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다가

그들이 사는 세상속에는 사람의 향기가 있었다.

파리아줌마 2009. 2. 2. 09:23

 

김명민님의 명품 연기를 감상하며 "베토벤 바이러스"를 재미있게 보고난후,,

그동안 무료로 다운 받아보았던 사이트가 차츰 유료화되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내용도 잘 몰랐던 드라마,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에 이끌려 신용카드로 돈을 지불해가며 다운 받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참 별일이네,," 하지만 그럴수밖에 없는게, 아무리 저작권 논란이 있어도

드라마 즐기는데에는 좀처럼 돈을 들이지 않으려는 짠순이 아줌마다. 

 

1회를 보고난뒤 13살짜리 큰딸은 눈을 게슴치레하게 뜨고는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너무 재미없다"고  한다. 그래! 이해가 되었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난 바로 뒤라,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에 매력을 느끼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2회, 3회를 보면서 나의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환영은 쉽게 벗어졌다.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구나...

 

이 드라마는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이 펼치는 사랑, 동료애 등을 그렸다.

작가 노희경님이 이 작품을 위해 1년넘게 방송국내에서 인터뷰 한 것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니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완벽한 픽션만은 아니겠지만,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라는 픽션을 만들어가는

그들이 사는 세상속에서 일어날수 있는 논픽션적인 것을

드라마라는 또 다른 픽션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인것 같기도 하고 역설인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로 풀어가기에는 너무 복잡할 것 같고,

단순한 역설로 보자면,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 어떻게 보면 별다른 세상일것 같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그속의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방송사의 드라마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직업적인 면에서 평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런 평범하지 않는 계열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겪는 인간적인 평범성을 작가는 드러내고 싶어하지는 않았는지...

 

드라마안의 드라마 제작진들은 계속적으로 드라마가 현실이냐? 구라냐?를 따지고 든다.

주인공인 피디 정지오[현빈]는 끊임없이 후배들에게 드라마처럼 살아라고 권하고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보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지고지순한 사랑은 커녕,,

사랑하는 여인앞에서 한없는 초라함을 느끼고는 즉흥적으로 일방적인 결별을 고해버릴뿐이다..

하지만 이같은 위선을 비난할수 없게 그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진행시킨다..

단지 그의 한계일뿐이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계,,

바로 노희경 작가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치 못하게 하고 있다.

 

 

줄거리 전개는 이드라마에서는 중요치 않았다. 

대사 하나 하나, 두 주인공의 나레이션이 마음에 와닿았다.

딱히 무어라 말할수는 없지만 뭉근 뭉근 피어오르는 것들을 너무나도 시원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었다.

 

살아오면서,, 부딪혀야되는 때에 외면하고 싶었던 것들,,,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

드러났음에도 감추고 싶었던 것들..

나쁜 사람 될까봐 표현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주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의 모습들과 감정들을 세련되게 표현한 아주 수준 높은 드라마였다..

사람사는 세상의 여러 소리들이 시끄러울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잔잔하게 연출할수 있음에 놀랐다.

욕설도 있고, 거친 말투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모든 것이 잔잔하게만 다가왔다.

 

마치 연출이 없는 드라마 같았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듯했다..

예전에 영화 공부하는 친구에게서 들은 귀동냥에 의하면,

이런 연출이 가장 힘든거라고 한다.

 

총 16부인데 어느한편만을 떼어봐도 좋을 드라마이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이곳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드라마는

처음이었다,,

 

두주인공 보다는 김갑수님, 김창완님, 배종옥님 등,막강한 조연들의 연기가 더욱 빛이 나면서,, 

두주인공들을 에워싸면서 받쳐주고 있었다.  

 

마지막 16부에서주인공인 정지오[현빈]은 나레이션을 통해 드라마 보다 더 아름다운 건 바로 우리들의

삶, 이 현실이라고 한다.

초라해진 자존심으로 즉흥적인 결별을 선언했지만 결국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면서

더욱 다져진 사랑을 확인하며 내뱉는 나레이션이었다.

비록 드라마같은 사랑은 못했지만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간들이 어설픈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강해져가는 사랑을 알기에

정지오는 드라마 보다 더 아름다운 건 우리의 삶이라고 한다.

 

이 또한 갈등 구조를 거쳐 화해로 가고있는 드라마의 한 면이기도 하겠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이 드라마 밖의 삶을 표현함으로 내가 보고 있는게

드라마가 아닌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프로그램화 시킨 다큐멘터리 같다.

 

마치 TV 속에 또 다른 TV들이 있어 내가 보고 있는게 현실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는 매력있는 드라마였다.

 

계속적으로 동반되는 대립과 갈등,,반목들,,우리들이 외면하고 싶었던 이것들을 직면해서 장황하지 않고,

요란하지도 않게 표현하는 대사들은 처음 접해본다.

 

노희경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맑다"고 했다.

기존에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이제는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는것,

치유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한다.

 

상처 치유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작가의 글은 편안했고, 자연스러웠으며,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진솔함으로 사람들을 더 깊이 치유하는듯했다.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상처들과, 여러 상황속에서 엄습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그들이 사는 세상속에 묻어져 있었다.

이런 것들은 삶을 더욱 아름답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필요 조건들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현실은 드라마 보다 더 아름다울수있겠지..

바로 그곳에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대립과 갈등이 인간들의 냄새라면 그것을 인정하고 신랄하게 겪는 과정속에서

삶을 알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향기가 있을 것 같다..

 

오늘로 16부까지 모두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