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나의 살던 고향은...

파리아줌마 2008. 8. 21. 20:19

'고향'이라 하면 우리세대들도 아직은 낮은 담벼락,시냇물,황토흙길.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정작 나의 살던 고향은 높은 빌딩,몇차선이나 되는 넓은 도로에 무지하게 나와있는 차량들,그리고 밤이면 반짝이는 네온사인으로 덮여진 대도시다.

물론 나 어릴적에는 풀밭에서 포대썰매도 타고 그러고 놀았지.여름이면 금호강변 풀밭에서 방아개비도 잡고...

경기도로 올라와서도 여기가 생활터전인 지 대구가 아직 생활터전인 지 헷갈린 적도 많았었지만,이젠 거기가 고향임이 많이 느껴진다. 거기에 가면 무엇보다 나의 잊혀진 기억들과 나의 감정들을 자극시키는 누군가가 있다.

바로 부모님.

내나이 먹는 것도 잊고 살지만,엄마아버지 연세 드시는 것도 나 스스로 많이 잊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빌딩들로 가득찬 내고향이지만,그 고향에 대한 향수는 내안에도 똑같이 남아있나보다.

 

지난 주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내 고향을 다녀왔다.

여전했다.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그리고 더위에는 무지 약한 우리 아버지.

갈때마다 힘들다며 비가오나 눈이 오나 지하철역까지 '내새끼''하며 애들을 마중 나오시는 우리엄마.

양손엔 양산 두개랑 창넓은 모자를 들고 딸이랑 손녀들이랑 햇볕에 힘들까...

 

우리 부모님은 참으로 강하신 분들이었다.아니,독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무일푼에서 두 분이 시작해 누가 봐도 '부자'라고 인정할만큼 탄탄대로를 누리시다,imf로 그 큰 사업체 다 정리하시고,33평 아파트에서 그저 조용히 살고 계시는 두 분.당신들의 성공에도 한 번 놀라겠지만,실패후 이겨내는 당신들의 강한 의지에도 또 놀랄 거 같다.

오랜간만에 딸이 왔다고 나한테 당신의 근황에 대해 수다를 늘어놓는 우리엄마.

요즘 '어머니'라는 노래를 배우고 계신단다.

외동딸로 자라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랑 평생을 같이 살아 옆에 있던 내가 봐도 매번 애같았던 우리엄마.

그런 외할머니가 치매가 오고,그런 할머니를 끝까지 모시지 못해 요양원에 맡기고 일주일에 한번씩 뵈러 가며 매번 마음 아파하는 우리 엄마.

내 기억속 엄마는 작고 마르고 매일 급하고,감정적이고,툭하면 울고,툭하면 화내고,툭하면 토라지고.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져있던 우리엄마.엄마는 다 잊었겠지.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하지만,왜 내기억속에는 고스란히 그게 다 들어있을까.내가 태어나기 전은 몰라도 적어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부분부터는 감히 당신의 인생을 내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엄마가 일흔 하나.엄마 힘들 때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다.오히려 정작 엄마가 힘들 때 난 더 힘들다고 나자빠져버린 게 내가 한 전부인 듯하다.

워낙 자아가 강해 자식들이 해주는 것도 그다지 만족스러워하시지는 않지만,그래도 칠순 지난 부모님께 해드린 게 너무 없다.

당신들이 생의 마지막쯤에는'그래도 괜찮앗다'라고 하실 마지막 인생을 만들어 드리고 싶은 게 내 바램인데...

엄마는 매번 그러신다.'그래도 한 때 잘 살아봤잖아.그렇게 살아봤음 �지.'

'엄마,그러면 �다'하고 넘겨버리기엔 내가슴은  너무 아프다.

지금은 엄마의 사소한 투정마저도 다 받아드리고 싶다.

불효의 습관이 때늦은 후회지.지난 주말 잠시 뵙고 온 부모님 얼굴에서 그저 나만의 사모곡을 불러 볼 뿐이다.

엄마,아버지 꼭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출처 : nojomi31
글쓴이 : 행복한 딸기맘 원글보기
메모 : 저의 막내동생 블로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동생이 살던 고향에는 저도 함께 했으니까요,, 언젠가부터 저의 뿌리, 부모님들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싶었는데, 너무 가슴 아프고, 때로는 가슴 벅차,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저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해 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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