의 윤곽은 또 달라요. 모든 화가들의 작품의 윤곽이 달라요. 그 윤곽을 특징있게 한 작가들이 대가지요.  


그만큼 윤곽이 작가에게 중요한거겠네요.


-그렇죠. 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만의 윤곽을 만들어야 됐어요. 이것이 Ô Line 입니다.


그러면 Ô Line은 선과 색이 합쳐진 윤곽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 왜냐하면 흰색이 없이 검은색 선이 있다면 다른 이들 것과 다를게 없죠. 검은색만 있다면 그냥 단순한 뎃생, 소묘 죠. 그런데 저는 검은색을 물체 색 속에 넣어서 확실한 윤곽을 만들어 내었어요.


선 작품들에서 바탕색이 각각 아주 컬러풀한데요. 바탕색은 어떻게 작업하셨는지요 ?


-바탕색을 아주 중요시해요. 그 이유는 바탕색이 얼룩덜룩하면 선 작업이 잘 안보이고 어지러울거에요. 바탕색을 한 색으로 결정지어 놓고 그위에 표현은 물체 색에 따른 선 작업을 하고 그안에 검은색 선 작업을 다시한거죠.


색감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셨을 거 같습니다.


-바탕색 작업을 이른바, 밑바닥 일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밑바닥 일을 아주 열심히 합니다. 물감에서 나온 색깔이 아니고 제가 특별히, 여러 겹으로 해서 만든 색깔입니다. 노란색이 단순한 노란색이 아닙니다. 노란색 바탕 밑에 은근히 연두색이 배어 있기도 해요. 그 이유는 묘한 세계, 즉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최근의 선 작업 에서요, 물체 색을 생략하시면서 선 자체도 대략적으로 생략하신 것 같습니다.


-기타치고 있는 집시를 그린 작품을 보면요,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머리는 아예 그리지 않고 얼굴의 입술이나 눈만 암시해 놓고, 나중에 안 그린 부분도 느껴질 수 있게, 즉 암시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찾아내게 한 작업입니다.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는데도 기타치는 사람의 표정은 살아있어요. 이게 생략했기에 더 살아있게 보이는 건가요 ? 자세히 묘사하셨으면 덜 생동감이 있었을까요 ?


-. 자세히 그렸더라면 생동감이 덜 했을거에요. 기타치는 사람이 자기가 연주하는 음악이 뇌속에서부터 지시한 신경들에 의해서 기타줄이 튕겨지고 그 소리를 듣고, 기타치는 이가 음을 음미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게 생략했기에 가능한거에요. 저는 생략하는 것을 중요시 여겨요. 꼭 필요한 것만 하고 필요치 않는 것은 암시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거기서 멈추려고 해요. 그래서 보는 사람의 상상으로 더 자연스럽게 보도록 하는 단계에서 멈추는 거죠.


그런데 제가 어디서 스톱을 하느냐가 문제인데 그때가 제가 작품에 사인을 할때인데 그게 여기서 더 그리지 않고 멈추겠다는 뜻이겠지요.


손에도 표정이 있다.


2015년작 <Pipe>를 보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석고상에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파이프 담배를 피도록 연출한거에요.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석고상인데, 손과 파이프는 살아있는듯 하쟎아요 ? 석고상에 생명을 집어넣는 것 같은 느낌을 받도록 하면서 끝냈습니다.


최근에 제가 손에 관심이 많아요. 표정이라고 하면 얼굴 표정을 일컫는데, 사람마다 손에 표정이 있어요. 옛날 그림 보면 화가들이 손을 많이 그렸어요. 초상화를 그려도 항상 손이 나오고요. 그게 손에 표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손을 보면은 얼굴을 안봐도 어떤 상태인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람 인체 중 손에 표정이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손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 선 작업이라 집중력을 요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제 작업은 상당히 결정적이어야 됩니다. 그리다가 틀리면 지우고 다시 할 수가 없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작업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죠.


