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국아줌마

비빔밥 좋아하는 96세의 프랑스 할아버지

파리아줌마 2012. 5. 25. 07:22

저희 식당을 자주 찾는 프랑스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식당옆에 사시는 분인데, 처음 뵌건 지난 4월 부활절

주말에 손자와 함께 식사하러 오셨을때입니다.

 

부활절이라 고기는 드시지 않는다며 생선 지리탕을

주문하셨습니다.

 

지팡이 두개로 몸을 지탱하고 한발자욱씩 내딛는

일이 힘겨운 연세 많은 분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셔도 될텐데 일부러 걸으시려는듯했습니다.

 

식당안에서 보면 항상 동네를 산책하는 할아버지를 볼수 있습니다.

비가 와도 두 지팡이에 의지한채 구부정하게 길을 가시는 모습을 

자주 뵙곤 합니다. 

 

남편은 할아버지의 연세를 100살로 막연하게 알고 있더군요.

며칠전 혼자 식사하러 오셨는데, 남편이 옆 테이블에 있는 손님들에게 할아버지를 소개하며 100살이라고 하니, 96살이라고 당신이 정정해 주시더군요. 그리고는 그 테이블 손님들이 드시고 있었던 불고기를 주문하셨습니다.

 

96세의 할아버지가 블루스타위 불고기판에 구워진 고기를 드시는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그연세에 그렇게 치아가 튼튼할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정신 또렷한 것하며, 말씀도 정확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양이 너무 많다고 하시더군요. 쥬스를 시켜 음료수 삼아 드시고 후식으로는 중국 과일인 리치를

드십니다.

 

할아버지는 2차 대전시 드골 장군밑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셨답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분의 레지스탕스는 종교적인 신념하에 이루어진것이더군요. 함께 활동했던 형은 나치에 의해 총살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형은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며 편안하게 갔다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더군요.

 

할아버지는 프랑스 역사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지질학자이기도 했던 그분은 드골이 석유를 찾아라고 보냈답니다. 하지만 당신은 석유를 찾지 못했다고요~

 

할아버지는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25년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계속 혼자 사셨다고 합니다.

96세의 노인이 혼자 계신다는게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대부분의 프랑스 노인들은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 시선으로 보면 연세 많아 약해진 부모 돌보지 않는 자식들일수 있지만 당신들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지가 저도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월요일,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식당문을 나서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며 레지스탕스

활동하셨던 이야기를 언제 한번 들려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날 남편과 저는 할아버지가 드실 적당한 음식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소화 잘되고 맛있는것으로 할아버지만을 위한 음식을 장만하고 싶었습니다.

 

그다음날 저녁 다시 식당을 찾으셨습니다.

 

전날 옆 테이블의 어떤 부인이 드시던것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건 비빔밥이었습니다.

 

한국 음식을 잘모르는 할아버지는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드시고 있는것을 보고는 주문하곤 하십니다.

 

주방장님이 만두 두 개를 할아버지 드리라고 따로 주시더군요. 그리고 돌솥에 고기는 빼고 계란 지단과 야채 위주로 정성스럽게 비빔밥을 준비해 드렸습니다. 간장 소스 한숟가락 넣고는 제가 비벼드렸습니다. 밥 한톨 안남기고 다 드셨더군요. 남편은 할아버지에게 맞는 음식을 찾았다며 좋아라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저희 식당에서 매너 좋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냅킨이 떨어져서 따로 갖다드리겠다고 했는데,

굳이 당신이 몸을 굽혀 냅킨을 집으십니다. 그리고 수저는 익숙하지 않아 포크를 사용하는데, 음식물 하나 흘리지 않고 깨끗하게 드십니다.

 

그리고 항상 50유로짜리 깨끗한 지폐로 계산을 하십니다. 거스름 돈을 내어드리며 셈한것을 알려드리면 정확하게 눈여겨 보시고는 팁까지 두둑하게 주십니다.

 

비빔밥을 맛있게 드시고 가시는 날, 바빠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을수 없어 안타까워하며 식당 창너머 집으로 향하는 할아버지를 보는데 가슴이 찌릿~하게 아려오더군요. 그건 어린 시절, 추운 겨울 시골 시외 버스 정류장으로 저희 가족을 배웅하려 온 주름진 할머니의 모습을 봤을 때의 아픔과 같았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레지스탕스 활동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지금의 프랑스는 할아버지 세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지요. 그리고 그날 맛있게 드셨던 비빔밥을 다시 주문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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