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아가기

벌레이야기

파리아줌마 2008. 1. 18. 22:45

 

우리는 살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의도한 잘못 보다는, 나만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지 못한 것들, 하나는 알고 둘을 생각지 못한 것들 등, 알지 못하는 가운데 행한 말과 행동들속에서 결론이 그릇되게 나오는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3년 반 전쯤 부터 나에게 "기도"가 어떤 것인가를 일깨워주시고, 나의 삶의 모습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인도해주시는 교회 집사님이 계신다.

 

얼마전 그집사님을 통해 8년동안 묶히고 쌓아놓아던 나의 잘못을 알게 됐고, 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 어떤 분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은혜로운 일이 있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8년여동안 내가 했던 말은 생각지 않고, 그당시 그분이 나에게 보인 몰지각한 반응만을 붙들고, 상처 받은 사람인 마냥, 희생양인냥, 쓴뿌리를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얼마전 집사님과의 전화 통화시 그때의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고, 계속 그분에게 화살을 쏘아대는 나를 보고, 상황을 잘알고 계신 집사님이 내가 했던 말을 상기시켜주셨다.

 

난 그동안 전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고 있었으며, 그분이 준 상처만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말한 내용도 기억이 나고,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반응을 보인 그분이 너무 이해가 되었고, 정말 부끄러워졌다.

 

마음속으로 얼른 회개하고 나니, 집사님께서 그분에게 그때 일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하신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내가 왜? 그것도 8년이 지난 이마당에, 어쨌든 잘못은 했지만 회개 기도했잖아"?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대들었고, 솔직히 "죽기보다도 싫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집사님의 권유에 순종했을때 결과는 항상 좋았기에 피할수는 없었다.

 

입술 앙 다물고, 숨한번 크게 쉬고, 힘들게 결단을 했다.

용기가 필요했고, 나의 쓸데없는 자존심은 내려놓아야만 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했고, 마침 그분과 통화가 되었는데, 그때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뜨거운 무언가가 밀려오면서 나는 엉엉 울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분도  "자기도 잘한 것 하나도 없다면서 나에게 사과를 하셨고, 너무 고맙다며,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하면서 울먹였다.

 

8년 동안의 막힌 담이 헐렸고, 말로 표현할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놀라웠던 것은,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8년동안 그분을 미워했었던 나의 마음도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날 하루 종일 눈물이 났었다. "너 그새 너무 힘들었구나!, 이제 됐어, 무거운 짐 벗었지" 나에 대한 위로가 더 컸었다. 

 

못난 나에게 이런 귀한 분 알게 해주셔서, 이 같은 큰 은혜 베풀어주신 주님께 한없는 감사를 했다. 

 

그리고 "밀양"이란 영화가 생각이 났다.

아들을 죽인 죄인을 용서했다고, 이를 알리기 위해 감옥으로 찾아갔을때, 뽀얗고 말끔한 모습의 죄인이 "자기는 이미 용서 받았다"는 이야기에 자지러진 아이 엄마의 모습...

 

아마 죄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처절히 아이 엄마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면, 그녀가 그렇게 허물어질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아이엄마의 용서가 제대로된 용서인지도 의문은 가지만....

 

이 영화는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베스트 셀러 극장"이라는 단편 드라마에서 이 소설을 극화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는데, 이 드라마의 제목처럼 죄인과 아이 엄마의 이야기는 "벌레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던 기억이 있다.

 

작가는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섞음을 "벌레"에 비유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약함속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위선과 가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 그 벌레 이야기속에 "나"도 포함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그 보혈 흘렸네" ,

나를 위해 보혈 흘리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연약한 모습 인정하면서, 강하게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살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함정  (0) 2008.06.28
삶의 무기들  (0) 2008.06.17
강 건너 불구경  (0) 2008.06.07
둘 중에 하나만 하자  (0) 2008.04.28
이유는 다 있더라..  (0) 2008.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