이후 Ô의 이전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보다는 프랑스에서 더 많은 시간 동안 작업을 하신줄 압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선생님 풍경 작품들을 대할때 한국 작가가 그린게 아닌 것 같은 개인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오래 사셔서 그런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나뭇잎 작업을 했는데, 굉장히 열심히 했고, 저 나름대로의 세계를 찾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나뭇잎 작품으로는 전시를 한번도 못했어요. 8년을 나뭇잎 작업에 정진했는데 지치더라고요. 그때 붓을 꺾고 놀았어요. 6개월을 놀았더니 노는게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붓을 다시 잡느냐 싶어 고민을 했었어요. 나뭇잎을 그릴때에는 생각을 하고 구성을 하는 절차를 밟았는데, 그러니깐 나뭇잎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상황에서 나온 작품들이라면 풍경은 보이는 데로 쉽게 그린거에요. 제가 파리에 온 이유가 서양화가 뭔지, 옛날 작가들이 어떻게 그렸는지를 관찰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파리에 와서 제가 그동안 하던 작업을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깐 저는 한국 작가로서 서양작가들의 본질을 연구했어요. 그래서인지 모르지요.


그리고 제 그림은 서양화지만 한편으로는 서예 필치가 제 그림에 스며있어요. 서양 사람들은 흉내낼수 없는거죠.


한국에서 화백님은 추상 화가로 학부를 마치셨는데 파리에 오셔서는 구상을 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 저는 파리에서 작품 활동 하시면 추상을 더 발전시킬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상 미술을 그만두었던 이유가 처음부터 저를 제로 상태로 해서 다시 출발을 하고 싶었지, 어떤 사조의 중간에 끼어 들어가서 따라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제로, 원점 상태가 화백님에게는 구상이었군요.  


-. 왜냐하면 회화의 기초는 뎃생이나 어떤 형상이니까요. 인류가 만든 최초의 회화가 형상이잖아요 ?  알타미라나 라스코 동굴 벽화가 사냥꾼들이 사냥감을 어떤 형상으로 그려놓은거쟎아요. 그림이라는건 형상이었어요. 18세기까지도 그림은 자연을 묘사하는거였어요. 동양화에서도 서양화에서도 자연을 잘 묘사하는 이가 대가였어요. 루벤스는 루벤스답게, 렘브란트는 렘브란트답게 묘사를 잘 했죠. 그러니까 묘사에요. 제가 그림을 새로 시작한다는건 묘사부터하는거였어요.


처음에 제 목적지는 불란서가 아닌 이태리였어요. 이태리가 서양화의 시작지이니까요. 서양미술의 아버지가 이태리의 지오토에요. 그가 서양미술의 조상이고, 현대 미술의 조상은 세잔느에요. 그전에 희랍, 이집트 미술도 있었지만, 서양미술은 지오토로 부터 다시 시작되었어요. 파리에 와서는 지오토를 보기 위해 이태리로 가서 전역을 여행 했어요. 지오토, 다빈치, 미켈란 젤로 등 모든 서양미술의 시작에 참여했던 이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그러기에 전 20세기에 온 추상미술부터 시작할 수가 없었던거에요. 이미 유행하고 있는 것 안에 들어가서 그 부류에 섞인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젊은 작가들이 저 같은 사고방식으로 출발하고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만 30살에 여기 왔는데, 그 나이면 이미 데뷔하고 작가로서 한창 활동하는 나이일수 있겠지만, 저는 다 버리고 다시 했어요.


앞서 색에 대한 말씀을 듣기는 했는데요, 화백님은 색에 대해 많이 연구하시고 애착이 있으신듯해요. 그리고 대부분 작품에서 보여지는 색감들이 밝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때 미술 대학에서 서양화를 했어요. 우리 어렸을 적에는 서예도 배우고 동양화도 배웠어요. 미술대학에 들어가면 1, 2학년때는 동양화 서양화 같이 하다가 3학년때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렇기에 먹이나 붓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요. 그런데 제가 서양화를 택했던 이유는 색채가 좋았기 때문이에요. 어지러운 색채를 많이 쓰고는 정리를 하고 싶어 선 작업을 하게 된거에요. 지금은 색채보다는 선에 더 집중을 하고 있는듯 하지만 그 속에 많은 색채가 받쳐주고 있는거죠.


