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식

사르코지와 세실리아, 그들의 삶, 사랑, 그리고 이별

파리아줌마 2007. 11. 20. 01:27
 
 
지난 몇 개월 동안 사르코지 대통령 부부의 결별설이 난무했고, 지난주 초까지 이에 대해 엘리제궁측은 함구하고 있다가, 공교롭게도 철도 공무원들의 퇴직 연금제도 개혁에 반대한 파업이 한창이었던 지난 목요일, 엘리궁은 사르코지 부부의 이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사르코지 대통령은 임기중에 이혼을 한 프랑스의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들 부부의 결별을 예측할 수 있는 징후들은 부족하지 않았다. 세계 선진 8개국 정상회담의 만찬에 세실리아는 참석하지 않았었고, 지난 여름 부시 대통령과 약속된 피크닉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얼마전 사르코지 대통령의 불가리아행에도 그녀는 동행을 거부했었다. 이럴때 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디어들에게 해명할 것들을 찾느라 급급했었다.
사르코지 부부의 불화설은 이미 2년전부터 있어왔는데, 이들은 그동안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왔었지만 결국 어쩔수 없이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2005년 5월까지 사르코지 부부는 어디든지 함께 하는 행복한 부부였다. UMP당의 당수였던 사르코지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그를 보좌했던 세실리아는 당의 중진인사들과 점점 부딪히기 시작하면서, 2005년 5월 19일 세실리아는 그녀의 남편에게 결별을 고하고, 공항으로 떠났는데, 사르코지는 공무 수행 자동차에 사이렌을 울리며 미친듯이 공항으로 질주했지만 그녀는 이미 요르단에 있는 광고업자인 Richard Attias에게로 떠난 후였다.
세실리아는 UMP당 총재 즉위식을 준비하기 위해 2004년 11월에 그를 만났다.
Richard Attias는 부자이고, 매력적이며, 런던, 뉴욕, 다보스를 다니며, 세계유명 인사들의 친구이자 사르코지가 갈망하고 있는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파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세실리아는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살고 있었다. 그동안 사르코지는 세실리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사르코지 또한 Figaro지의 여기자와 새로운 관계를 가졌고 그녀에게 이혼 경력 있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론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사르코지는 모든 신문들에게 그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실지 못하도록 위협했었고, 또한 Richard Attias에 대한 사랑 이야기가 포함된 세실리아의 자서전 출판에 앞서, 출판사에 세무 조사 협박을 가하면서 출간을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몇차례 헤어짐과 재결합을 반복한 뒤, 2006년 6월 세실리아는 사르코지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사르코지의 선거 본부안에 세실리아의 사무실도 마련되어 있었으나 그녀는 한번도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복도에서 선거 본부장과 이야기했으며, 여러 조언자들이 생각한 것들을 흐트러놓으면서, 사르코지 측근들로 하여금 세실리아는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했다.
이에 사르코지 커플의 균열은 점점더 심해졌다.
대선에 입후보 하기 전에 은퇴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르코지는 그의 계획을 바꾸어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다음날 그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몰타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사르코지는 "세실리아는 많이 고통스러워했다. 가족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고백했다.
이때까지 세실리아는 남편의 정치적 야심에 함께 동행하는 아내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영부인 역할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만 하는데 많은 상처를 받았다.
모피 매장을 운영하는 부르조와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세실리아는 남자 형제들과 함께 파리와 주말에는 Touquet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공부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으나, 타고난 미모를 가진 세실리아는 이미 20살 많은 유명한 사진 작가와 결혼을 약속하고는 결혼식 3주전에 결혼을 취소했으며, 그녀의 말대로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인 Jacques Martin과 사랑에 빠졌다.
그당시 Neuilly-sur-Seine 시장으로 있던 사르코지는 이들의 결혼 주례를 섰는데, 막 결혼한 세실리아를 사랑하게 되었다.
1984년 Jacques Martin과 결혼한 세실리아는 두 딸을 데리고, 1988년 사르코지 품으로 왔다. 그해 사르코지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사르코지의 정치 행로에 세실리아는 항상 동행했다. 그녀는 "정치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함께 하는게 좋다."고 했다.
1993년 그들은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실리아는 "Madame Sarkozy"로 불리웠고, 1995년 사르코지가 보좌했던 Balladur가 대선에서 낙선했을 때 세실리아는 사르코지의 원래 직업인 변호사로 돌아가자고 권했고, 이들은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을 가졌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정치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세실리아는 또다시 희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르코지가 Neuilly 시장직을 계속하기를 바랬고, 지역 선거에 출마하기를 바랬으나 매번 사르코지는 세실리아의 희망들을 저버렸다.
2005년 세실리아는 자신이 "전통적인 페스트 레이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사르코지 대통령 부부의 이혼에 대해서 프랑스인들의 79%가 정치 활동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했으며, 18%가 그반대의 답을 했다고 여론 조사에서 밝혔다.

<파리지성 박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