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나는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과 내뱉는 말들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었다..
아니 비판 보다는 비난적이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학교때 친구들과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통 이해라고는 십원어치도 없었으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가차없이
바로 내 관념의 이상한 도마위에 오르게 된다.
결국은 그사람은 상종 못할 인간으로 낙인찍혀서,
나의 기억속에 좋지않은 이미지를 간직한채 물러나야만 했다.
이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사람은 저래서 싫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는 나는 너무 잘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세월 살다가 어느날 외롭고 적적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겉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친한 사람하나 없이 지내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남들에게 피해 입히지도 않고,
피해입지도 않으려고 나름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해주려고 했고,
잘난채 하지도 않고 진솔하려고 했는데,,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마 한달 아님 두달쯤 된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나의 이해 부족 때문이었음을 안지,,,
이해못할 행동과 말을 들었을때 약간의 여지도 없었고,
"저사람이 왜 저럴까?" 하며,
나의 생각은 모두 내려놓은 채,
상대방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을 기도로 깨닫고 사람들을 대했을때 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을 모함하며 살아오고 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판에 앞서 이해하고 싶은 마음로 다가갔을때,,
그렇게까지 밖에 표출될수 없었던 그 이유들이 있었다.
문제는 내가 이해하고 싶은지, 아닌지일뿐이지,,,
이해하고 싶어 다가갔을때 나의 마음과 눈이 열려
그사람의 진정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진정으로 말하고,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나로 하여금 거슬리게 했을때는
제대로된 표현들이라고는 보지않는다.
하지만 이부분은 내가 관여할 것은 아니고,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은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해없이 비판이 앞섰던 시기에 나 또한 많은 이들이
이해 못할 행동과 말들을 던졌을 것이다.
나 또한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나 자신이 의식하던 않던 이유들은 항상 있었을 것 같다.
이는 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부분을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충실해지고자 하는 것이지, 제대로 안된 부분에
관대해지려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와서
율법에서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겠냐고
예수님을 떠보았을때,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말씀이
절절히 와닿는다.
현상을 보는 눈은 지극히 객관적으로 갖되,
말하고 행동하는 데는 주관적이 되어야겠다.
여러가지 것들이 가능하나 그 모든 것들이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가능한 것 보다는 옳은 것들을 잡고 가고 싶다.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을
이제는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