풍경이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초상화 인상이 아주 강렬하더라고요. 인물 마다 표정이 각각 있었고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 


-조금전 말씀드렸다시피 파리에 와서 저를 제로로 놓고 시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건 뎃생이었어요. 뎃생을 잘하고 싶은거죠. 그림의 기초는 다 뎃생이에요. 뎃생에 의해서 건축 설계가 나오는거고요. 음악가도 음악적인 뎃생을 하죠. 뎃생이라는 말을 여기저기 다 쓰죠.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 아뜰리에에서 보이는 에펠탑을 매일 그려요. 그게 하루 일과의 워밍업이에요. 자유스럽게 순식간에 그린 크로키에요. 그러다보니 형상을 똑같이 그리지는 않아요. 초상화에서도 과장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눈을 크게 그리기도 한거에요. 뎃생의 과감한 표현이라고 보시면 돼요.  


Ô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집중한 낙엽시대작품들을 보면, 흰 바탕에 여러 형태의 나뭇잎들이 갖가지의 색깔을 띄고는 떨어지듯 나부끼고 있었다. Ô가 나뭇잎 작업에 빠진 이유는 그의 화실이 시골에도 있는데 거기가 안개가 많이 끼었는데, 안개 속에서 관찰한 나뭇잎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하얀 부분은 안개이고 잎은 화백 눈 앞에 떨어지는 나뭇잎인 것이다.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화백은 나뭇잎 바깥 면은 반 투명의 느낌을 주면서 스테인드글라스 효과를 내고자 했다. 


마치 흰 캔버스가 유리이고, 그안에 그려진 나뭇잎의 반 투명한 바깥 면들은 캔버스안에서 품어나온듯한 빛과 함께 신비한 색채와 형상을 띄며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스테인드글라스 느낌을 주고 있었다.  Ô는 이 시기의 작업을 낙엽시대라고 명명했다.


낙엽 시대의 작업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갔다.


나뭇잎에 대한 애착이 있으신 듯 합니다. 그 이후 작품에도 나뭇잎들이 보이더라고요.


-애착이 있었죠. 나뭇잎을 작품에 집어넣으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낙엽으로 화가로서의 길을 결정 지우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어요.    


작품에 계속 나뭇잎이 보이기도 하고요, 낙엽시대의 작업이 이후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요. 낙엽시대에서 했던 스테인드 글라스적인 기법이 이후 선 작업에도 나와요. 선 색채가 빛나는, 즉 광선이 떨어진 것 같은 효과를 주고 있어요. 그게 낙엽 작업을 할 때 발색법에 대한 연구에서 나온거에요. 특히 선 작품들 중에 바탕이 검은색인 <사진 찍는 여인 Photographer>은 그야말로 깜깜한 밤에 달빛에 의해 선들이 빛나는 느낌을 갖도록 했어요.


2015년 창원에서 전시하신 것을 보니 제목이 선, , 여백이더라고요. 여백이 화백님 선 작업에서 바탕인거죠 ?


-그렇죠. 여백은 동양화에서만 있는거에요. 거기서는 여백이 제일 중요했죠. 서양화에는 여백이 없어요. 공간이 다 채워져 있어요. 서양화는 여백이 없는 미술이었어요. 현대미술에서 자기네들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동양화를 연구하다 보니까 여백이 받쳐주는 그림의 효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거죠. 제가 여백을 강조하는건 동양 사람이라는걸 강조하는것과 마찬가지에요. , , 여백 이 세가지 중 선과 여백은 동양이고, 색은 서양인데, 그렇게 보면 3분의 2는 제가 동양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거에요. 


2015년 창원 전시 관련 기사를 보니, ‘색과 선의 발랄함이 화가의 나이를 잊게 만든다고 했던데요. 작품이 정말 간결하고 명쾌하고, 작품이 젊다고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단순한 표현, 인생을 오래산다는건 단순해지기 위한거라고 생각해요. 조금전 제 선 작업에서 생략법을 많이 쓰는 것도 단순해지는 방법 중의 하나죠. 간결하고 명랑하게 보이는 것은 색채 때문이에요. 선 작업 같은 경우는 한 작품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런데 그런 노력이 안보이는 그림, 즉 오래 그리지 않고 쉽게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을 저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 선 작업도 한 획이 틀리면 다 망가져요. 그런데 보면은 쉽게 그린거 같죠. 뒤에 숨은 어려움은 안보이게 하려고 한거죠.


그리고 항상 기본, 기초에 충실하시려고 하는것 같습니다.


 -. 제 스스로에게 그렇게 하죠. 제가 하는게 아카데믹한 방식이에요. 그리고 제가 추상화가였다가 구상을 했고, 주기적으로 그림 기법이 바뀌어졌어요. 보통 어떤 작가다그러면 그는 그것만 그리는 작가라는게 있죠. 자기의 스타일을 하나 굳히면 항상 그걸로 가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마치 피카소가 한 화풍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바뀐 것처럼, 제 화풍도 그러한 변화가 있는거죠. 그러면서 발전이 되었는데 결국은 모두 같은 줄거리에서 있는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하실 때 어느 정도는 관객의 몫으로 두시는 부분이 있는듯 합니다. 이를테면 생략법이라든가요.


-저는 작가가 작품을 한 다음에 전시장에 내놓으면 그때부터는 작품은 관객의 몫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관객이 제가 목적하거나, 의도한 것과 다른 것을 충분히 상상할수 있는거지요.


 


조형적이지 않는 사고, 즉 폭넓은 사고가 작품에 당연히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작업 외에 영감을 얻기 위해 선생님께서 하시는 취미 활동이 있다면요


-고전 음악과 랑도네 (Randonnées장거리 걷기)를 하는데, 어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쉬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불란서에서 바캉스가 왜 중요하냐면, ‘바캉스라는게 완전히 비우다는거쟎아요. 일을 하다가 머리를 완전히 비우고 다시 시작할 때에 힘도 나고 새로운 것을 할수 있지, 그 속에만 파묻혀 있으면 새로운 것을 생각 못하죠. 제가 랑도네한다던가, 고전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해서지 무슨 영감을 얻는건 거부하고 있어요. 무조건 쉬는거에요.


랑도네를 하기 시작하면 처음 1시간 동안은 힘들어요. 2시간을 걸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3,4시간되면 내가 누군지 몰라요. 그렇게 걸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원시인이 된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것을 마치고 아뜰리에에 다시 와서 작업을 할때에 저는 다시 문명에 온거에요. 그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수 있어요. 그안에 계속 잠겨 있으면 자기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모르고, 매너리즘에 빠지겠죠. 매너리즘을 탈피하고 무아지경으로 원시인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문명 세계에 돌아오는 경험을 갖는게 저의 창작의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화백님 삶의 모토 중의 하나가 시간 속에서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하던데요.


-에스칼레이터의 예를 들면, 거기 가만 있으면 1층에서 2층으로 가는데 3분 걸린다고 해요. 그렇지만 거기에 타서 걸으면 더 빨리 가는거죠. 3분 걸리는 시간속에서 1분으로 단축할수 있는거죠. 주어진 3분을 단축할수 있는게 시간 속에서 시간을 버는거죠. 3분 걸릴 것을 1분에 하면 나머지 2분은 또 무언가 할수 있는거죠. 세상을 2분 더 사는거죠.


또한 저는 매사에 확실하게 하는 습관이 있어요. 저의 선 작업에서의 선은 확실한 선이라고 할만큼 대충하거나, 애매모호한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특히 너무나 불확실한 시대다 보니 자신을 잃어버리는거에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요, 내가 생각한다는건 확실한 것을 찾는거죠.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수 있는데, 불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거에요. 그게 현대 사회의 세태라고 할수 있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화백님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되어  나아갈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지금은 선 작업을 계속할겁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더 단순해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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